로저스와 해머스타인, 그리고 브로드웨이의 황금시대 (마지막) Culture

시선을 동쪽으로

1951년. 로저스와 해머스타인은 6번째 작품을 발표합니다. 이 팀이 이번에 도전한 것은 역사적인 실화였습니다. 게다가 그 배경은 동양이었지요. 바로 '왕과 나(The King and I)' 입니다.

이미 '남태평양'에서 로저스와 해머스타인은 미국을 벗어났지만 이번에는 완전히 이국적인 태국을 배경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색달랐습니다. 물론 원작의 변형이라든지 오리엔탈리즘적 시선이 군데군데 보이는 한계는 있었지만,(사실 인종주의를 비판한 '남태평양'에도 이러한 요소는 여전히 있었습니다. 무엇이든 처음부터 완벽할 수는 없는 법이지요) 동양적 배경과 소재를 본격적으로 다루었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으며, 동시에 성공을 거두면서 이러한 색다른 소재로도 충분히 성공할 수 있다는 예를 남겼습니다.
뮤지컬 '왕과 나'는 1,246회의 공연을 기록하며 이제는 놀랍지도 않은 대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생각해보면 리처드 로저스와 오스카 해머스타인이 만난 이래로 '알레그로' 하나를 제외한 모든 작품이 대성공이었으니 실로 엄청난 기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왕과 나'의 성공 이후 로저스와 해머스타인 팀은 계속해서 작품들을 내놓았습니다. 1953년에는 '나와 줄리엣' 1955년에는 '파이프 드림' 1958년에는 '플라워 드럼 송'을 각각 발표하지요. 하지만 이제는 힘이 떨어졌는지 어느것도 큰 성공을 거두지는 못합니다. 사실 그렇다고 아주 떨어지는 작품들도 아니었지만, 워낙 앞에 발표해놓은 것이 화려하다보니 상대적으로 좀 못해보이는 느낌이 크기는 했습니다.




최후의 걸작, 그리고 한 시대의 종말

1959년, 오스카 해머스타인은 그의 일생의 마지막 걸작을 세상에 내놓습니다. 역사적 실화를 배경으로 한 1956년작 오스트리아 영화를 본 연출가 빈센트 J. 돈휴는 이 작품을 무대에 올리기로 결정합니다. 애초에 이 작품은 연극으로 기획되었고, 거기에 로저스와 해머스타인의 노래를 한 두곡 삽입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그러나 프로젝트는 곧 뮤지컬로 바뀌었고, 로저스-해머스타인에게 완전히 맡기기로 결정됩니다. 그렇게 해서 태어난 것이 로저스-해머스타인의 마지막 작품이 된 '사운드 오브 뮤직(The Sound of Music)'입니다.
'사운드 오브 뮤직은 1959년 11월에 초연되었으며, 기대했던 대로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뮤지컬 뿐이 아니라 수록곡들들 담은 음반은 그 시대로서는 엄청난 수였던 3백만장이 팔려나갔습니다. 그리고 이 곡들 '사운드 오브 뮤직' '에델바이스' '도-레-미' 'Climb Every Mountain' 등은 뮤지컬 역사에서 가장 사랑받는 곡들로 남게 됩니다.


Climb Every Mountain



Edelweiss



Do Re Mi

'사운드 오브 뮤직'은 그해 토니상 시상에서 최고의 작품상을 수상하면서 비평적으로도 인정을 받았지만, 일부 한계가 지적되기도 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이전에 로저스-해머스타인이 보여주었던 날카로운 비판정신이 퇴색되었으며 너무 감상적으로 변했다는 점이 지적을 받았지요. 이제까지 해머스타인은 사회문제들을 날카롭게 비판하였지만, 이 작품에서는 '나치는 나쁘다' 외에는 이렇다할 문제의식을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해머스타인의 마지막 걸작이자 브로드웨이의 황금시대 마지막을 장식하는 작품으로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는 명작이었습니다.

오스카 해머스타인 2세는 '사운드 오브 뮤직'의 초연 9개월 후에 위암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향년 65세의 나이였습니다. 그가 사망했을 때 타임스 스퀘어의 불빛은 1분간 꺼졌습니다. 동시에 런던의 웨스트 엔드도 불빛을 어둡게 하여 공연예술의 역사에 영구적인 업적을 남긴 한 위대한 예술가의 퇴장을 애도하였습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브로드웨이의 황금시대도 사실상 종언을 고했습니다.

오스카 해머스타인 2세, 1895~1960




그들의 유산

해머스타인이 떠난 후에도 리처드 로저스는 작품 활동을 계속했습니다. 그러나 두번다시 이전과 같은 걸작은 만들어내지 못했습니다. 뮤지컬 역사상 가장 완벽한 팀이었던 이들은 사실상 한 몸이었습니다. 로저스의 음악과 해머스타인의 가사가 결합하여 만들어내었던 생명력은 한 사람이 퇴장한 이후 다시는 살아나지 못했습니다.

브로드웨이의 황금시대는 흔히 '오클라호마!'의 개막에서 오스카 해머스타인의 죽음까지를 의미합니다. 그만큼 로저스-해머스타인 팀은 브로드웨의 황금시대 그 자체와 동일시되고 있습니다. 이들 팀 뿐 아니라 수많은 다른 예술가로부터도 가장 다양한 걸작이 쏟아져나왔던 시대가 이 시기였습니다.

하지만 황금시대가 끝났다고 뮤지컬이 갑자기 쇠퇴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1960년대에도 여전히 상당히 훌륭한 작품들이 연이어 나왔습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황금시대와 같지는 않다는 것이 사람들의 생각이었습니다. 이후 뮤지컬은 1960년대 후반부터의 침체기를 지나 1980년대의 뉴 뮤지컬의 시대로 나아가게 됩니다.

로저스-해머스타인과 그들이 이룩한 황금시대는 그 이후 거의 대부분의 뮤지컬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다양한 소재와 문화의 접목, 사회비판 등이 그것이었지요. 하지만 단지 그것만이 아니었습니다. 해머스타인의 뮤지컬에서 마지막까지 유지되었던 것은 바로 해머스타인 자신의 낙관주의와 인간에 대한 신뢰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비극적인 플롯이라도 그의 뮤지컬은 종국에는 희망의 요소를 찾아냅니다. 이는 현실적으로는 전혀 나아진 것이 없지만, 모두가 희망에 차서 합창을 하는 '회전목마'의 마지막 장면에서 잘 드러납니다. '오클라호마!'와 '남태평양'의 마지막 장면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러한 요소는 이후 많은 뮤지컬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가령 1996년 뮤지컬 '렌트'의 경우 고전적인 로저스-해머스타인 뮤지컬과 전혀 다른 스타일의 록 뮤지컬이지만 2막에서 출연진들이 'Seasons of Love'를 부르는 장면은 자연스럽게 '회전목마'의 마지막 'You'll Never Walk Alone'을 합창하는 장면과 비슷한 느낌으로 연결되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것들이 바로 리처드 로저스와 오스카 해머스타인의 우리에게 남겨놓은 유산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덧글

  • 들꽃향기 2010/02/24 14:40 #

    '왕과 나', '사운드 오브 뮤직' 등의 걸찍한 영화들이 모두 해머스타인의 작품이었군요! 이런 ㅎㄷㄷ한 사실이...OYL 그러고보면 초기 영화는 확실히 이런 뮤지컬이나 연극의 성과에 힘입은 바가 큰 것 같습니다. ㄷㄷ

    그러고보면 사실 '인간에 대한 신뢰'라는 것은 지금 보면 단순한 상투적인 미덕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보일수도 있겠지만, 당시의 정치정황(빈부격차의 심화와 파시즘의 등장)을 생각하자면, 당시 지식인들과 예술인이 사회현실에 절망하면서도 버리지 않고자 했던 가치라는 점에서 빛을 발하는 것이겠죠.

    진심으로 올리신 연작 시리즈를 잘 읽고 갑니다.^^ 저는 그간 아직 미국문화에 대해서 경멸적 시각을 가지던 옛 운동권의 구태를 다 벗지는 못해서인지..........브로드웨이 뮤지컬이 현재의 위상을 차지하게 된것은, 미국의 문화적 헤게모니의 확대와 돈의 힘이라는 생각을 미처 다 버리지 못하고 있었는데, 그간에 올리신 시리즈로 시각이 많이 수정이 되었습니다.
  • Mr 스노우 2010/02/24 22:33 #

    생각해보면 로저스도 해머스타인도 정말 천재 예술가들이지요. 국내에 알려진 웬만한 고전 뮤지컬들이 대부분 이들 작품들이니..

    황금시대의 브로드웨이 뮤지컬들이 단순히 돈만 많이 들인 머리빈 예술(물론 그런 퀄러티 떨어지는 작품들도 있었고 지금도 있지만서도)이었다면 아직까지도 계속해서 공연되면서 장수하지는 못했겠지요. 어느 시대든지 그 시대 나름의 고통이 있게 마련이지만 그럴수록 해머스타인 작품들이 담고 있는 긍정적인 메시지가 더욱 새롭게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hyjoon 2010/02/26 17:24 #

    연작해주신 시리즈 잘 읽고 갑니다. OT갔다오고 나니 또다른 재미가 기다리고 있었네요^^
  • Mr 스노우 2010/02/26 23:00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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