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네시, Fort Donelson (2006년 6월) 답사, 여행기

저의 답사 이야기에서 첫번째는 미국에 있을 때에 방문했던 남북전쟁의 전적지들 위주로 시작하려 합니다. 평소에 관심도 있었고, 또 아무래도 지내던 곳이 남쪽이다보니 남북전쟁과 관련된 유적지들을 많이 방문했거든요. 물론 이 답사기는 전혀 시간순서대로 되어있지 않습니다.

1862년 2월 12일. 미국 테네시 주의 북단 컴벌랜드 강변에 위치한 요새 포트 도넬슨(Fort Donelson)에서는 U.S. 그랜트 장군 휘하의 북군과 존 플로이드, 기디언 필로우, 사이먼 버크너, 세 장군이 지휘하는 남군간에 공방전이 5일간 벌어졌습니다. 포트 도넬슨의 함락은 그랜트에게 있어서 컴벌랜드 강과 테네시 강을 장악하고 남부 깊숙이 진격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었고, 남군에게 있어서도 서부군 총사령관인 앨버트 시드니 존스턴 장군의 전략에 따라, 테네시를 방어하기 위해서는 요새의 사수가 필수적이었습니다.

전투 초반 남군은 북군의 공격을 잘 막아내었고, 요새의 강변 포대도 북군 포함의 진격을 성공적으로 차단하였으나 절대 열세한 상황에서 오래 버틸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남군 지휘부는 전력을 보존하여 탈출하기로 결의하게 됩니다. 2월 15일에 남군은 탈출을 위해 기습공격을 가했고 성공적으로 탈출로를 열었으나 필로우가 머뭇거리는 바람에 탈출의 기회를 놓치고 결국 2월 16일에 그랜트에게 항복하고 말았습니다.

이것이 그랜트 장군이 본격적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기 시작한 포트 도넬슨 전투의 간단한 전말입니다. 이 전투 현장을 방문할 기회가 4년 전에 있었습니다.

입구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마주치게 되는 방문자 센터입니다. 이곳에서 우선 대략적인 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
센터 내부의 전시물들입니다.

밖으로 나와서 본격적인 답사를 시작합니다.
우선 남군 전사자 기념탑과 마주칩니다. 대체로 국가에 의해 안장된 북군 전사자들에 비해 남군 전사자들은 가족들에 의해 개별적으로 매장되거나, 전장에 급조된 묘지에 집단매장된 경우가 많습니다. 포트 도넬슨의 경우도 비슷해서, 남군 전사자들이 묻혀있는 위치를 찾기가 어렵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탑이 그것을 대신하고 있습니다.
 
당시 요새 안에 있었던 오두막집을 복원해 놓은 모습입니다. 포트 도넬슨 전투는 겨울철에 벌어졌고, 병사들은 추위를 막기 위해 이런 식의 오두막을 지어서 거주하고 있었습니다.

포대의 모습. 물론 포들은 당시 포대가 있었던 곳에 표지판과 함께 배치되어 있습니다.

포트 도넬슨은 컴벌랜드 강변에 위치한 요새입니다. 따라서 육지 쪽 방어선과 강벽 쪽 방어선으로 나누어져 있었습니다. 강변포대 쪽은 비록 강의 흐름이 달라지긴 했지만, 그럭저럭 당시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마치 한폭의 그림처럼 평화롭고 목가적이기까지 한 정경이지만, 이곳은 당시 북군 함정과 남군 포병들 간의 치열한 격전의 현장이었습니다.

강변포대의 전체적인 모습입니다.

당시 북군의 포함들은 사진 우측, 강물이 굽이지는 곳에서 출현했습니다. 남군 포병들은 포함들이 피어올리는 연기를 보면서 적함의 접근을 예측하고 있다가 저 굽이를 돌아서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포격을 가했습니다. 포구의 뒤에서 바라보고 있으니 당시의 상황이 눈앞에 그려지는 듯 합니다.

요새의 외곽 방어선. 남군의 참호가 있던 자리를 표시해놓고 있습니다.


도버 호텔. 전투중 남군의 지휘소였으며 결국 버크너가 그랜트에게 항복을 한 장소입니다. 버크너의 항복 제의에 그랜트는 '무조건 항복 외에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 유명한 답신을 보냅니다. 그 답신 전문도 앞의 표지판에 나와있습니다.
Sir: Yours of this date proposing Armistice, and appointment of Commissioners, to settle terms of Capitulation is just received. No terms except unconditional and immediate surrender can be accepted. I propose to move immediately upon your works.

I am Sir: very respectfully
Your obedient servant
U.S. Grant
Brig. Gen


대충 이런 내용이더군요.

도버 호텔 내부의 모습입니다. 이곳에서 그랜트와 버크너 두 장군이 만나서 이후의 일을 논의했습니다.

포트 도넬슨의 함락은 그랜트를 북부의 영웅으로 만들어준 반면에, 존스턴 장군의 방어계획에는 심대한 차질을 안겨주었습니다. 함락 이후 존스턴은 테네시 대부분을 내주고 미시시피로 후퇴하게 됩니다.

덧글

  • 들꽃향기 2010/05/02 20:49 #

    3번째 사진에서 대포 자체의 크기만 보고서, "저걸로 어떻게 포함을 상대하려고..."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곧 올라온 강의 사진을 보니, 포함의 크기도 상당히 제한이 있었겠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 Mr 스노우 2010/05/02 21:23 #

    컴벌랜드 강이 아무래도 미시시피 강 수준의 거대한 강물은 아니었지요. 포함도 바다에 띄우는 것과 강물에 띄우는 것이 아무래도 차이가 크고 말이지요.

    당시 포함이 그래도 장갑함이긴 했지만 저런 대포에서 발사된 포탄이 배 안으로 어떻게 해서든 들어온다면 안에서 튀면서 상당한 피해를 입혔습니다.
  • 소시민 2010/05/02 21:36 #

    죽어서도 안식을 하지 못하는 남군 전사자가 많다니 슬프네요...
  • Mr 스노우 2010/05/02 21:45 #

    전후에 가족들이 최대한 시신을 수습해서 가족 묘지에 안장했지만, 많은 전사자들이 전염병 발생 우려 때문에 전투 후에 한꺼번에 매장된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시신을 찾기가 어려웠지요.
  • hyjoon 2010/05/02 22:27 #

    우선 포대의 위치가 눈에 뜨이네요. 저렇게 강이 꺾이는 곳에는 퇴적이 이루어져서 강물의 속도도 느려지고, 배에서는 건너편이 보이질 않아 적에 대비하기 힘들테니까요.
    저곳하고 빅스버그에서 이룬 전적 때문에 그랜트가 급부상했죠. 그 사람은 전쟁을 승리로 이끈 것까지는 좋았는데, 대통령이 된 후에.........
  • Mr 스노우 2010/05/03 13:07 #

    그래서 북군의 강물쪽 공격은 결국 실패했지요.

    그랜트의 최고의 장점이자 단점은 사람을 너무 잘 믿어줬다는 것이지요. 전쟁터에서는 통했지만 정치판에서는...-_-
  • 기번 2011/12/31 01:36 # 삭제

    그랜트는 승리를 위해서라면 아군 병사가 얼마나 죽어도 상관없다는 주의였다는 말이 있죠. 이후 벌어진 빅스버그 전투에서 승리함으로 미시시피강이 북군의 지배하에 들어오면서 승리의 발판이 되었다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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