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주의와 정치종교의 탄생 History-근동, 서양사

내셔널리즘은 19세기 유럽사의 주도적 이데올로기로 자리잡았고, 아직까지도 세계적으로 그 영향력이 막강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근대 민족주의는 18세기 말 혁명적 상황의 산물이었다는 데에 대부분 동의합니다.

즉 민족주의의 탄생은 혁명을 이루는 데에 필요한 전제조건과 혁명 전후의 상황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진 결과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부르주아 혁명 주체의 입장에서는 혁명의 성사를 위해 민중과의 연계가 필요한 상황입니다. 기존의 봉건적 이데올로기로는 이러한 연계에는 한계가 있을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이들에게는 공동체의 구성원을 통합하여 집단적 정치행동으로 이끌 수 있는 새로운 이데올로기가 필요한 상황이었습니다. (17세기 영국 내전의 경우 지배계급 내에서의 혁명이라는 성격과 종교적 내전이라는 성격이 강했기 때문에 프랑스 혁명과는 경우가 좀 달랐습니다.)

또한 이러한 이데올로기가 만들어지기 위해서도 혁명적인 상황이 필요했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기존처럼 한 국가내에 계급이 갈리고 지역에 따라서 판이한 문화적 성향이 나타나는 경우에는 전 국민을 하나로 묶는 이데올로기가 나타나기 어렵습니다. 민족, 국민이라는 뜻의 nation은 라틴어 natio에서 온 말이지만, 중세때까지 이 말은 주로 대학 안에서 학생들의 출신지역(언어권에 따라)을 나타내는데 쓰였습니다. 즉 우리가 이해하는 '국민'이나 '민족'이라는 개념은 전혀 나타나지 않았던 것이지요.

다만 지역주의나 왕조에 대한 충성심으로 표현되는 애국주의 등은 어느정도 자연스러운 감정으로서 존재하고 있었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백년전쟁 직후 영국, 프랑스 양국에서 나타나는 현상이 대표적인 것으로, 여기에 원초적 민족주의라는 용어를 쓰는 학자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정치적 이데올로기로서 작용하는 근대 민족주의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더욱 통합적인 연대의식을 심어줄 수 있는 사건이 필요했고, 이것을 충족시켜 준 것이 프랑스 혁명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공동체 의식, 문화적 결속감 등을 창출시키는 이른바 '국민 만들기' 작업은 혁명 이후 활발하게 전개됩니다. 생각해보면 프랑스라는 국가는 상당히 큰 국가이고, 국가 내에서도 지역적 차이는 확연하게 드러납니다. 그런 상황에서 전에 없던 연대의식을 심어주기 위해서는 때로는 인위적인 방법을 동원할 필요가 있겠지요.

삼색기, 휘장, 모자 등의 다양한 도구들은 혁명의식과 동시에 '국민의식'을 일깨우는 도구로 쓰였습니다. 이것은 프랑스 혁명때 처음 나타난 현상은 아닙니다. 조금 앞서 발생한 미국 혁명 때에도 이러한 현상들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국민 만들기' 작업은 19세기 내내 계속됩니다. 미국의 경우는 혁명에서 시작되어 남북전쟁에서야 비로소 완성에 가까워졌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미국의 국기에 대한 맹세를 잘 보면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one nation, under God, indivisible." nation이라는 것이 결코 나누어질 수 없는 하나의 실체임을 역설한 것이지요. 비슷하게 당통도 "프랑스 민족은 결코 나누어질 수 없는 실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혁명 이후 민족주의는 기존의 제도교회를 대체하는 강력한 이데올로기로 발전합니다. 바로 '세속종교' 내지는 '정치종교'의 탄생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정치 자체가 신성화되어 기존의 종교가 갖고 있던 기능을 대신하는 현상을 말하는 것입니다.

에밀리오 젠틸레에 따르면, 정치운동이 정치종교가 되는 경우 다음과 같은 조건을 갖습니다.

1. 집단적 세속적 실체가 신념, 신화 체계의 중심이 되어 사회 구성원의 존재의미와 목표, 선악을 가르는 원칙을 규정한다.
2. 개인과 신성화된 그 세속적 실체를 하나로 묶고, 개인의 충성과 헌신을 이끌어낸다.
3. 정치운동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스스로를 선택된 구성원으로 믿고, 그 정치행위가 신성한 임무의 완수를 목표로 하는 메시아적 기능을 갖는 것으로 간주한다.
4. 신성화된 집단적 실체를 섬기기 위한 정치적 의례를 만들어낸다.

바로 이 세속적 실체의 자리에 '국민'이나 '민족'이 들어갔던 것입니다.

아닌게 아니라 이후 역사적 진행을 보면 민족주의 이데올로기는 종교의 역할을 담당하게 됩니다. 종교가 각 개인에게 정체성을 부여하고 삶의 목적과 어떻게 살 것인가를 알려주듯이 민족주의 이데올로기도 정확히 똑같은 일을 담당합니다.

뿐만 아니라 성역(국가적 기념물)과 의례(국민의례) 등 종교가 갖춰야 할 모든 요소를 두루 갖추게 됩니다.
이 시기의 특징인 대중을 동원한 화려한 정치집회들의 모습을 보면 비슷한 시기 미국에서 유행했던 종교적 부흥회와 너무나도 유사하게 닮아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러한 정치적 스펙터클은 참여하는 사람들에게 종교적 집회가 주는 것과 유사한 종류의 감정을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 이데올로기는 국가를 위해 기꺼이 내가 죽을 수도 있고 남을 죽일 수도 있는 힘의 원동력으로 위력을 발휘하게 되었던 것이지요.

때맞춰서 터진 프랑스 혁명전쟁은 이것을 더욱 촉진시켰습니다. 민족주의 중에서도 저항적, 방어적 민족주의를 따로 구분하는 경우가 있지만, 실제로 공격적 민족주의와 방어적 민족주의의 차이는 매우 작습니다. 프랑스 혁명전쟁의 민족주의도 처음에는 방어적으로 시작했습니다. 프랑스 국가의 가사에 잘 드러나지요. 그러나 전세가 바뀌면서 방어적 민족주의는 호전적이고 공격적인 민족주의로 변화합니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 이 전쟁이 유럽 전역으로 민족주의를 퍼뜨리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바로 프랑스의 침공에 대항해서 말이지요. 그리고 대표적인 케이스가 바로 독일 민족주의의 발흥입니다.

라이프치히 전투. 독일민족주의의 가장 신성한 날 중 하나


프랑스 혁명에서 드러났던 정치종교적인 요소는 이후 19세기 독일에서도 빠짐없이 나타납니다. 거기에 더해서 정치적 공동체를 강조했던 프랑스와는 조금 다른 '문화적 민족주의'를 발전시켜 나갑니다. 로맨티시즘의 영향을 강하게 받아서 게르만의 역사와 신화 등을 중시한 것이 특징이지요. 후발 민족주의 국가에서 흔히 나타나는 현상으로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국가들도 예외는 아닙니다. 이 시기에 독일에서는 '자랑스러운 게르만의 역사'를 강조하는 온갖 기념물들이 세워졌습니다.

토이토부르크 숲에 세워진 아르미니우스(헤르만) 기념상

위의 헤르만 기념상이나 라이프치히 전투 기념비 등은 단순한 기념이 아니라 민족적 자각의 상징이었고, 민족의례의 장소였습니다. 이것이 세워진 자리들은 신성한 장소였고, 일종의 새로운 교회로 기능하였던 것이지요.

그리고 이러한 경향은 20세기에 마침내 절정을 이룹니다.

어떤 면을 보아도 파시즘의 발흥은 단순한 역사의 일탈이 아니라 18세기 말 이래 유럽 국가들이 추구해온 국민 만들기와 정치종교의 발달, 그 부산물인 대중독재의 정점이었습니다.

민족 이데올로기의 강조, 대규모 군중동원, 신고전주의적 취향과 로맨티시즘의 결합, 신화의 정치적 이용 등등 어느것 하나 이 시기에 최초로 등장한 것이 아닙니다. 더욱 제도적, 기술적으로 정교화되었을 뿐이지요.


덧글

  • hyjoon 2010/08/06 17:33 #

    민족주의의 양면성 때문에 이 문제에 대해서 사람들이 좀 더 신중해 줬으면 좋겠습니다. 사실 우리나라의 '자칭' 민족주의 사학(이름하야 재야사학)을 한다며 설치는 부류들을 보면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려 드는 것'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어요......ㄷㄷㄷ
  • Mr 스노우 2010/08/06 17:42 #

    그래서 좀 보라고 쓴건데, 효과가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_-
  • Esperos 2010/08/06 18:12 #

    그런 점에서 '하나의 나라, 하나의 민족'이란 개념은 상당히 인위적인 개념이기도 하지요... 우리나라처럼 일치감치 중앙집권적 관료체제가 완성된 곳에서는 얼핏 이해되지 않지만....(중국 역시 일치감치 중앙집권적 관료체제를 하긴 했지만 거긴 통치구역이 하도 넓다 보니...) 유럽 등에서는 각 지역/직업 자치적인 면이 강했지요. 하다못해 미국도 연방정부가 강력해진 것이 미국 역사에서는 오래지 않기도 하고요.
  • Mr 스노우 2010/08/06 18:36 #

    그렇지요. 때문에 민족만들기 작업이 1세기동안 온갖 진통속에 진행된 것이기도 하고 말이지요.
  • 사악한나무 2010/08/06 20:41 #

    식민지를 차지하기 위한 전쟁을 치르기 위해서 (독일이 상대적으로 프랑스나 영국에 비해서 식민지가 없었으니..) 국민들의 힘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서 민족주의가 등장했다고 볼수도 있으려나.. 1차대전 패배이후에 민족주의가 가장 극단적으로 나타난 경우가 독일이니.. 본문에서의 정치종교라는 단어가 딱 어울리겠군요..
  • Mr 스노우 2010/08/06 20:55 #

    독일에서 민족주의가 등장한 것은 그보다는 조금 이전으로 봅니다. 나폴레옹에게 당한 1806년 예나 전투의 패배 내지는 그 직후 피히테의 강연 '독일 민족에게 고함' 정도를 그 상징적인 시작으로 많이들 이야기하지요. 프랑스의 민족주의가 혁명과 함께 나타나서 혁명전쟁을 치르면서 확대되었다면, 독일 역시 프랑스에게 당한 패배의 충격으로 민족주의가 발흥하게 되었다고 보는 것이지요.
  • 앨런비 2010/08/06 20:57 #

    참 안타깝게도.. 이런 글을 읽어야 할 사람들은 안 읽고 스크롤 내린 후 욕부터 달것 같다는-_-;;
  • Mr 스노우 2010/08/06 21:07 #

    지금까지 욕설은 안 달리는걸 보니 안 읽는 것 같습니다 -_-
  • 공태훈 2010/08/06 21:28 #


    수년전에 한양대의 임지현 교수님이 욕을 대차게 들어 먹을때 그분의 저서를 읽어 보고 나서 감동했었지요.


    과연 고구려 시절에 민족이란 개념이 있기나 했을지.. 물론 저동네와 우리는 다르다 정도의 인식은 있었겠지
    만 우리는 단군의 후손이며 추모성왕을 모시는 ....식의 개념이 있을 수가 없는데 말입니다.

    당장 민족이란 개념을 뇌내에 박아 넣을 라면 근대적인 개념의 전 국민을 포괄하는 교육체계가 탄생하고,
    국정 교과서가 탄생하고 각종 프로파간다를 만들고 이를 보급하는 주체가 필요한데

    문제는 고구려 시절에는 저런 일이 없었다는 거죠.

    아니 일단 글자를 알아 먹어야 교육을 할텐데.....
  • Mr 스노우 2010/08/06 21:32 #

    물론입니다. 흔히 이야기되는 proto-nationalism만 해도 근대 민족주의와는 상당히 다른 개념이니까요.
  • 나츠메 2010/08/06 22:47 #

    1. 민족주의란 이렇게 신화에 가까운 것인데, 왜 그 민족주의에 기반해서 식민지 조선사를 자꾸 해석하려 하고, 나아가 그 이데올로기에 충실하기 위해 사료를 조작하거나, 거짓말을 일삼는지 모르겠습니다.


    2. 임지현 선생이 유행시킨 '대중 독재'란 단어.... 20세기 파시즘과 민중, 민족(국민)을 생각하게 만드는 단어입니다.
  • Mr 스노우 2010/08/06 22:58 #

    어느 시대나 양면성은 있는겁니다. 하지만 일제시대에 관해서 개개인의 증언만 수집한다면 천차만별이긴 하지만 그 시대를 부정적으로 그릴 수 있는 증거 또한 많습니다.
  • 소시민 2010/08/06 23:41 #

    최근에 읽은 <상상의 공동체>에서도 중세의 종교에 대한 무의식적인 정서가 근대의 민족주의로 이동했다

    는 내용이 나온 것 같네요.
  • Mr 스노우 2010/08/07 00:30 #

    인간이 존재하는한 종교심이라는것은 없어질 수 없는 것이니까요. 고대로부터 그래왔고, 근대 민족주의가 그러한 요소를 흡수한 것이지요.
  • Cicero 2010/08/06 23:42 #

    1. 정치종교를 네셔널리즘이 아닌 포스트모더니즘적인 대체종교 현상으로 바라보는 관점도 있습니다. 기존종교과 모더니즘으로 그 지위를 상실하자, 세속적인 정치이념이 세속종교로서 기존종교의 자리를 대체했다는 관점이죠. 민족주의가 아닌 공산주의같은 다른 이념들의 정치종교를 설명할때 꽤나 유효한 관점이지요.

    2. 젠틸레의 정치종교에 앞서 벨라는 시민종교라는 개념을 내세웠죠. 미국의 특수성을 설명하면서 온갖 잡탕스러운 국민들이 뭉쳤어도, 결국 모두들 동의할수있는 최소한의 어떤 공감된 가치관과 그에 대한 준수를 설명하며 사용한 개념입죠. 이전 학기수업때, 한국의 현상황을 반공주의-보다 정확히는 반북주의라는 시민종교가 민주화되면서 무너지면서 이를 대체할 시민종교의 부재로 인한 것으로 가설을 세운게 생각나는군요.
  • Mr 스노우 2010/08/07 00:32 #

    1. 확실히 그런 측면도 있겠군요. 숭배의 대상이 되는 세속적 실체에 꼭 민족만 있으리란 법은 없으니까요.

    2. 저도 수업시간에 시민종교와 정치종교의 대표적인 예로 미국와 나치 독일을 배운 기억이 나네요. 교수님께서 프랑스 혁명의 겨우 두 가지 특성이 뒤섞여 있다고 하셨구요. 한국의 경우 상당히 적절해 보입니다.
  • 2010/08/06 23:43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Mr 스노우 2010/08/07 00:32 #

    확실히 그렇지요 -_-
  • 2010/08/07 01:23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Mr 스노우 2010/08/07 10:31 #

    바쁜건지 귀찮은건지 안읽은건지 모르겠군요 ㅎㅎ

    저도 사실 한 학기 배운거라 제대로 이해했는가에 대해서 좀 의문이 없지는 않았지만 역밸 상황을 보고 있자니 어설프게라도 이 이야기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썼습니다. 잘 읽어주셨다니 감사합니다 ㅎㅎ
  • 맑음 2011/10/21 20:46 # 삭제

    똑똑하시네요 ㅋ
  • 유수 2016/10/04 18:56 #

    좋은글 잘 봤습니다. 새로 등장한 민족주의 이데올로기가 나중에는 기존의 종교역할을 담당하게 되었군요. 정치종교의 탄생이라는 것이 참 인상적입니다. 상당히 옛날글이라 괜찮으실지 모르겠지만 잘 모르는 분들에게는 이만큼 잘 알려줄글이 없는데 퍼가도 될런지요?
  • Mr 스노우 2016/10/04 19:00 #

    네 다만 제가 지금 막 새 글 하나 올리려던 참이라 며칠만 기다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ㅎ
  • 유수 2016/10/04 19:23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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