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쓴 터키 여행기 포스팅 횟수가 총 9개나 되지만 이제 겨우 여행 3일째를 쓰고 있습니다 -_-
이스탄불을 떠나서 카파도키아를 보고 세번째로 도착한 이번 목적지는 안탈리아입니다. 타우로스 산맥을 넘어서 도착한 안탈리아는 지중해변에 위치한 유서깊은(우리가 갔던 곳 중에 안 그런 곳이 있겠는가마는...-_-) 도시입니다. 온화한 지중해성 기후 덕분에 겨울철 휴양지로 인기가 높지요. 다만 한여름은... -_- 터키는 건조해서 여름에도 그늘에 들어가면 시원한데 안탈리아는 해안에 위치해서 그런지 습하더군요. 그래도 바닷바람은 시원합니다. 독일인들이 특히 이곳을 즐겨찾기 때문에 이 동네 주민들 중에는 독일어에 유창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팜필리아의 중심도시로 기능하고 있는 이곳, 안탈리아는 기원전 185년에 페르가몬의 왕 아탈로스 2세에 의해 해군기지로 세워졌습니다. 아탈로스 2세의 이름을 따서 '아탈레이아'라는 이름이 붙었지요. 현재 이름인 안탈리아는 그리스어 아탈레이아를 터키식으로 읽은것입니다. 비잔티움 제국 시대에도 이 도시는 제국의 주요 항구이자 제국 해군의 거점으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만지케르트의 패전 이후에도 비잔티움 제국은 해군력의 우위 덕분에 한동안 이 도시를 지킬 수 있었지만 결국 1207년 셀주크 투르크는 이곳을 점령합니다. 1391년에는 오스만 투르크 제국의 일부가 되었고, 1차대전 직후 잠깐의 이탈리아 점령기간을 거쳐 다시 터키의 영토가 됩니다.
안탈리아에 도착해서 버스에서 내리자 제일 먼저 말을 타고 있는 터키 공화국의 초대 대통령 아타튀르크의 동상이 눈에 들어옵니다. 여기가 춤후리예트 광장으로 안탈리아 관광은 대부분 여기서부터 시작합니다.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는 터키에서 가장 존경받는 사람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화폐는 물론이고 나라 곳곳에서 그의 동상과 초상화를 찾아볼 수 있지요. 1차세계대전의 패배로 완전히 사라질 위기에 처한 터키 국가를 살려낸 인물이 바로 아타튀르크입니다. 쿠데타로 오스만 제국을 무너뜨리고 터키 공화국을 세운 뒤에 초대 대통령이 되었지요. 지난번에 쓰려다가 빼먹었지만, 첫날 이스탄불에서 보았던 돌마바체 궁전은 그가 대통령으로 집무를 보았던 곳이기도 합니다. 그는 1938년 11월 10일 아침 9시 5분에 돌마바체 궁전에서 숨을 거두었습니다. 그래서 궁전의 모든 시계는 9시 5분에 맞춰진 상태로 멈춰있습니다.
동상에서 눈을 돌리니 광장 아래로 시가지가 펼쳐져 있습니다. 바로 눈에 들어오는 것이 저 '이블리 미나레트'입니다. 저 건물은 본래 비잔티움 시대 정교회 성당이었으나 셀주크 투르크가 이곳을 점령한 후에 모스크로 바꾸고 미나레트를 세웠습니다.
아래로 내려가면 푸른 지중해와 옛 항구가 모습을 드러냅니다.
배 위에서 본 옛 항구의 모습. 여기서도 배를 탔습니다. 지중해의 물살에 잠시 몸을 맡기고보니...해적영화 찍는 기분입니다. 하기야 고대부터 소아시아 해안지대에 해적들의 근거지가 있었다고 하지요. 폼페이우스가 명성을 얻은 것도 그 일대 해적들 토벌하면서였고...
눈부시게 푸른 지중해.
우리가 탔던 배인데, 이 안에도 아타튀르크 대통령이...-.-
1시간여 바다를 떠다닌 후에 다시 항구쪽으로 돌아옵니다.
마치 병풍처럼 항구를 석회암 절벽과 성벽이 감싸고 있습니다. 저 성벽은 로마시대의 것입니다. 물론 지금 남아있는 성벽은 비잔티움 제국시대에 마누엘 콤네노스 황제가 대대적으로 보수한 것이기 때문에 100퍼센트 고대 로마의 모습은 아닙니다만..
항구에서 위로 걸어서 이동하면 상당히 고풍스러운 거리가 있습니다. 곳곳에는 관광객을 상대하는 기념품점이 들어차 있지요. 하지만 좁은 골목들은 옛 오스만 시대의 자취가 상당부분 남아있습니다. 집들도 그 시대부터 있던 오래된 집들이 많습니다.
그 골목의 한 끝에는 '잘려나간 미나레트'라고 불리는 건물이 하나 있습니다. 이 기구한 운명의 건물은 본래 서기 2세기에 지어진 신전이었는데, 6세기에 교회로 바뀌었고, 7세기 아랍 침공때 크게 파괴되었다가 보수되었고, 이후 셀주크 투르크가 점령한 후에 모스크로 바뀌었다가 잠시 키프로스가 이곳을 점령했을때 다시 교회로 바뀌었고, 15세기에 다시 모스크로 바뀌었고, 19세기에 결국 화재로 파괴되어 종교건물로서의 생명을 다했습니다. 여러 이름으로 불렸으나 화재로 위쪽이 파괴된 후에는 '잘려나간 미나레트'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이것이 안탈리아에서 가장 유명한 유적입니다. 이 아름다운 건축물은 로마제국의 5현제 중 세번째 황제, 하드리아누스 황제가 제국 전역을 순행하던 중 이곳 방문인증(?)으로 지어준 건물입니다. '하드리아누스의 문'으로 불리는 이 건물은 앞의 이오니아식 기둥이 특징입니다. 고대 기둥 양식이 대표적인게 3개인데 위에 양머리 비슷한 장식이 있으면 이오니아 식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앞모습.
여기까지 보고서 조금 더 걸어가서 해안가 공원에서 아이스크림 하나 먹으면서 쉬고 있자니 어느새 오후 시간도 슬슬 지나갑니다. 이제 호텔로 돌아가서 햇볕에 달구어진 몸을 식히면서 조금 휴식을 취할 시간입니다.
이스탄불을 떠나서 카파도키아를 보고 세번째로 도착한 이번 목적지는 안탈리아입니다. 타우로스 산맥을 넘어서 도착한 안탈리아는 지중해변에 위치한 유서깊은(우리가 갔던 곳 중에 안 그런 곳이 있겠는가마는...-_-) 도시입니다. 온화한 지중해성 기후 덕분에 겨울철 휴양지로 인기가 높지요. 다만 한여름은... -_- 터키는 건조해서 여름에도 그늘에 들어가면 시원한데 안탈리아는 해안에 위치해서 그런지 습하더군요. 그래도 바닷바람은 시원합니다. 독일인들이 특히 이곳을 즐겨찾기 때문에 이 동네 주민들 중에는 독일어에 유창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팜필리아의 중심도시로 기능하고 있는 이곳, 안탈리아는 기원전 185년에 페르가몬의 왕 아탈로스 2세에 의해 해군기지로 세워졌습니다. 아탈로스 2세의 이름을 따서 '아탈레이아'라는 이름이 붙었지요. 현재 이름인 안탈리아는 그리스어 아탈레이아를 터키식으로 읽은것입니다. 비잔티움 제국 시대에도 이 도시는 제국의 주요 항구이자 제국 해군의 거점으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만지케르트의 패전 이후에도 비잔티움 제국은 해군력의 우위 덕분에 한동안 이 도시를 지킬 수 있었지만 결국 1207년 셀주크 투르크는 이곳을 점령합니다. 1391년에는 오스만 투르크 제국의 일부가 되었고, 1차대전 직후 잠깐의 이탈리아 점령기간을 거쳐 다시 터키의 영토가 됩니다.


아래로 내려가면 푸른 지중해와 옛 항구가 모습을 드러냅니다.



1시간여 바다를 떠다닌 후에 다시 항구쪽으로 돌아옵니다.

항구에서 위로 걸어서 이동하면 상당히 고풍스러운 거리가 있습니다. 곳곳에는 관광객을 상대하는 기념품점이 들어차 있지요. 하지만 좁은 골목들은 옛 오스만 시대의 자취가 상당부분 남아있습니다. 집들도 그 시대부터 있던 오래된 집들이 많습니다.



여기까지 보고서 조금 더 걸어가서 해안가 공원에서 아이스크림 하나 먹으면서 쉬고 있자니 어느새 오후 시간도 슬슬 지나갑니다. 이제 호텔로 돌아가서 햇볕에 달구어진 몸을 식히면서 조금 휴식을 취할 시간입니다.
덧글
에 부침의 역사 또한 길어진듯 합니다.
역시 케말 없이는 오늘날의 터키를 설명할 수 없겠군요..
건필 기원합니다..^^
그나저나 키프로스의 십자군 세력이 이 도시를 점령한 적이 있었다니 처음 알았습니다. ㄷㄷ
사실 그리스에서도 비슷한 예를 하나 본게 있습니다 ㅎㅎ 그 이야기는 나중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