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코린토스-유물전시관, 일정 7일차 ㄴ터키, 그리스 여행기

오늘의 목적지는 코린토스입니다. 아테네에서 코린토스로 가는 길들도 그냥 지나치는게 아쉬울정도로 곳곳에 역사와 이야기가 풍부합니다. 신비로운 비교의 현장인 엘레우시스, 펠로폰네소스 전쟁 발발의 단초가 되었던 메가라... 역시 서구문명의 산실이자 신화의 나라답다는 생각이 듭니다.

코린토스는 고대 그리스 상업의 중심지였습니다. 좁은 펠로폰네소스 지협에 위치한 이 도시는 배들을 해협 반대편으로 넘겨주는 산업으로 돈을 벌었고, 이러한 지리적 이점을 바탕으로 부유한 도시로 성장했습니다. 지금은 코린토스 운하가 이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만사 성자필쇠, 로마의 팽창기에 코린토스는 아카이아 동맹을 결성하여 로마에 정면으로 대항하였고, 그 결과 카르타고와 비슷한 운명을 맞았습니다. 그리스에 위치한 유적지이지만 코린토스에서 그리스 시대의 유적을 찾아보기 어려운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승리한 로마군은 코린토스를 무자비하게 파괴했습니다.(그리고 일본의 모 작가는 이것을 그리스인의 머리를 식혀주었다고 칭찬했지요..-_-)

그 뒤에 코린토스는 율리우스 카이사르와 그 후계자인 아우구스투스에 의해 재건되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남아있는 유적지는 거의 로마시대의 것입니다. 로마 제국 치하에서도 코린토스는 예전의 부를 누릴 수 있었지만 로마제국의 멸망과 함께 그 역시 사라지게 됩니다.

동시에 그리스도교 역사에 있어서도 코린토스는 매우 중요한 도시입니다. 코린토스 교회는 유럽에 세워진 최초의 그리스도교 교회입니다. 그때까지 아시아에서 성장하던 그리스도교가 최초로 유럽 대륙에 만든 거점인 셈이지요. 네로 황제는 코린토스에 운하를 파기 위해 6천명의 유대인을 이주시켰으나 반란으로 공사가 중단되어버립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로가 도착했을때 이들 유대인들이 그와 함께 교회를 세운 주축이 됩니다.

물론 유럽 최초의 교회를 세우는 작업은 험난했습니다. 바울로는 이교신앙뿐 아니라 코린토스의 환락적인 분위기와도 싸워야 했고, 동족인 유대인들에게 고발까지 당했습니다.(이 고발은 총독 갈리오가 받아들이지 않았지요.) 나중에 그가 떠난 뒤에는 교회가 사분오열되버리기까지 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가 보낸 편지가 신약성서에 남아있는 <코린토서>입니다.

"내가 인간의 여러 언어와 천사의 언어로 말한다 하여도 나에게 사랑이 없으면 나는 요란한 징이나 소란한 꽹과리에 지나지 않습니다."로 시작하는 코린토서의 유명한 구절을 코린토스로 가는 길에서 외워보는 것도 상당히 특별한 경험일 것입니다.
이런저런 잡생각을 하다보니 어느새 코린토스에 도착했습니다. 본격적인 유적 답사에 앞서서 유물 전시관을 먼저 둘러보아야 합니다. 그리스에서는 원칙적으로 한 유적지에서 발굴된 유물은 반드시 그곳에 전시하게 되어있습니다. 이 전시관에는 코린토스에서 출토된 다양한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미케네 시대부터 로마 시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하지만, 가장 많은 것은 역시 앞서 말한 사정 때문에 로마 시대의 유물입니다.
다양한 도자기들.
코린토스가 역사에 남긴 이름 중 하나가 바로 이 코린토스 식 투구지요. 안면이 노출된 아테네 식 투구에 비해 코린토스 식 투구는 얼굴 전체를 덮고 있습니다. 주로 스파르타를 비롯한 펠로폰네소스 도시국가들에서 널리 사용되었지요. 물론 아테네에서 사용 안한것은 아니지만요. 이 투구는 시야가 제한되고 소리를 잘 들을 수 없다는 약점 때문에 이후에는 전장에서 조금씩 사라지게 됩니다.

스핑크스. 미케네 시대부터 그리스와 이집트 간의 문화교류를 보여주는 한 예입니다. 그리스와 이집트는 활발한 교역을 했을 뿐 아니라, 미케네 시대부터 그리스인들이 파라오의 용병으로 활동하기도 하였습니다. 이런 것을 들어서 그리스 문명을 낮춰보는 이들도 간혹 있지만 그것은 잘못된 태도입니다. 그리스의 스핑크스가 이집트와 분명한 차이를 보이듯이 그리스는 근동의 선진문물을 그대로 모방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것으로 소화시켰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고전시대 독특한 문화를 탄생시켰고 말이지요.
모자이크
아우구스투스 황제 입상. 파괴된 코린토스를 재건했으니 제 2의 건설자나 다름없겠습니다.
율리우스 카이사르

코린토스에 운하를 파려고 했던 우리의 네로 황제. 뭐 코린토스야 충분히 운하를 팔 수 있는 지형이었으니까요. 하지만 그의 꿈은 결국 19세기에 와서야 실현됩니다.
그리스 신화의 내용을 소재로 한 부조.

코린토스에 유대인 공동체가 있었음을 보여주는 유적.

대략 여기까지 보고 전시관을 나서면 이제 본격적으로 유적을 돌아볼 시간입니다.

덧글

  • hyjoon 2010/08/21 20:22 #

    역시나 긴 역사 만큼이나 볼게 많긴 하군요. 그럼 점에서야 우리나라도 마찬가지긴 합니다만, 아무래도 사람들이 자신들이 가진 전통에 대한 자부심과 애정에 대한 인식이 그것을 더욱 돋보이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국보 1호를 태워놓고는 복원하면 장땡아니냐는 모 국가와 비교되요.....(...)
  • Mr 스노우 2010/08/21 22:06 #

    사실 그리스인들이야 자신들의 문화적 전통에 대해서 충분히 자부심을 가질만 하지요. 땅크기에 목매다는 어떤 양반들 생각은 좀 다를지도 모르겠지만서도...-_-

  • highseek 2010/08/21 21:48 #

    그리스 신화를 표현한 저 부조는, 호루스와 세트의 대결을 연상시킵니다. 사실 둘은 닮은 점이 많죠.
  • Mr 스노우 2010/08/21 22:04 #

    과연 이집트로부터 받은 영향이 컸던 것 같습니다. 저 부조는 제 기억으로는 올림포스 신들과 기가스 족의 전쟁을 묘사한 것이었던 것 같습니다.
  • 유재준 2012/01/29 22:18 # 삭제

    대전 유재준입니다.
    5월, 그리스 여행 준비에 많은 도움 받고 있어 고맙다는 말씀도 함께 드립니다.
    제 여정도 터키에서 아테네인데 민박이용 여행이라서 터키 어느 곳에서 배를 타는지,
    아테네 도착 항구는 어디인지 궁굼했던 게 풀립니다.
    제 숙소는 '신 다그마' 광장 근처인데 아테네 외항에서 버스로 접근할 수 있군요.
    감사하다는 말씀 다시 올립니다.
    안녕히 계셔요.
  • Mr 스노우 2012/01/31 02:17 #

    즐거운 여행 하시길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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