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크로폴리스에서 내려와서 조금 걸어가면 대리석 언덕 하나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곳이 전쟁의 신 아레스의 언덕이라는 뜻을 가진 아레이오스 파고스입니다. 하지만 로마의 마르스 광장과 달리 이곳은 고대 아테네의 법정 내지는 회의장으로 기능하였습니다.
아레이오 파고스 전경. 신화에 따르면 전쟁의 신 아레스는 자신의 딸 알키페를 겁탈하려는 포세이돈의아들 하리로티오스를 죽인 뒤에 이 언덕에서 살인죄로 재판을 받았습니다. 신화에 기록된 이 인류 최초의 재판에서 아레스 신은 올림포스 신들로 구성된 배심원단에 의해 정당방위로 무죄를 선고받습니다. 이 재판은 고대 그리스 사회에서 공정한 판결의 모범 사례처럼 되었는데, 현재 그리스 대법원의 이름도 아레이오스 파고스입니다.
또 다른 측면으로도 이 언덕은 매우 큰 역사적 가치를 같습니다. 아테네에 도착한 사도 바울로가 바로 이 언덕에서 아테네 철학자들을 향해 연설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바오로를 아레오파고스로 데리고 가서 물었다.
"당신이 말하는 그 새로운 가르침을 우리가 자세히 알 수 있겠소?
당신은 우리가 듣기에 생소한 것을 전하는데, 우리는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고 싶소."
사실 아테네인들과 그곳에 머무르는 외국인들은 모두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이야기하고 듣는 일로만 세월을 보내는 사람들이었다.
바오로는 아레오파고스 가운데에 서서 말하였다.
"아테네 시민 여러분, 내가 보기에 여러분은 모든 면에서 대단한 종교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내가 돌아다니며 여러분의 예배소들을 살펴보다가,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겨진 제단도 보았습니다.
여러분이 알지도 못하고 숭배하는 그 대상을 내가 여러분에게 선포하려고 합니다."
사도행전 17:19-23
뒷 이야기는 직접 찾아서 읽으시면 되겠습니다. 아무튼 여러모로 역사적인 장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언덕 남쪽에는 사도행전 17장 22절부터 34절까지가 동판에 새겨져 있습니다. 그리스는 신화의 땅이지만 동시에 정교회의 나라입니다.
계단이 있지만 아레이오스 파고스에 오르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습니다. 하도 많은 사람들이 밟고 다녀서인지 돌들이 너무 반질반질하고 미끄럽습니다. 그 위도 미끄럽고 울퉁불퉁해서 넘어지기 딱 좋은 곳입니다. 그래도 올라가지 않고 지나치기에는 이 언덕이 품고 있는 역사의 무게가 너무 크지요. 그리고 이 위에 올라서 아크로폴리스를 올려다보는 것도 매우 특별한 경험입니다. 바울로가 말한대로 신앙심이 깊었던 고대 아테네인들. 그리스인들은 아직도 신앙심이 깊지만, 그 신앙의 대상은 이제 정교로 바뀌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도 바울로의 흔적이 남아있는 아레이오스 파고스에서 아크로폴리스를 바라보고 있으면 마치 고대종교에서 그리스도교로 이어지는 역사의 흐름이 느껴지는 것만 같습니다.
아크로폴리스를 반대편 쪽을 바라보면 보이는 이곳은 프닉스 언덕입니다. 고대 아테네의 민회가 열렸던 말 그대로 민주주의의 산실이나 다름없는 장소입니다. 지금은 한적한 언덕이지만 옛날 이곳은 수많은 사람들이 밀집하여 열띤 토론이 이루어졌겠지요. 로마인들이 열명이 모이면 열가지 의견이 나온다고 놀렸듯이 때로는 답답해 보이기도 했지만, 활발한 의견개진과 토론이 그리스 민주정치의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민주공화국을 표방하는 나라에서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도 저 프닉스 언덕은 매우 중요한 장소일것입니다.
고대 그리스의 위대한 유산인 민주정은 그러나 물론 한계도 많았습니다. 프닉스 언덕을 보고 아레이오스 파고스에서 내려와 이동한 다음 장소는 그 한계와 위험성을 섬뜩하게 경고해주고 있습니다.
소크라테스가 갇혀있었다고 전해지는 감옥입니다. 소크라테스는 기원전 399년 "청년들을 타락시키고 국가의 신을 믿지 않았으며 다이모니아를 믿었다"는 이유로 고발되어 사형에 처해졌습니다.
소크라테스가 갇혀있었던 이 감옥은 대중민주주의가 얼마나 쉽게 변질될 수 있는가에 대한 경고로 남아있습니다. 그리고 이 경고는 아직까지도 유효합니다. 고대 그리스에서 민주정이 중우정치로 변질되듯이, 근대에 들어선 뒤에도 대중민주주의는 쉽사리 대중독재, 파시즘으로 변질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막아낼 수 있는것은 결국 민주정을 책임지는 시민들 개개인입니다. 아테네의 한 숲속에 쓸쓸히 남아있는 이 감옥은 지금도 조용히 이러한 교훈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덧글
그리고 소크라테스의 감옥......언젠가 플라톤이 쓴 소크라테스의 변론과 크리톤을 읽어봤는데 왜 아놀드 토인비가 '인류 최초의 양심범'이라고 햇는지 감이 가더군요. 중우정치로 흐르는 민주주의의 위험성......이름과 위엄에 걸맞게 많은 생각 거리를 주는 나라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