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이스라엘의 역사 (15)-귀환과 제2성전시대의 개막 ㄴ고대 이스라엘의 역사

새로운 강자 등장

이쪽 동네 국가들이 그렇듯이, 바빌로니아의 전성기도 길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사람 손가락이 나타나더니, 촛대 앞 왕궁 석고 벽에 글을 쓰기 시작하였다. 임금은 글자를 쓰는 손을 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임금은 얼굴 빛이 달라졌다 .......... "그리하여 하느님꼐서 손을 보내셔서 저 글자를 쓰게 하신 것입니다. 그렇게 쓰여진 글자는 '므네 므네 트켈' 그리고 '파르신'입니다. 그 뜻은 이렇습니다. '므네'는 하느님께서 임금님 나라의 날수를 헤아리시어 이 나라를 끝내셨다는 뜻입니다. '트켈'은 임금님을 저울에 달아보니 무게가 모자랐다는 뜻입니다. '파르신'은 임금님의 나라가 둘로 가라져서, 메디아인들과 페르시아인들에게 주어졌다는 뜻입니다. (다니엘 5장)



통역 불러와

당시 바빌로니아 제국은 '비옥한 초승달' 지역에 웅크리고 있었고, 메디아 왕국 또한 장악하고 있었습니다. 북쪽으로 소아시아는 뤼디아 왕국이 자리잡고 있었지요.

그런데 기원전 550년, 이곳의 판도에 변화가 일어납니다. 메디아 왕국의 조공국이던 소왕국 페르시아의 통치자 퀴로스가 그의 조부인 메디아 왕을 꺾고 그의 왕국을 차지해버렸습니다.(헤로도토스가 소개한 에피소드는 믿거나 말거나..-_-) 뒤이어서 뤼디아의 전설적인 왕 크로이소스도 물리치고 뤼디아의 수도 사르디스까지 정복했습니다. 그 와중에 그 길목에 위치한 아르메니아, 카파도키아, 킬리키아도 모두 그의 세력에 들어가버렸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정작 바빌로니아는 내분에 휩싸여 있었습니다. 바빌로니아 왕인 나보니도스는 신(Sin)신을 편향숭배하여 마르둑 제사장 집단의 반발을 일으켰는데, 이때문에 바빌로니아 내에서 반 나보니도스 세력이 팽배해 있었습니다. 당시 왕은 수도 바빌론을 비우고 테마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바빌론에는 그의 아들인 벨사차르가 대리 임금으로 머물러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다니엘서에서 벽에 쓰인 글씨를 보았다는 그 양반)

마침내 페르시아의 공격이 시작되었고, 바빌로니아 제국은 힘 한번 제대로 써보지 못하고 무너졌습니다. 기원전 539년 바빌론에 입성한 퀴로스는 유례가 없는 대제국의 대왕이 되었습니다.


귀환

퀴로스는 흔히 공정하고 자비로운 대왕으로, 그리고 "해방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다름아닌 퀴로스 본인이 그런 선전을 적극 활용하였지요. 그는 바빌로니아의 유배 정책을 완전히 바꾸었습니다. 페르시아는 정복된 종족들이 자기 땅에서 각자의 종교를 믿는 것을 허락했습니다. 그것이 대제국을 통치하는데 더 쉬운 길이라는 것을 알았지요.(물론 페르시아의 군주들이 관용적이긴 했으나, 어디까지나 그것이 이롭다고 판단될 경우였습니다. 필요하다면 이들도 언제든 가혹하게 돌변했습니다.)

기원전 539년 퀴로스 대왕은 칙령을 내려 바빌론에 끌려온 모든 유대인들에게 귀환을 허락하였습니다. 그리고 성전과 도성을 재건할 것도 허락되었습니다. 물론 성전의 재건은 퀴로스 치세중에는 현실화되지 못하였고, 이 칙령이 내렸을 때 바로 귀환한 백성들도  많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아직은 여건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퀴로스 원통

기원전 525년. 퀴로스의 뒤를 이은 페르시아의 대왕 캄뷔세스 2세는 이집트의 프삼메티쿠스 3세의 군대를 격파하고 헬리오스와 멤피스를 점령한 뒤, 나일강 상류까지 쳐들어갔습니다. 이렇게 해서 마침내 페르시아의 세력이 시리아-팔레스티나와 이집트까지 미쳤고, 이에 더 많은 유다인들이 본토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캄뷔세스가 죽고, 내분을 거쳐 다레이오스 1세가 페르시아의 대왕이 되는 와중에 수도 바빌론에서 소요사태가 발생했고, 그 와중에 또 많은 유다인들이 귀환하게 됩니다.


성전재건

다레이오스 제위 초기에 예루살렘에서는 마침내 성전 재건이 시작됩니다. 재건의 책임자는 성서에 따르면 즈루빠벨과 예수아였고, 이들의 지휘 예루살렘에 두번째 성전이 세워졌습니다. 이때부터를 제2성전시대로 칭합니다.
제2성전(이라지만 실은 헤로데가 재건한 것) 모형

비록 규모 면에서는 솔로몬의 성전에 미치지 못했다 하더라도 마침내 유배에서 풀려나 정신적 중심지를 회복하게 된 유다인들에게는 감격스러운 순간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페르시아 제국의 속주

다레이오스 1세가 구축한 탄탄한 행정조직 아래 페르시아 제국은 전성기를 구가하였고, 유다는 그 영토의 극히 일부로 존재했습니다. 유다인들에게 페르시아 제국은 말 그대로 그들이 알고 있는 모든 땅을 통치하는 제국이었지요. 제국은 속주들을 유연하게 통치하였습니다. 페르시아인들은 유다인들을 총독으로 임명하여 동족들을 통치하게 하였고, 속주들은 자치를 보장받았습니다.

다레이오스 1세 말년에는 이집트에서 반란이 일어났고, 아시는대로 그리스 복속에 실패하였습니다. 그의 아들이자 한국어로는 이름이 "관대하"라고도 하는 크세르크세스 1세가 대왕의 자리를 이어받았고, 그 두 가지 과업도 이어받게 되었습니다.
는 페이크고(........)
실제로는 이렇게 생긴 양반이었습니다.

아무튼 이집트 반란은 3년만에 진압했는데, 그리스 원정은 아시다시피(.......)

이 시기 이스라엘 역사에서 주목할만한 것은 에즈라와 느헤미야에 의한 예루살렘 도성 재건인데 시대배경이 논란과 혼선이 좀 있긴 하지만 대체로 크세르크세스 1세의 뒤를 이은 아르타크세르크세스 1세 때로 보고 있습니다. 성서 기록을 통해서 이 도성재건 작업 당시 유다인 내부의 알력도 심했고, 사마리아인들의 방해, 여전한 계급갈등이 존재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유다 총독으로 임명된 느헤미야는 불굴의 의지로 작업을 수행해 나갑니다. 적들의 방해에 대비하여 절반은 무장을 하고 절반은 공사를 하는 식으로 진행되었고, 마침내 바빌로니아가 파괴했던 예루살렘은 재건됩니다. 이 역사적인 순간을 성서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레위인 찬양대

그때에 온 백성이 일제히 '물 문' 앞 광장에 모여, 율법학자 에즈라에게 주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명령하신 모세의 율법서를 가져오도록 청하였다.
에즈라 사제는 남자와 여자, 그리고 말귀를 알아들을 수 있는 모든 이로 이루어진 회중 앞에 율법서를 가져왔다. 때는 일곱째 달 초하룻날이었다.
그는 '물 문' 앞 광장에서 해 뜰때부터 한낮이 되기까지 남자와 여자와 알아들을 수 있는 이들에게 그것을 읽어주었다. 백성들은 모두 율법서의 말씀에 귀를 기울였다. .........
에즈라는 온 백성보다 높은 곳에 자리를 잡았으므로, 그들이 보는 앞에서 책을 폈다. 그가 책을 펴자 온 백성이 일어섰다.
에즈라가 위대하신 주 하느님을 찬양하자, 온 백성은 손을 쳐들고 "아멘, 아멘!"하고 응답하였다. 그런 다음에 무릎을 꿇고 땅에 엎드려 주님께 경배하였다.
느헤미야 총독과 율법학자며 사제인 에즈라와 백성을 가르치던 레위인들이 온 백성에게 타일렀다.
"오늘은 주 여러분의 하느님께 거룩한 날이니, 슬퍼하지도 울지도 마십시오."
율법의 말씀을 들으면서 온 백성이 울었기 때문이다.
에즈라가 다시 그들에게 말하였다.
"가서 맛있는 음식을 먹고 단 술을 마시십시오. 오늘은 우리 주님께 거룩한 날이니, 미처 마련하지 못한 이에게는 그의 몫을 보내 주십시오. 주님께서 베푸시는 기쁨이 바로 여러분의 힘이니, 서러워하지들 마십시오." ........
온 백성은 자기에게 선포된 말씀을 알아들었으므로, 가서 먹고 마시고 몫을 나누어 보내며 크게 기뻐하였다.
(느헤미야 8장)
율법서를 읽는 에즈라

덧글

  • 창검의 빛 2011/01/15 21:59 #

    하지만 재건된 성전은 솔로몬 성전보다 볼품이 없었다고......ㅠㅠㅠㅠㅠㅠ
  • Mr 스노우 2011/01/15 22:50 #

    솔직히 재건했다는것 자체가 더 신기하다는...-_-
  • 첫걸음 2011/01/15 22:34 #

    아오 저 300의 크세르크세스만 보면 서구인들의 시각이 참..... 어떻게 페르시아 대왕을 파라오로 만들어 놓는지 모르겠어요ㅋㅋㅋㅋㅋㅋㅋ 어떻게 보면 페르시아의 저런 관용정책도 실상 유대인을 전략적으로 이용하려는 목적도 있었겠죠?
  • Mr 스노우 2011/01/15 22:52 #

    뭐 어차피 만화가 원작인데, 그냥 웃고 넘어가면 되는겁니다 ㅎㅎ
    페르시아 사람들이 다른 나라 사람들보다 딱히 착한 사람이었던것도 아니고, 그게 가장 본전 뽑는 길이라고 여겼으니 가능했던 것이지요.(실제로 페르시아도 필요하면 학살도 하고 할 것 다 했다는..)
  • windxellos 2011/01/15 23:06 #

    성전도 그렇지만 성벽을 재건한 일이 참 대단했다 싶습니다. 느헤미야서에서 묘사되는 정황을 보면 상황이
    보통 긴박한 것이 아니었던 듯한데 거의 닥돌하다시피 해서 순식간에 담장을 쌓아버린 듯이 묘사되더군요.
  • Mr 스노우 2011/01/15 23:19 #

    그렇지요. 공사중에도 무장을 풀어놓을 수 없는 팽팽한 상황이었으니...
  • 들꽃향기 2011/01/16 03:08 #

    이집트와 시리아 사이에서 포섭을 잘만 하면 자신들을 지지하는 세력을 이식시킬 수 있다는게 어쩌면 페르시아 통치자들에게는 매력적으로 다가왔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ㄷㄷ 그나저나 왜 벨사차르가 글씨를 보았는가 싶더니, 대리군주로 있었다는 것은 처음 알았군요 ㄷㄷ

    하지만 저렇게 성전을 재건하고 성벽을 재건한 후 성서의 표현을 빌자면 "때리고 머리카락을 뜯으며"벌어진 일은 안타깝기 그지 없습니다.
  • Mr 스노우 2011/01/16 13:56 #

    물론 그 직후 순혈주의의 강화는 분명 부정적인 유산이라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쓰다가 빼먹었지만) 그런데 정말 그 일이 대규모로 벌어진 것인가에 대해 의구심을 표하는 학자들도 있더군요.

    벨사차르는 저도 관련문헌을 조사하다가 알았는데, 국내에서는 이를 성서의 모순점중 하나로 지적하는 이들도 있었다는...-_-
  • Jes 2011/01/16 09:00 #

    거참, 유대, 이 민족은 적이 없으면 자기들 끼리 싸우는 건가요... 뭐 안 그런 민족이 드물겠으나...
  • Mr 스노우 2011/01/16 13:56 #

    인간의 본성 중 하나...?
  • 앨런비 2011/01/16 09:51 #

    도대채 뭔 돈으로 재건을 한 것인지-_-;
  • Mr 스노우 2011/01/16 13:56 #

    그러게 말입니다.
  • hyjoon 2011/01/16 10:21 #

    손이 나타나 쓴 글씨.....언젠가 영국에서 그린 만평이 저 이야기를 빗대어 나폴레옹을 풍자했던 것이 생각나네요 ^^
  • Mr 스노우 2011/01/16 13:56 #

    성서가 제공한 중요한 모티브중 하나이지요 ㅎㅎ
  • 위장효과 2011/01/16 14:34 #

    프랭크 밀러가 천재적인 작가이기도 하지만 영화 신 시티 개봉이라든가 시사회장에 공동감독 로버트 로드리게스하고 같이 나왔을 때 표정이나 눈을 보니까 정신적인 문제도 좀 있는 거 같더라고요. 만화 원작의 재현에 있어서 300이 대단하긴 합니다만 내용을 볼작시면 이건 문제가 너무 많으니...

  • Mr 스노우 2011/01/16 18:34 #

    저는 사실 <300>은 그냥 판타지라고 생각하고 유쾌하게 감상을 했습니다. 물론 이란인들은 분노할 수도 있겠고, 그것이 당연한 일이겠지만요.
    그래도 같은 판타지라고 쳐도 <태왕사신기>류보다는 훨씬 뛰어나고, 역사의 큰 틀에서도 크게 벗어나지는 않잖습니까 ㅎㅎ
  • 2011/01/17 15:28 # 삭제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Mr 스노우 2011/01/17 17:29 #

    2. 에스더서는 그래서 역사서가 아닌 문학작품으로 대부분 분류를 하지요.
    3. 물론 전후맥락과 시대적 배경을 고려를 해야겠지만, 유다교에 부정적 유산을 남긴것만은 틀림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 2011/02/16 02:06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Mr 스노우 2011/02/16 18:23 #

    어이쿠... 분에 넘치는 칭찬을...ㅎㅎㅎ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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