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이스라엘의 역사 (22)-보편과 특수 사이에서 ㄴ고대 이스라엘의 역사

헬레니즘화

마카베오 항쟁에서도 드러난 것처럼, 헬레니즘과 셈족이라는 두 이질적인 문화는 필연적인 충돌의 과정을 겪었습니다. 농업과 시골에 기반한 셈족의 문화와 도시를 기반으로 한 헬레니즘, 윤리적이고 실질적인 유다인의 유일신 사상과 형이상학적인 헬레니즘의 신관도 충돌했습니다.

하지만 서로 다른 문화라고 늘상 충돌만 한다는 것은 잘못된 선입견입니다. 충돌하는 면이 있으면 융합하는 면도 있게 마련이지요. 사실 헬레니즘과 유다인들의 첫 만남부터 적대적인 것은 아니었습니다. 많은 유다인들이 헬레니즘화되기도 하였고, 헬레니즘의 예술이나 체육, 기타 생활에 편리한 면은 기꺼이 수용하였지요.

하스모니아 왕조도 살펴봤듯이 3대에 이르면 상당히 적극적으로 헬레니즘 문화를 받아들이게 됩니다. 애초에 마카베오 항쟁도 헬레니즘 문화 자체에 대한 반발이라기보다는 유다교 억압에 대한 반발이었으니 그렇게 이상한 일도 아니라 하겠습니다.

그래도 물론 유다교 경건주의 분파인 하시딤들은 헬레니즘화에 반발했습니다. 이들은 반헬레니즘 투쟁의 측면에서만 하스모니아 왕가를 지원했을 뿐이었지요. 여기서 특유의 배타주의가 유래하였습니다. 그리고 헬레니즘에 대한 반응에서 유다교 자체도 다양한 방향으로 변화해 갔음은 말할 필요도 없는 일이겠습니다.



유다교의 변화와 분화

하스모니아 왕조 시대에 기존의 장로회의는 산헤드린(סַנְהֶדְרִין)이라는 이름으로 개칭됩니다. 그 이름 자체는 그리스어로 집회를 뜻하는 쉬네드리온(συνέδριον)에서 온 것으로, 여기서도 헬레니즘 문화의 영향을 엿볼 수 있습니다. 산헤드린은 종교와 관습에 관한 사항들을 결정하는 유다의 최고 의결기구로 작동하게 됩니다.
산헤드린

교리면에서도 변화가 생겨나게 되는데, 안티오코스 에피파네스의 박해와 마카베오 항쟁기를 거치면서 묵시문학이 유행하게 되고, 종말론적 구원론이 등장하게 됩니다. 구약성서 다니엘서에 이런 면이 잘 드러납니다. 죽은 자의 부활, 결정론, 역사의 주기적 분류, 세상의 종말, 천사 등이 이때 등장한 새로운 교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면에, 그리고 헬레니즘의 영향에 대응하면서 유다교 내에서는 새로운 분파가 나타나게 됩니다.

그중 가장 컸던 분파가 바로 바리사이파입니다. 히브리어로 '분리하다'를 뜻하는 단어 '파라쉬'에서 왔을 것으로 추정되는 명칭 그대로 율법에서 부정한 것으로 규정된 것과의 분리로 정체성을 삼는 집단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따라서 이들은 율법에 정통한 학자들로 헬레니즘 관습에 물든 자들이나 율법을 잘 모르는 이들과 스스로를 구분하였습니다.

특히 새로운 문화가 밀려드는 이 시기에 전통적인 율법을 보존하고 지켜내는 것을 우선목표로 삼았기 때문에, 이를 더욱 확실히 지키기 위해 구전되오는 수많은 해석과 시행 세칙들을 모아 체계화하였습니다.

그리스도교에서는 대체로 나쁜놈 내지는 위선자, 아니면 몰려다니면서 뻘짓하는 덜떨어진 악당들 정도의 이미지로 찍혀있지만, 실제로 자세히 보면 신약성서 내에서 이들의 묘사가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습니다. 의외로 예수님하고 밥도 같이 먹는 사이입니다.(...)  그리고 개중에 예수의 제자들도 몇몇 있었지요.

그리고 고지식한 이미지와는 달리 생각보다 유연한 측면이 있어서, 천사나 부활 같은 새로운 교리도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면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이들 랍비들은 율법을 해석하여 민중들에게 잘 전달해주는 사람들이기도 했습니다. 교리면에서는 중도보수 정도였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다만 율법의 정결법에 지나치게 매달려서 본질에서 벗어날 때가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에게 종종 지적당한 것이지요.

하느님의 절대주권을 이상으로 삼았기 때문에 세속권력과 사제직을 통합한 하스모니아 왕조에 반발하였습니다.

두번째 분파는 사두가이파인데, 이들은 기본적으로 성전의 사제 집단입니다. 구약성서의 사제 사독의 후손들이라 하여 이런 이름이 붙었습니다. 종교는 유다교를 고수했지만 헬레니즘 문화의 모든 요소를 잘 받아들였고, 하스모니아 왕조와도 잘 붙어지냈습니다. 종교적 기득권층으로 기득권의 유지와 성전제사가 주 관심사였습니다.

산헤드린을 주도하는 세력으로 권력을 향유했으며, 바리사이와는 달리 서민대중과 철저하게 유리되었습니다.

교리면에서는 보수적으로 모세오경을 제외한 다른 교리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당연히 바리사이파가 엄수를 주장한 구전율법도 거부했고, 부활 등의 새로운 사상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예수님한테 가차없이 까입니다 -_-

마지막으로 중요한 집단이 엣세네파인데, 이들의 기원에 대해서는 명확하지 않습니다. 일반적으로 마카베오 항쟁에서 싸웠던 하시딤의 일부로 보며, 바리사이와 비슷한 이유로 하스모니아 왕가와 결별하였던 것 같습니다.
쿰란 공동체

유다교 내에서는 수도원 생활을 하는 일종의 청교도와 비슷한 존재였습니다. 공동재산을 가지고 집단생활을 하였습니다. 성서 연구에 몰두하였으며, 율법의 준수라는 면에 있어서는 바리사이보다 더 철저한 집단이었습니다고 할수 있겠습니다.

덧글

  • 2011/02/02 18:05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Mr 스노우 2011/02/02 18:16 #

    저도 사실은 글을 쓰면서 로켓단이라고 쓸까 한참을 망설였습니다 ㅎㅎㅎ

    아무래도 교회학교에서 "바리새인들은 나쁜 사람들이에요~"라고 아이들에게 가르치는지라 조금은 다른 인식을 소개하려는 마음도 없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
  • 행인1 2011/02/02 18:28 #

    바리사이파는 왠지 동양의 유학자나 이슬람의 '울레마(법학자)' 개념이랑 비슷한것 같습니다.
  • Mr 스노우 2011/02/02 18:44 #

    아무래도 여러 분파들 중에서는 가장 학자풍이지요 ^^
  • 만슈타인 2011/02/02 18:28 #

    로켓단 ㄲㄲㄲㄲ 왠지 부정할 수 가 없슴미다
  • Mr 스노우 2011/02/02 18:44 #

    ㅋㅋㅋ
  • 첫걸음 2011/02/02 18:56 #

    개인적으로 배신자로 낙인찍힌 가롯 유다가 속했다는 열심당(?)도 다뤄주시길 바래요 ㅋㅋㅋ
  • Mr 스노우 2011/02/02 19:41 #

    사실 그건 학계에서 크게 인정하는 설은 아니지요. 현재로서는 증거도 없고..;;
  • hyjoon 2011/02/02 19:03 #

    로켓단.....ㅋㅋㅋ
  • Mr 스노우 2011/02/02 19:41 #

    ㅋㅋㅋ
  • 네비아찌 2011/02/02 19:09 #

    학계에서는 세례자 요한은 엣세네파, 예수님은 바리사이파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본다는 말을 들었는데 과연 그런거 같네요. 오늘도 좋은글 감사합니다^^
  • Mr 스노우 2011/02/02 19:42 #

    엣세네파의 일원이라는 해석도 있고 매우 다양한 해석들이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뭐 두루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도 있겠지요 ^^
  • 창검의 빛 2011/02/02 19:29 #

    쿰란 공동체 덕에 사해사본이 남게 되었다는 건 정말 다행한 일이었죠.
  • Mr 스노우 2011/02/02 19:42 #

    역사학과 종교학과 신학에 막대한 공헌을 한 사람들이 아닐 수 없습니다 ㅎㅎ
  • 앨런비 2011/02/02 20:26 #

    사실 성서학교에서 바리사이파도 악의 축의 하나로 말하지만(...) 성서에서는 예수하고 나름 잘 지내는 편이죠.; 토론도 활발히 하는 편이고. 뭐 예수라는 사람 자체가 격의 없는 모습을 보이는 진보적인 랍비(?)의 성격을 강하게 보이니 사두가이는 몰라도 바리사이하고 적이라고 하긴 좀 그렇죠. 밥도 잘 먹고 토론도 잘 하고, 질문도 잘 받고 그러니.;
  • Mr 스노우 2011/02/02 20:49 #

    헤로데 안티파스가 예수를 죽이려고 할때 피하라고 알려준 쪽도 바리사이였고, 사도 바울로도 태생이 바리사이였으니 생각보다 좀 복잡한 관계였지요.
  • Jes 2011/02/02 21:34 #

    아니, 신약을 읽을 때면 씹고 씹고 또 씹히는 바리새인이!!!
  • Mr 스노우 2011/02/02 21:37 #

    생각보다 좋은 사람들이었다니 이럴수가!!(......)
  • 그냥저냥 2011/02/02 23:04 # 삭제

    좋은 글 감사합니다.

    그런데 헬레니즘 문화가 유입되면서, 부활 종말론 천사 등 새로운 교리가 들어왔다고 하셨는데,
    그렇다면 그 전 유대교 고유 문화에서는 이에 대해 어떤 내용으로 가르쳤나요?

    그리고 어디서 굴러들은 이야기인데, 예수 당시 유대교에는 지옥이라는 개념이 없었다고 하며, 특히 바리새인은 지옥을 교리로 삼지 않았다고 하는데 사실인가요? 지금까지도 유대교에는 지옥이 없다는데, 이것도 사실인가요?
  • Mr 스노우 2011/02/03 10:02 #

    그 이전에는 명확히 정립된 교리는 없었다고 봐도 될 것 같습니다. 죽은 자의 부활이라든지 종말론, 천사 등은 대부분 바빌로니아 유배시기, 혹은 그 후에 유행하던 묵시문학의 영향이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토라만을 신봉하는 전통 사두가이파는 이를 지지하지 않았던 것이지요.

    유다교에 지옥이라는 개념은 없었지만 대신 '셰올'이라는 개념은 있었지요. 말 그대로 죽은 자들이 내려가서 머무는 곳으로, 의인이나 악인이나 구분 없이 가기 때문에 처벌을 받는 장소는 아닙니다. 구약성서가 현세의 복을 강조하는 것도 이런 내세 개념이 있었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예수 시대에 오면 악인을 처벌하는 내세의 장소라는 개념이 생겨나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것을 그리스의 하데스 개념을 빌려서 설명하고 있지요. 그러나 '지옥'의 세부적 특성에 대해서는 중세 이전까지는 합의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유대교에도 그리스 문화의 영향으로 사후세계에 대한 이야기가 조금씩 나오긴 하지만 크게 관심을 가졌던것 같지는 않습니다.
  • 네리아리 2011/02/03 00:41 #

    저거하고는 다르게 유대교 분파 중에서도 좀 막장-이라고 하긴 뭐하지만 아무튼-인 부류는 오히려 '셀롯파'(열심당)이었죠. -_- 오죽하면 '요세푸스'도 "저 색히들은 예루살렘 항쟁 때 혼돈만 일으키고 아무것도 않했다능! 조낸 까야한다능."이라고 했겠습니까.
  • Mr 스노우 2011/02/03 10:04 #

    뭐 어떻게 보면 마카베오하고 비슷한 일당들이긴 한데 그들과 다르게 나라를 말아먹었으니까요...;;;
  • 위장효과 2011/02/04 11:11 #

    로켓단...^^ 그러고보니 바리사이파에 대해서는 의외로 언급이 많은데 비해 사두가이 파에 대해서는 언급이 적었단 자체가 그만큼 접촉이 많았다는 증거일 수도 있겠네요.
  • Mr 스노우 2011/02/04 11:39 #

    저도 그런 면은 미처 생각지 못했습니다 ㅎㅎ 확실히 그럴 수도 있을 것 같군요.
  • 나인테일 2011/02/04 16:02 #

    왠지 요즘 교회에서의 바리새인이라고 하면 가스통 시위 영감님들 같은 이미지인듯 하지요... 어쩌다가.. OTL...
  • Mr 스노우 2011/02/04 16:11 #

    안습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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