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안모극제와 팔기제 (1) History-한국, 동양사

들어가면서

금(金)과 청(淸)의 중국 지배는 중국 역사에서 매우 독특한 사건이었습니다. 금은 여진(女眞)인들에 의한 왕조였고, 청을 건국한 주체인 만주(滿洲)인들은 자신들이 여진의 후예임을 분명히 했지요. 중국 역사상 한인(漢人) 왕조를 제외하고 한 공동체가 ‘중국’을 두 차례나 지배한 경우는 사실상 이들이 유일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연운16주를 지배한 것에 그친 요(遼)와 달리, 금은 중원과 요동을 통합 지배한 첫 번째 왕조였으며, 단명한 원(元)과 달리 청은 그러한 지배를 가장 장기적이면서 안정적으로 가져간 왕조였다는 데에서도 특징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지배를 가능하게 한 두 왕조의 공통된 특징은 무엇이었을까요?

물론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에서도 두 왕조의 독특한 사회제도를 한번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금을 건국한 여진 사회를 설명하는 데에 가장 핵심적인 제도가 바로 맹안모극(猛安謀克)제입니다. 마찬가지로 팔기(八旗)제를 빼놓고는 여진 제(諸)부족을 통합하고 중원까지 진출한 대청제국을 설명할 수 없습니다. 또한 맹안모극제는 많은 면에서 팔기제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지요.

그렇기 때문에 이 두 제도를 한번 비교해보면서, 그것을 열쇠로 삼아 금, 청 두 왕조 자체를 한번 비교해보고자 합니다.



맹안모극제의 형성과 특징

金興 用兵如神
(금이 일어났을 때 용병이 신과 같았다)

금 왕조의 역사를 기록한 중국의 정사 <금사(金史)>의 병지(兵志)는 위와 같은 구절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이 기사가 증언하는 대로 여진인들이 요를 멸하고 송을 압박하여 화북 평원을 지배하게 한 데에는 그들의 뛰어난 군사력에 기인한 바가 컸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군사력의 근간에 바로 맹안모극제가 있었습니다.


처음으로 각 지역에 명하여 300호(戶)를 모극(謀克)이라 하고 10모극을 맹안(猛安)이라 하였다. (<금사> 권 2, 태조본기)


여기에 보면 금을 건국한 태조 아골타가 '처음'으로 맹안모극이라는 명칭을 붙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맹안모극이라는 제도 자체는 그보다 더 앞으로 거슬러올라갑니다. <금사> 병지를 보면 이를 확인할 수 있지요.


금의 초기에 여진의 여러 부민들은 다른 노역이 없었고, 장정들은 모두 병사였다. 평상시에는 밭일을 하고, 고기를 잡고 수렵을 하며 힘써 일하다가, 비상시에는 각 부에 명이 내려지는데, 사신을 각 부의 패근(孛菫)에게 파견하여 병사를 모으고 보병과 기병의 장비와 군량을 준비하도록 하였다. 각 부의 수장을 ‘패근’이라 하고 그 군대의 단위를 ‘맹안(猛安)’, ‘모극(謀克)’이라 불렀고 그 많고 적음에 따라 호칭을 삼았는데, 맹안은 군사 천 명을 이끄는 수장이고, 모극은 군사 백 명을 이끄는 수장이다. 모극의 부장(副長)은 ‘포리연(蒲里衍)’, 사졸의 부종(副從)은 ‘아리희(阿里喜)’라고 말한다. 각 부 병사들의 수는 처음에는 제도로 정해지니 않았는데 태조가 즉위한 지 2년에 이르러, 2500명의 군대로 거란의 야율사십(耶律謝十)을 격파하고 처음 명을 내려 300호를 모극으로 삼고, 모극 10개를 맹안으로 하였다. 이어, 거란의 여러 부족들이 항복해오자, 맹안과 모극의 명칭을 각 부 수령들에게 주어서 그 휘하 사람들을 대오를 지어 거느리게 하였다. (<금사> 권 44, 병지 병제사)



위 기사로 미루어 보아 아골타가 즉위 2년에 맹안모극제를 정비하기 이전부터 그 기반이 되는 조직은 이미 마련되어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사실 맹안모극제 자체가 특별한 조직이라기보다는 여진의 전통적인 사회 군사적 체제를 기반으로 한 것이었지요. 이 점은 거란과 몽골도 마찬가지였구요. 특히 칭기즈칸의 천호제는 맹안모극제와 유사한 십진제적 원리에 기초한 것이었습니다.

금태조 아골타


그러나 몽골이 비교적 평탄한 고원지대에 기반한 유목 공동체였고, 거란도 후에 농경을 실시하기는 했으나 몽골과 같은 계열이었다면, 여진은 초원지대뿐 아니라 수목지대와 흑룡강 일대의 산지에 걸쳐서 거주하였고, 이들과 달리 수렵과 목축, 농경을 다양하게 병행하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에 사회적인 모습도 많이 달랐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어쨌든, 이러한 조직체계는 군사적으로는 상당한 장점이 있습니다. 평시의 조직이 그대로 군사단위가 되니 무엇보다도 전투원을 확보하기가 용이합니다. 그리고 평소 각 부의 수장이 전시에는 군지휘관이 되기 때문에 단결력도 강하다고 할 수 있지요.

이러한 맹안모극제는 아골타 아래 전 여진인들이 편성되는 사회원리였으며, 이후 정복된 백성들을 통제하는 수단이 되었습니다. 요를 정복한 뒤에는 거란인, 한인, 서하인, 발해인들도 맹안모극제에 의해 정비됩니다. 거란인 모극은 여진인들보다 그 수가 적었으며, 한인의 경우에는 분명치 않습니다.

1124년 이후 한인 부대의 창설은 중단되었으나, 송과의 전쟁을 치를 무렵 이미 금군에서 복무하는 한인의 수는 상당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그들 중 얼마만큼이 단순 징집병이고, 얼마만큼이 정규 맹안모극 편제 하에 있었는지는 분명치 않습니다. 발해인의 경우에는 아골타가 “여진과 발해는 본래 일가이다”라고 말한 바 있듯이 상당한 특별대우를 받았습니다. 이는 물론 여진과 발해가 모두 숙신肅愼)계 말갈인이 주축이 된 같은 공동체의 일원이라는 의식이 있었기 때문이었지요.

개봉을 공격하는 금군


맹안모극은 상, 중, 하의 3등급으로 나뉘어 금 왕족이 지휘하는 부대와 다른 여진인들이 지휘하는 부대, 기타 거란, 발해, 한인 등의 부대로 분류되었으나 이러한 분류는 1140년에 여진 귀족들의 권한을 제한하고 황제 독재권을 강화하기 위한 해릉왕(海陵王)에 의해 폐지됩니다. 그러나 해릉왕 자신도 남송 정벌을 시도하다 1161년 거란인 부대의 반란을 초래하였고, 결국 남벌군이 동요하여 살해되고 말았습니다. 반란이 진압된 후에 거란인 맹안모극 부대 상당수가 해체되었고, 여진인 부대로 분산, 배속되었습니다.

맹안모극은 군사조직일뿐 아니라 평시에는 경제적, 행정적 조직으로 기능하였습니다. 이들 군사들은 농지를 배분받았고, 원칙상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토지가 바탕이 된 경제력은 맹안모극제, 더 나아가 맹안모극제에 기초한 금 사회가 유지되는 기반이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행정적 면을 보았을 때, 금 건국 이전 여진사회에서 각 부(部)를 다스리던 이들을 孛董이라 칭하였는데 이들은 맹안모극제가 실시되면서 자연스럽게 맹안, 모극으로 흡수되었습니다. 금 건국 이전에 이들은 각 부에서 행정, 사법권을 가지고 있었는데, 맹안모극제 하에서도 일반 행정관과 군사적 임무를 겸하게 됩니다.



맹안모극제의 변질

그러나 맹안모극제는 곧 흔들리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가장 중요한 원인은 역시 경제적 문제에 있습니다. 맹안모극의 각 호(戶)는 국가로부터 경제적 자립을 위한 토지를 분배받았는데, 해릉왕과 세종 초에 걸친 거란인의 반란 등으로 인한 사회혼란을 틈타 대토지 소유가 늘어났고, 이는 맹안모극호의 빈곤화를 촉진하게 됩니다. 국가로부터 받은 토지가 질이 좋지 못한 경우도 많았고, 여진인들은 농업기술면에서도 한인들과 경쟁하는데 불리했습니다. 그리고 소가족 제도에 익숙한 여진인들은 농업에 필수적인 협동도 쉽지 않았습니다.

이런 상황 하에서 여진인들 사이에서 빈부격차가 커졌고, 이는 금 사회의 핵심을 이루는 맹안모극이 약화되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대토지를 소유한 여진인들은 스스로 일하지 않고 한인들을 고용하는 한편 사치스러운 생활을 영위하였고. 군사훈련에 무관심하였습니다. 그 결과 그들이 화북평원을 정복하여 대제국을 세우게 했던 군사력과 야성을 상실하기에 이르렀던 것입니다. 동시에 금 왕조는 여진인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잃지 않게 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한인들과의 잦은 접촉에서 비롯된 한화(漢化)는 피할 수 없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여진 무사


초기의 맹안모극 전사들은 검소하게 생활하였고, 구성원간 비교적 평등한 관계를 유지하였습니다. 그러나 빈부격차의 심화로 이런 것들이 무너지게 되자 금 황제는 이러한 상황을 개선하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이게 됩니다. 세종은 사치를 금지하고 가난한 맹안모극호의 구제에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대책들은 맹안모극호의 빈곤화를 근본적으로 막지는 못했습니다.

이러한 모든 상황이 종합되어 맹안모극의 빈곤화는 심화되어갔고, 맹안모극제에 기반을 둔 여진사회도 급속히 붕괴되기에 이르렀던 것이지요. 군사력도 약화되어, 몽골이 침입했을 때에는 금군의 주력은 점차 징집병에 의존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금이 최종적으로 멸망할 때까지 맹안모극제 역시 어렵게나마 유지되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여러 문제점을 노출하고 변질되었지만 맹안모극제는 마지막까지 금의 사회적, 군사적 기본조직으로 남아있었던 것입니다.


덧글

  • 행인1 2011/03/17 19:56 #

    맹안모극제의 붕괴 모습은 수많은 병농일치제의 붕괴 모습과 비슷해 보이는군요.
  • Mr 스노우 2011/03/17 21:22 #

    동아시아 국가들에서 매우 흔하게 발견되는 패턴이지요.
  • 앨런비 2011/03/17 20:02 #

    근데.; 원이 단명했을 뿐이라기엔, 금과 원이 중국을 통치한 기간은 별 차이가 없는 ㅡㅡ;
  • Mr 스노우 2011/03/17 21:21 #

    사실은

    요-연운16주 지배, 금-화북 지배 성공
    원-단명, 청-장기지배

    요런 의도로 쓰려고 했는데, 다시 보니 문장이 좀 그렇게 안들리긴 하는군요. 이건 수정을 좀 하도록 하겠습니다.
  • 에드워디안 2011/03/17 23:17 #

    사실 元朝가 중국 전토를 지배한 기한은 80여년에 불과했죠.

    그나마도 宋朝에 비해 중앙정부의 통제력이 약화된 조짐을 보였고...
  • hyjoon 2011/03/17 20:11 #

    지난 학기 레포트가 이렇게 포스팅 주제로 재활용 되는군......(어이)

    아닌게 아니라 행인1님의 말씀처럼 맹안모극제 붕괴 모습이 병농일치제 붕괴와 많이 흡사하군요. -_-
  • Mr 스노우 2011/03/17 21:23 #

    그래도 며칠밤 세워가면서 쓴건데 그냥 묻어버리기는 아까워서...ㅎㅎ
  • 앨런비 2011/03/17 22:14 #

    레포트를 올리기에는.. 영어인-_-;
  • 맹꽁이서당 2011/03/17 20:15 #

    잘 읽었습니다. 금나라에도 발해 유민들이 포함되어 있었군요.
  • Mr 스노우 2011/03/17 21:23 #

    아무래도 요동을 기반으로 해서 일어선 국가인데다가 대다수 구성원들의 계열이 같은 숙신계였으니까요.
  • asianote 2011/03/17 20:15 #

    사실 정복왕조는 아니지만 북방민족의 중국침투는 서진 이래로 계속되었다 본다면 아마 선비족이 여진족과 그나마 닮아있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 Mr 스노우 2011/03/17 21:24 #

    말씀하신 선비 계열처럼 북방인 중에서도 요동에 기반한 세력들은 상당히 비슷한 모습을 보이는 것 같습니다.
  • 에드워디안 2011/03/17 23:18 #

    일각에선 야율아보기와 칭기즈칸의 유사성을 지적하기도 합니다.
  • 위장효과 2011/03/17 20:25 #

    비트포겔의 분류대로 정복왕조는 어떻게든 자신들의 제도를 유지해서 정체성 확립에 안간힘을 썼지만 결국에는...
    세세한 역사적 진행은 다르지만 인도아대륙이나 중원이나 그런 점에서는 참 비슷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마우리아 왕조라든가 쿠샨 왕조, 굽타 왕조같은 자체 발생 통일 왕조의 성쇠라든가 외부 침입자-주로 카이버 고개를 통한- 정복 왕조가 결국은 힌두문명속에 동화되어 간 모습등 말입니다.(무굴 제국도 아우랑제브의 이슬람 근본 주의 정책만 아니었다면 비슷한 형태로 동화될 수...있었을까요???^^)
  • Mr 스노우 2011/03/17 21:25 #

    물론 그 동화라는 것이 한인 문화에 완전히 흡수되었다기보다는 어느정도는 상호 영향을 주고받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패턴이 비슷하다는게 참 흥미롭다는 생각이 듭니다.
  • 소하 2011/03/17 20:43 #

    사회가 후기로 갈수록 발생되는 양극화 현상이 항상 문제가 되는 것 같습니다.
  • Mr 스노우 2011/03/17 21:26 #

    그거야말로 정말 거의 모든 사회에서 발견되는 공통된 패턴인듯 합니다.
  • 첫걸음 2011/03/17 23:22 #

    저도 감회가 새로워 지는 글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 ^^;;;;

    레포트 때랑 내용이 다소 수정이 된 듯 합니다 ㅋㅋㅋㅋ
  • Mr 스노우 2011/03/18 08:29 #

    아무래도 레포트 내용을 그대로 올리기는 무리가 좀 있죠 ㅋㅋ 학부생때가 참 재미있었는데...
  • 에드워디안 2011/03/17 23:30 #

    여담이지만 1161년 당시, 해릉왕의 남침에 맞서 宋軍은 채석지전에서 벽력포라 불리는 화약을 사용하여 金軍을 격퇴하였는데, 제가 알기론 이것이 사상 최초로 실전에서 화약이 효과를 거둔 사례라고 합니다. 채석지전을 승리로 이끈 우윤문은 효종대에 재상까지 역임했지요...
  • Mr 스노우 2011/03/18 08:30 #

    아무래도 전통적으로 화기에 강한 것은 한인 국가였던 것 같군요.
  • 크핫군 2011/03/18 00:14 #

    .... 설마 여진이 원래는 한국인이다!!! 라고 하는 글은 안올라 오겠죠;;;
  • 에드워디안 2011/03/18 00:19 #

    '금나라는 한국역사다!'라고 주장하는 상황인데...
  • Mr 스노우 2011/03/18 08:29 #

    조만간 그런 덧글 달릴지도 모름;;
  • 역사관심 2011/03/18 04:31 #

    링크합니다~ 잘 봤습니다.
  • Mr 스노우 2011/03/18 08:29 #

    감사합니다 ^^
  • 공태훈 2011/03/18 04:42 #

    동아시아 국가의 역사를 보면 대토지의 등장은 항상 체제붕괴의 시발점이군요.
    ..............로마에서 직업군인제를 만든 술라는 어쩌면 시저보다 더한 영웅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적어도 수백년은 연장시켰으니까요.

    그냥 제 생각입니다. 직업군인제가 아니었다면 로마도 비슷한 수순을 걸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요.
  • 위장효과 2011/03/18 08:12 #

    그건 서양역사도 비슷했지요. 비잔티움 제국또한 마케도니아-콤네노스 왕조 교체기 귀족들에 의한 대토지 사유의 증가와 자영농의 몰락이 국방체제의 근간인 테마 제도의 약화를 가져왔으니까요. 그 삽질에 여러 삽질이 겹쳐서 만치케르트의 대패를 맛보고 동부 국경은 보스포러스 해협을 향해 고고씽...
  • Mr 스노우 2011/03/18 08:30 #

    어느 나라나 비슷한 패턴인것 같습니다.
  • 슈타인호프 2011/03/18 11:51 #

    본문에 이어 리플까지 보다 보니 금사와 청사를 한국사에 편입하려 했다고 손진태를 무지하게 까시던 이종욱 총장님 생각이 나네요 ㅎㅎㅎ 그게 벌써 몇 년 전 수업이더라...

    재활용하실 리포트도 있으시고 부럽습니다. 전 죄다 간단하게 쓴 것들밖에 없어서(...)
  • Mr 스노우 2011/03/18 17:54 #

    ㅎㅎㅎ 제가 이종욱 선생님 한국 고대사 들을때에는 금청사 이야기는 별로 안하셨던 것 같은데, 그래도 공격의 타겟은 같았지요 ㅎㅎ

    이 포스팅의 소재가 된 레포트가 김한규 선생님 덕분에 막학기에 진짜 빡세게 썼던 그 녀석입니다 ㅎㅎ
  • 엽기당주 2011/03/18 12:00 #

    어이쿠. 제가 중국 중세사를 전공해서 지배선 교수님 수업때 미친듯이 파고들었던적이 있는데..

    맹안모극제를 여기서 또 보게 되다니 왠지 십년지기를 보는 기분이..

    암튼 잘 읽었습니다. ^^
  • Mr 스노우 2011/03/18 17:55 #

    앗... 진작에 알았다면 작년에 도움이라도 청했...(응?)

    작년에 자료 찾느라고 정말 고생했지요 ㅎㅎ
  • 2011/03/18 17:42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Mr 스노우 2011/03/18 17:57 #

    감사합니다 ^^ 확실히 맹안모극제나 팔기제나 단순한 군사조직 이상이었다는데서 그 중요성이 나오는 것 같습니다. 맹안모극제만 놓고 봤을 때에는 완전히 감이 오지를 않았는데, 팔기제와 비교를 해보니 그런 측면이 더욱 잘 드러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 파랑나리 2011/09/30 19:01 #

    맹안,모극과 같은 여진말을 원어가 뭔지 알 수는 없을까요?
  • Mr 스노우 2011/09/30 22:51 #

    알면 제가 서양사 전공하고 있겠습니까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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