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즈부르그의 <마녀와 베난단티의 밤의 전투>, 그리고 미시사의 탄생 독서잡상


16세기와 17세기는 유럽사에 있어서 시대의 전환기였으며, 그만큼 불안과 폭력이 횡행했던 시기였습니다. 그리고 그 시대를 대표하는 이미지 중 하나가 바로 마녀사냥과 이단재판입니다. 현대인들은 흔히 마녀를 미개하고 어두웠던 시기의 부정적인 유산 정도로 치부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이는 16-17세기를 강하게 비판했던 18세기의 계몽주의 지식인들도 마찬가지였지요.

그러나 마녀사냥은 단지 과학적이지 못했던 사람들의 집단광기의 표출에 불과했을까요? 카를로 긴즈부르그는 이에 대해 좀 더 심도있는 대답을 제시합니다. 그는『마녀와 베난단티의 밤의 전투』에서 후세에 ‘마녀’라고 이름붙인 존재를 통해서 베난단티라는 또다른 집단신앙을 분리해내고, 그를 통해 유구한 세월에 걸쳐 지속된 민중문화의 흔적을 추적하고 있습니다.

이 책은 긴즈부르그의 대표작인 『치즈와 구더기』보다 10년 앞서 출간된 저작입니다. 따라서 『치즈와 구더기』에서 보이게 될 민중문화와 사회 기층에 흐르는 민중들의 심성에 대한 관심이 이미 드러나고 있습니다. 이러한 민중적 망딸리떼에 대한 관심은 아날 학파의 저작과도 유사점을 갖는 것 같습니다. 이는 긴즈부르그 자신이 마르크 블로크의 영향을 어느 정도 받았음을 밝히고 있는 데서 잘 드러납니다. 마크르 블로크는 중세에 대한 탁월한 연구서인 『봉건사회』에서 물질적 역사를 바탕으로 중세인들의 망탈리테를 추적한바 있지요. 긴즈부르그는 망탈리테의 형성에 대해 사회경제적으로 접근한 블로크와는 달리 문화적으로 접근했으나, 결국 최종적인 목표는 비슷하다고 하겠습니다.

또한 메노키오라는 특정한 개인을 대상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치즈와 구더기』와는 달리, 이 책은 베난단티라는 하나의 집단을 설정하고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기 때문에 대표성의 문제에 대해서는 좀더 자유로운 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 책은 이후 본격적으로 이름을 얻게 될 미시사로 나아가는 중요한 단계에 위치하고 있는 것이지요.

긴즈부르그의 이러한 시도는 ‘미시문화사’라는 명칭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미시문화사는 ‘사회적, 경제적 행위들을 넓은 의미에서 문화적 텍스트로 간주하면서, 구체적 개인이란 창을 통해 역사적 리얼리티의 복잡 미묘한 관계망을 이해하려는 시도’라는 의미로 사용됩니다. 그리고 긴즈부르그는 이 책에서 베난단티에 대해 이제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기록들을 면밀히 분석해내어, 마녀신앙의 민중적 기원이라는 문제를 새롭게 조명하고, 민중문화의 정체성을 확립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16세기 방앗간 주인의 담당했던 사회적 역할을 통해서 당시의 생산관계와 사회적 상황을 개관한 『치즈와 구더기』와는 달리, 본작에서는 아직 ‘농경 제의’의 변천을 그 지역의 생산관계라는 틀 안에서 파악하려는 노력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 지적되기도 합니다. 따라서 아직은 그의 사상이 완전히 성숙하지는 않은 단계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책에서 최종 결론에 이르기까지 긴즈부르그가 사용한 방법은 매우 흥미롭습니다. 그는 100년이 못 되는 기간 동안 특정 지역에서 일어났던 이단 심문의 기록들을 검토한 뒤에, 유사점을 찾아서 그 사건들을 하나의 줄로 꿰어 연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작업을 통해서 드러난 것이 바로 ‘베난단티’인 것입니다.

긴즈부르그는 ‘밤의 전투’, ‘죽은 자들의 행진’, ‘심문관과 마녀 사이의 베난단티’, ‘사바트에 간 베난단티’라는 4개의 소단원을 통해서 베난단티가 어떻게 상당한 세월을 통해 서서히 마녀, 마법과 연결되어갔는지 추적합니다. 애초에 베난단티는 어디까지나 악한 마녀와 싸워서 농촌의 풍요를 지키는 선한 존재였습니다. 그리고 이에 대한 이야기를 처음 들은 사제들은 황당해했으나, 여기서 마녀의 모임인 사바트와의 유사점을 애써 찾아내고, 베난단티를 그러한 집단으로 몰아가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긴즈부르그가 강조하는 것은 이 베난단티라는 개념이 단순히 무지한 16세기 농민들의 미신도, 엘리트들이 조작해낸 박해의 대상도 아니라는 점입니다. 베난단티의 근간에는 고대로부터 이어져온 풍농제의 전통이 숨어있기 때문입니다. 긴즈부르그는 이 의식이 ‘사바트’와 큰 유사성이 없었으며, 이는 겨울과 여름, 풍년과 흉년 사이의 충돌을 의례화한 것이었음을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이는 마녀추방 의식과도 관련이 있는 것이었습니다.

긴즈부르그는 고대의 다산숭배의식과 베난단티의 연관성, 그리고 동시대의 비슷한 사례들을 분석하면서, 이것이 민중들 사이에 전해져오던 유구한 농경의식의 일부였다는 점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치즈와 구더기』와 마찬가지로 이야기체로 쓰인 이 책은 마치 추리문학을 읽는 것처럼 흥미롭습니다. 여러 가지의 다양한 단서와 기록들을 종합하여 내리는 결론도 매우 높은 설득력을 갖고 있습니다. 엘리트 중심의 역사서술에서 중세는 교회가 지배한 사회였고, 종교개혁과 전쟁으로 점철된 16-17세기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나 그 이면의 기록들에 집중하여 당시 민중들의 문화를 복원해낸 이 책의 가치는 매우 높다고 하겠습니다.

특히 근래에 중세사 연구가 발전하면서 기존의 고정관념을 뒤집는 새로운 해석들이 등장하고 있는데, 이러한 해석들은 엘리트의 그리스도교 문화와는 달리 민중들 사이에서는, 특히 시골을 중심으로 고대신앙의 잔재와 의례가 매우 오래 남아있었다는 사실을 이야기하고 있지요. 긴즈부르그는 이렇게 유지되어온 민중신앙이 근세에 들어서 마침내 쇠퇴하여 마녀로서만 남게 되는 과정을 날카롭게 잡아내었다고 해도 좋을 것입니다.

민중문화의 복원 문제는 아날 못지 않게 마르크스주의의 영향도 컸으리라 생각됩니다. 20세기의 소위 ‘문화적 마르크스주의’는 민중을 문화를 항유하는 실체로 인식하는데 막대한 영향을 주었습니다. 이 새로운 마르크스주의 학자들은 엘리트와 민중 간의 문화적 교류를 강조했던 것입니다.

긴즈부르그는 민중문화는 상층문화로부터 주입된 것이 아니라는 점을 명확히 밝히면서도, 두 문화가 서로 유리된 것도 아님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마녀와 ‘사바트’로 규정되기 이전 베난티니는 스스로 신의 따르는 자들이며 선량한 그리스도교 신자들임을 주장했다는데서 이를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앞서 지적된 것과 같이, 사회경제적 분석이 빠져있다는 비판은 제기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는 미시사와 신문화사 저작 상당수에게 해당되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책은 미시사의 선구적인 저작이며, 그만큼 역사학의 지평을 크게 넓혀놓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세밀한 자료수집과 설득력 있는 추론을 통해서, 이전까지는 주목받지 못했던 민중들의 이야기를 역사의 전면에 등장시켜놓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를 통해서 고대에서 중세, 근세로 이어지던 시기 민중문화의 연속성을 보여주었고, 그것이 어떠한 상징과 형태를 통해서 현재까지 전해지고 있는지 밝혀낸 것은 분명 큰 성과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노력은 이후의 저작인 『치즈와 구더기』에서 더욱 발전되고 성숙한 모습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그러나 『치즈와 구더기』에서 본격적으로 드러나게 되는 그의 역사관은 이미 본작에서 그 뼈대를 형성하고 있었으며, 역사를 매우 작은 프리즘을 통해서 바라보는 방법론 역시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이 책이 미시사의 효시로 평가받는 이유일 것입니다.


 
참고

곽차섭 編, 『미시사란 무엇인가』(푸른역사, 2000)


덧글

  • hyjoon 2011/07/02 10:52 #

    덕분에 좋은 정보 알아갑니다. ^^
  • Mr 스노우 2011/07/02 14:37 #

    제가 말을 더 보탤 필요가 없는 고전적 저작이지만, 강력 추천합니다 ㅎㅎ
  • 아르니엘 2011/07/02 10:54 #

    베난단티라. 저는 우부카타씨의 '필그림 예거'에서 잠깐 다룬것밖에 몰랐는데.재미있어 보이네요. 사볼까. ...그나저나 필그림 예거 2부는 언제 나오지?! 아니, 안나올거란건 알지만!
  • Mr 스노우 2011/07/02 14:36 #

    재미있습니다. 이야기체 역사서술의 모범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 Esperos 2011/07/02 11:02 #

    재미난 일이었지요. 저도 처음 베난디티에 대해 알고 나서 인식을 많이 바꾸었답니다.
  • Mr 스노우 2011/07/02 14:36 #

    신선한 충격이더군요 ㅎㅎ
  • 진냥 2011/07/02 13:50 #

    얼마전에 읽고는 감상문 쓸 날만 받아놓고 있던 책이 이곳에! 미시사는 이름만 들었지 도무지 안다고 할 수 없는 터였는데 이 글 덕분으로 눈이 뜨인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 Mr 스노우 2011/07/02 14:36 #

    저도 사실 처음에는 서평을 쓰기 위해 읽었지요 ㅎㅎ 하지만 덕분에 미시사에 입문하게 되었으니 잘 된 일인 것 같습니다 ^^
  • 소시민 2011/07/02 19:14 #

    지금의 오스트리아 쪽인가? 밤에 늑대로 변해 씨를 찾는다는 한 노인의 이야기도 볼만해죠.
  • Mr 스노우 2011/07/10 15:02 #

    넵.. 어느나라나 비슷한 민간전승이 있어서 흥미로웠습니다 ㅎㅎ
  • 萬古獨龍 2011/07/03 09:12 #

    오 이건 흥미있는 분야인데요 ㅎ 좋은정보에 감사드립니다
  • Mr 스노우 2011/07/10 15:02 #

    좋은 책이지요 ^^
  • 기번 2011/07/19 01:12 # 삭제

    결국 마녀 사냥은 중세가 아닌 근세 초기에 발생했다는 사실이 충격적입니다. 종교가 절대적인 권력이던 중세

    가 아닌, 인간의 이성을 신뢰하는 근세 초기에 마녀 사냥이 발생했다는 모순은 살펴 볼 가치가 있어 보여요.
  • Mr 스노우 2011/07/19 10:30 #

    사회적 조건이 문제입니다. 전반적으로 사회가 안정되있던 중세사회에 비해, 중세의 질서가 무너지고 사회가 혼란스러워지는 시대의 전환기에 그런 상황이 일어나는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입니다.
  • 漢字 2013/06/18 15:10 # 삭제

    근대라면 될 것을 굳이 근세라는 용어를 만들어 사용해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몇 마디 덧붙이자면 푸코의 <광기의 역사>나 서발턴 연구와 문제 의식이 맞닿는 지점이 있다는 거죠.

    얼핏 보면 마치 중세를 이야기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근대를 비판하는 책이기도 하죠.

    제가 보기에 이 책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부분은 지배 엘리트들이 만들어 놓은 지배담론의 논리와 시각대로
    읽지 않았다는 점에 있다고 봅니다.

    지배담론이 어떻게 피지배자들을 굴절시켜왔는지를 드러내고 그 흔적까지 보여주면서 지배 담론과는 다른
    담론의 존재를 보여준다는 데 있죠.

    긴즈부르그가 보여주는 민중문화가 진짜 긴즈부르그가 묘사한 모습대로라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다만 지베 엘리트들의 기독교 문화 또는 카톨릭 문화와 다른 유물론적인 민중 문화가 있었다는 것을 드러냈다는 데 획기적인 의미가 있지 않을까요?

    긴즈부르그의 저작 자체가 그 당시 기독교로 대표되는 지배 엘리트들의 지배 이데올로기를 깨뜨리고 동시에 현재의 지배 이데올로기와 맞서 싸우는 저작이기도 한 거죠.

    하지만 위에서 얘기하신대로 사회경제적 분석이 빠진 것이 가장 큰 문제점이 아닌가 합니다.

  • Mr 스노우 2013/06/18 18:19 #

    왜냐하면 중세(medieval)와 우리가 생각하는 완연한 근대(modern) 사이에 상당한 시간적 갭이 존재하기 때문이죠. 16세기에서 프랑스 혁명까지는 중세와 근대의 성격이 혼재되어있는 꽤나 긴 과도기라서 여기를 따로 부를 명칭이 필요합니다. 이 글은 조금 오래된 글이라 제가 근세라고 썼는데, 학계에서 사용하는 공식 용어는 근대 초기라고 번역하는 Early Modern입니다.

    사회경제적 분석의 부재는 사실 신문화사가 가진 대표적인 약점이 분명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또 어떻게 보면 하나의 책이 모든 면을 커버할 수는 없는 노릇이긴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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