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드리아노폴리스 전투에 대한 과대평가 History-근동, 서양사

로마 역사에 있어서 AD 378년의 하드리아노폴리스 전투가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 전투인 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이 전투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하려는 경우를 종좀 보게 됩니다. 이 전투로 사실상 고대가 끝났고, 중세가 시작되었다는 것이 그것입니다.

<로마인 이야기>에서도 이 전투로 제국의 게르만화가 막을 수 없는 현실이었음이 분명해졌다고 하면서 사실 제대로 된 로마 제국의 역사는 여기서 끝이라는 뉘앙스로 쓰고 있습니다. 전술적으로도 보병에 대한 기병의 우위가 분명해졌다는 것이 이 전투에 대해서 많은 학자들이 내리는 해석입니다.

하지만 하나의 사건에 지나치게 큰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좀 지양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드리아노폴리스 전투 전날과 다음날이 완전히 달랐던 것도 아니고, 시대의 변화가 하루아침에 일어나는 것도 아니고 말입니다.

예전에는 등자를 가진 고트족 기병들이 로마의 중장보병을 압도했다는 해석이 많이 있었습니다. 몽고메리 원수도 <전쟁의 역사>에서 그렇게 서술하고 있지요. 그러나 현재 학계의 중론은 고트족에게는 등자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등자는 하드리아노폴리스 전투 이후로도 한참 뒤인 7세기에야 아바르족에 의해 유럽에 들어왔다고 여겨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이 전투로 고대와 중세가 갈린다고 할만큼, 로마군과 고트족의 전술과 장비가 달랐던 것일까요?

첫째. 장비면에서 본다면은 로마군이나 고트족이나 크게 다를게 없었습니다. 다른건 제쳐놓고, 바로 고트족이 로마군의 장비를 썼기 때문입니다. 하드리아노폴리스 전투 이전에도 고트족은 로마군과 몇번 전투를 치렀습니다. 그 전투들 후에 고트족은 전사한 로마군의 갑옷과 장비를 수거해서 사용했다고 암미아누스 마르켈리누스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로마군 내에서 복무하던 고트족 병사들이 반란을 일으켰을 때 이들은 하드리아노폴리스의 로마군 무기고를 털었습니다. 따라서 하드리아노폴리스 전투가 벌어질 무렵에는 고트족 상당수의 외관은 당시 로마군의 일반적인 복장에 더 가까웠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둘째. 하드리아노폴리스 전투는 기병이 전술적으로 중장보병을 압도한 전투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로마인 이야기> 14권의 해당항목은 시오노 할매가 억지로 쓴 티가 역력히 나는 대목으로, 간략하기 짝이 없어서 그것만 읽으면 전투가 기본적으로 어떻게 전개된 것인지 파악하기도 어렵습니다. 그러나 동시대 역사가인 암미아누스 마르켈리누스가 이에 대해 비교적 상세히 서술했는데. 그의 서술을 살펴본다면 이 전투는 우리가 생각하는 중세식 전투와는 거리가 있습니다.

전투의 절정부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을 예로 들어볼까요?


아군의 좌익은 적군의 바로 그 짐마차들이 있는 곳까지 뚫고 들어가는 데 성공했다. 이들에게 약간의 지원이라도 있었다면 더 돌파해 들어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기병대의 나머지는 이들을 버려두었다. 이들은 수적으로 밀렸고, 결국 둑이 무너지듯이 붕괴했다. 이로 인해 보병대는 무방비하고. 너무나도 빽빽하게 밀집되어 있어서 병사들은 칼을 휘두를 수도, 도로 거둬들일 수도 없는 상태로 남겨졌다.


이 설명을 읽어보면 칸나에 전투의 서술과 너무 흡사하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물론 암미아누스의 기록 자체가 "고전적"틀에 맞춰져 서술되었다는 점도 들 수 있겠지만, 사실 하드리아노폴리스 전투는 전개과정만 보면 보병과 보병 전열이 충돌하고 기병이 측면을 노리는 전형적인 '고대식' 전투에 더 가까웠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로마 중장보병은 기병전술에 대항할 수가 없어서 패배한게 아닙니다. 아군이 다 집결하기도 전에 무모하게 먼저 공격을 시도한 로마 기병대가 적의 반격으로 패주했고, 그때문에 보병의 측면이 비어버렸기 때문에 패했던 것이지요.

고트족 보병대를 상대로 나름대로 열심히 싸우고 있던 로마군 보병대였지만 기병의 패주로 비어버린 측면에 고트족 기병이 돌격해 들어오자 포위되어 전 방향에서 압박당해 전멸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드리아노폴리스 전투. 로마군 보병대의 최후 저항

이건 상대가 기병이어서도 아니고, 대기병 전술이 떨어져서도 아닙니다. 전방에서 싸우고 있는 보병부대의 측면이 노출된다면, 그 측면을 기병이 아니라 어떤 부대가 공격해도 게임 오버일수밖에 없는 겁니다.

하드리아노폴리스 전투의 진정한 의미는, 첫째로는 당시 제국의 약점을 만방에 노출시켰다는 점입니다. 게다가 상당히 많은 병력을 손실했고, 황제까지 전사해버렸기 때문에 로마는 전투 직후에 상황을 제대로 통제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때문에 다른 부족들도 로마 영토 안에서 고트족이 거둔 성공을 재현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갖게 됩니다.

두번째로, 하드리아노폴리스 전투의 참패 이후 기회를 틈타서 수많은 부족들이 쏟아져들어오는데 중요한 전투병력 상당수가 이 한판 싸움에서 그만 소멸되어버렸으니, 테오도시우스 황제와 다른 로마 장군들은 별 수 없이 고트족을 포함한 여러 부족들의 전사단(코미타투스)을 고용해야 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군대의 성격이 봉건적인 군대로 변화해가게 되었던 것입니다. 하드리아노폴리스 전투 결과가 중세로 가는 길을 열었다고 평가받는 주요 이유는 바로 이것입니다.

그러나 '보병에 대한 기병의 전술적 우위'는 물론 잘못된 해석이고, 이것 하나만으로 고대 로마의 끝을 이야기하는 것은 지나친 과장입니다. 예전에도 누누이 말했지만 고대에서 중세로의 이행은 상당히 점진적으로 일어난 사건이었습니다. '기병 우위 시대의 시작'도 지나친 과장인 것이 로마군은 이미 하드리아노폴리스 전투 한참 전부터 시대적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기병 비율을 늘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드리아노폴리스 전투 이후에도 로마 보병들은 여전히 페르시아의 엘리트 중장기병의 돌격을 막아내었습니다.





사족. 지난주에 여행중에 갑자기 이런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는데, 여행 이야기기 쓰기 전에 먼저 써둬야 잊어버리지 않을것 같아서 오늘 썼습니다 ㅎㅎ

덧글

  • 행인1 2011/07/10 22:58 #

    흔하게 나타나는 패전의 양상이었는데 시대의 분기점으로까지 과대평가(?) 된 셈이군요.
  • Mr 스노우 2011/07/10 23:51 #

    사실 패전의 규모가 칸나에와 맞먹을 정도로 파괴적이었고, 제국에 엄청난 타격을 가했던 것도 사실이었는데, 이것으로 '기병 우위의 시대가 열렸다'라든지 '고대가 막을 내리고 중세가 시작된다' 이런건 좀 무리한 평가지요.
  • 만슈타인 2011/07/10 23:34 #

    그렇죠. 중국같이 등자도 빨리 보급되고 전차전이 죽 내려온 나라도 기병만으로 중장보병쓸기엔 무리가 약간 있었는데 하물며 로마를 고트족이....
  • Mr 스노우 2011/07/10 23:52 #

    애초에 한 병종만 가지고 다른 병종을 완전히 제압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한 발상이라고밖에는...;;;
  • nighthammer 2011/07/11 01:00 #

    요즘은 암비아누스의 서술이 아닌, 좀 더 복잡한 형식으로 흘러가지 않았나 하는 글도 자주 봤습니다.
    전투가 터졌을때 고위지휘관들은 고트족 진영으로 협상단으로 가다가 전투가 터져서 되돌아왔더니 이미 전황이 안좋았다던가, 복귀한 지휘관들이 어찌어찌 전열 정비해서 퇴각하려 했는데 황제가 실종되서 황제찾다가 죄다 골로 가 버렸다던가... 하는 식으로.
  • Mr 스노우 2011/07/11 13:19 #

    사실 이 전투의 전 단계부터가 파악하기 좀 복잡한 양상입니다. 다만 흔히 말하는 것처럼 기병이 보병을 압도하는 '중세 전투'의 선구 정도로 파악하는 것은 무리라는 것이지요.
  • 위장효과 2011/07/11 09:03 #

    아드리아노플-에디르네...뭐가 나을런지^^;;;.

    이 전투에 대한 서술이라면야 전후 사정 부분을 다 포함해도 기번의 그 문장에 못 쫓아가지요. (할매 힘딸리는 게 눈에 마구 들어올 정도니)

    다른 분들께서 잘 써주셔서 전 좀 다른 것 하나만 언급하고 가겠습니...(퍽!)
    앵거스 맥브라이드가 콩코드에서 임페리얼 로마의 군대란 화보집을 낸 적이 있는데 바로 이 하드리아노폴리스 전투 장면 묘사에서 "맨 앞 페이지 카이사르의 군단병과 비교할 때 너무나도 다른 모습의 로마 병사들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게 놀랄 일인가. 카이사르와 발렌스의 군대 사이에는 3 세기의 시간 간격이 있으며 이것은 말버러의 레드 코트와 현대의 공수부대의 그것과 맞먹는다!"라고 써놨었죠^^;;;.
  • Mr 스노우 2011/07/11 13:18 #

    따지고 보면 카이사르의 군대와 초기 공화정의 군대 모습도 크게 다른 마당에, 제정 후기 군대의 모습이 그것과 다르다고 까는것 자체가 웃긴 일이지요;;
  • 하늘 2011/07/12 00:08 #

    중세의 발음인 ‘아드리아누폴리’(Adrianoúpoli)도 괜찮지 않습니까? ^^
  • hyjoon 2011/07/11 10:16 #

    칸나에 이후로 최악의 패전이라고 서술되던데.......
  • asianote 2011/07/11 10:51 #

    아마 대규모 야전에 한정한다면 이 만큼 대패한 전투는 비잔티움 제국사까지 통틀어도 얼마 안될 겁니다.
  • Mr 스노우 2011/07/11 13:17 #

    제국 자체의 힘에 치명적인 타격을 안긴 것은 사실인데, 본문에서 언급한 것처럼 이 전투 하나로 시대가 바뀌었다고 평가하는 것은 무리라는 것이지요.
  • asianote 2011/07/11 10:53 #

    그런데 하드리아노폴리스 전투에서 그 이후 성을 공략하지 못한 것을 보면 기병대가 주력이었나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더군요.
  • Mr 스노우 2011/07/11 13:16 #

    보병이 주력이었다 하더라도 제대로 된 준비가 없이 성벽도시를 함락시키는 것은 힘든 일이지요. 고트족이 도나우를 건너왔을때, 로마쪽이 요구한 무장해제를 제대로 이행하지는 않았던 것 같지만, 나중에 로마군 전사자들의 무기를 사용해야 했던 것을 보면 무장이 그렇게 대단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그런 상황에서 도시를 공격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요. 콘스탄티노폴리스 같은 도시는 더 말할 것도 없구요.
  • Panhypersebastos 2011/07/11 13:10 #

    좋은 글 쓰신 것에 감사드립니다.
  • Mr 스노우 2011/07/11 13:17 #

    네 감사합니다 ㅎㅎ
  • 기번 2011/07/11 21:18 # 삭제

    하드리아노플 전투 당시의 로마군은 모든 면에서 제정 시대의 로마군보다 훨씬 열등했죠. 제정 시대에 1개 군

    단의 수가 6천명 정도였다면, 저 당시에 불과 1천명 정도로 줄어 버립니다. 무장, 갑주도 게르만과 비슷해져

    버립니다. 발렌스가 지휘하는 로마군의 수준은 이미 고트와 비슷해졌고 병력 수도 열세였죠. 전성기 시절의

    로마군에 비해서 형편없는 수준이었죠. 발렌스가 거느린 병력은 1만 5천에서 2만 정도인데 반해 고트는 3만

    이상으로 추정합니다. 병력으로 열세인데다 불운까지 겹쳐서 패배한 셈이죠.
  • Mr 스노우 2011/07/11 21:25 #

    제정 말기에도 로마군의 장비는 대체로 다른 부족들보다 뛰어났습니다. 안그랬다면 고트족이 굳이 로마군 무기와 갑옷을 가져다 쓸 이유가 없지요.
  • 기번 2011/07/11 21:23 # 삭제

    고트족이 등자를 사용했다는 설도 현재 와서 부정하는 입장입니다. 중국에서도 등자가 본격적으로 씌인 시기

    는 4세기 경 서진 시대로 추측합니다. 유럽에서는 아바르인이 최초로 썼다고 하죠.
  • Mr 스노우 2011/07/11 21:25 #

    고트족 등자사용설에 틀렸다는 이야기는 제가 이미 써놓았습니다.
  • 기번 2011/07/11 21:25 # 삭제

    그런데, 스노우님은 서강대 사학과에 다니시는 모양.... 뚱보 고양이 이야기가 아주 재밌군요. 액뚱이라고

    사람이 마치 음식을 갖다 바치는 고양이의 하인이 된 거 같군요. ㅎㅎ

    스노우님은 웬지 낭만적인 한국 남성같습니다.
  • 기번 2011/07/11 21:41 # 삭제

    제정 말기의 로마군 장비가 게르만보다 다소 우수하긴 했지만 전성기의 시절만큼 우세하진 못했죠. 우리가 흔

    히 로마군의 상징으로 생각하는 로리카 세그먼타타에, 하마타는 이미 사라져 버렸고 게르만 군과 비슷한 무장

    을 했죠. 반면 고트인은 중장 기병에게 사슬 갑옷과 강철검을 무장시켰고, 프랑크인은 사슬 갑옷에 프란체스

    카로 무장한 중보병, 헤룰리 족은 궁수..알란 족은 경보병, 등 게르만 민족들도 고유의 장점을 지닌 병종과 무

    장을 발전시켰죠. 로마군은 게르만 수준으로 쇠퇴하고, 게르만은 로마에 근접할 정도로 진보하면서 수준 차이
  • Mr 스노우 2011/07/11 21:42 #

    로리카 세그먼타타는 기동성이 떨어지고 불편해서 생각보다 좋은 갑옷이 아닙니다 -_-
    로마군의 상징으로 생각하는 것은 대중적인 인식일뿐 별로 오래 사용되지는 못했습니다.

  • Mr 스노우 2011/07/11 21:43 #

    로마군의 무장변화는 시대의 변화에 맞춘 것이지 '게르만 수준으로 쇠퇴'한 것은 결코 아닙니다.
  • 기번 2011/07/11 21:44 # 삭제

    가 현격하게 줄어듭니다. 이러한 게르만의 성장으로 인해 로마군의 대 게르만 승률이 갈수록 저하되었죠.

    물론 로마군의 뛰어난 전술, 전략, 군기를 통해서 오래 동안 우세를 점하지만~ 로마군에 복무했던 게르만인이

    고향에 돌아가서 로마의 무장, 전술을 모방하면서 이러한 격차가 갈 수록 줄어들었죠.

    로마의 멸망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결국 가장 큰 원인은 게르만의 팽창과 진보 때문이죠.
  • Mr 스노우 2011/07/11 21:47 #

    그것은 아직도 학계에서 논쟁중인 주제이기 때문에 단정짓기는 어렵습니다. 골즈워디의 <How Rome Fell>이 정확하게 그 견해를 반박한 책이지요.
  • 기번 2011/07/11 21:47 # 삭제

    로마군의 무장 변화가 시대 변화에 맞춘 것은 맞죠. 그러나, 결국 로마가 갈수록 가난해 져서 중장 보병을 유

    지하지 못하게 된 점이 더 크죠. 디오클레티아누스가 로마 군단의 인원을 1천 명으로 감축해 버린 원인이 거

    기에 있습니다. 갈수록 쇠퇴하는 로마가 저렇게 돈이 많이 드는 무장을 갖출 수 없게 된 거죠.
  • Mr 스노우 2011/07/11 21:48 #

    로마는 이미 그 훨씬 전부터 로리카 세그먼타타 같은 불편한 갑옷을 버렸습니다.
  • 기번 2011/07/11 21:51 # 삭제

    윗 그림에도 동로마군의 무장, 갑주가 게르만과 별 차이가 없어 보이네요.
  • Mr 스노우 2011/07/11 21:53 #

    당시로서는 저게 가장 효율적인 무장이었기 때문입니다.
  • 기번 2011/07/11 21:52 # 삭제

    제가 딴지 거는 건 아니지만 기번의 로마 제국 쇠망사에도 로마군이 갈수록 퇴보해서 게르만과 별 차이가 없

    어졌다고 나옵니다. 로마군의 병력, 무장, 군기는 오래 전에 퇴보해서 게르만에게 의지해야 할 판국이라고

    나와요.
  • Mr 스노우 2011/07/11 21:54 #

    로마제국 쇠망사는 이미 3백년이나 지난 책이라 너무 믿으시면 곤란합니다 -_-
    위에 소개한 책을 일독해보시길 권합니다.
  • 기번 2011/07/11 22:02 # 삭제

    물론 제가 사학 전공자는 아니기 때문에 단언은 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전성기의 로마 군단이 발휘했던 강력

    함이 말기에 들어서 약해진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시는지? 에드워드 기번은 상대적으로 로마가 몰락해 가는

    반면 게르만은 진보, 팽창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합니다. 이보다 더 나은 설명이 있을까요?

    로마가 몰락하고 게르만이 유럽의 주인이 된 이유가?
  • Mr 스노우 2011/07/11 22:06 #

    첫째로 한 문명의 팽창과 몰락은 군사력만으로 되는 것은 아닙니다.

    둘째로, 로마의 멸망에 대해서는 내재적 원인설과 외부적 요인설이 아직도 치열하게 싸우고 있습니다. 외부적 요인설이 바로 말씀하시는 주변의 이민족들이 강대해져서+로마의 과다팽창이고, 내재적 원인설은 로마 내부의 권력투쟁과 그로 인한 관료제의 비대화, 황제 주변 군사력의 비정상적인 강화로 인한 부작용 등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둘 다 어느 정도 근거가 있는 설이니만큼 둘 다 찾아서 공부해보시길 권합니다.
  • 기번 2011/07/11 22:10 # 삭제

    골즈워디의 저서는 아직 번역 출판이 안 된 거 같은데요? 소행은 사학 전공자가 아니라서 저런 서적은 구하지

    못할 거 같습니다. ㅡㅡ
  • Mr 스노우 2011/07/11 22:13 #

    저는 아마존에서 구했고, 광화문 교보문고 원서 코너에서도 한권 본적 있습니다.
  • 기번 2011/07/11 22:17 # 삭제

    기번의 서적이 물론 현대적인 관점에 어울리지 않는 면이 있습니다만. 그래도 로마사의 근간을 창조한 작품이

    죠. 나나미는 매번 진정한 로마는 다신교의 로마라고 억지를 쓰지만.. .기번은 오히려 로마가 기독교 세계가

    되었기 때문에 불멸의 생명을 부여받았고, 현대 서구 문명이 탄생했다고 주장합니다.

    다신교 세계였던 로마는 머지않아 기독교가 지배하리라는 사실을 알고 다신교를 버리고 기독교를 선택했죠.

    기번이 써놓은 기독교와 로마 제국의 관계는 지금봐도 정말 훌륭합니다.
  • 기번 2011/07/11 22:20 # 삭제

    기번이란 인물은 결국 로마가 기독교를 수용했기 때문에 서구 문명이 탄생했다는 점을 강변하면서, 고대 로마

    의 진정한 역할과 가치를 주장했죠. 기독교 제국이 됨으로써 로마는 게르만인을 지배할 수단과 힘을 얻었고

    로마 카톨릭, 그리스 정교로 변모해서 현재도 존재한다고 강변합니다.

    결국 기독교와 로마는 서로 불가분의 관계로 형성되어 현대 서구를 창조했다는 결론이죠.

    역사 덕후 나나미와 비교가 안되는 뛰어난 작품이었죠.
  • 기번 2011/07/11 22:22 # 삭제

    인문학적으로 로마 제국 쇠망사는 현대 서구 문명의 근원과 정체성, 의의를 가장 잘 표현한 걸작이라고 평가

    합니다.
  • 기번 2011/07/11 22:28 # 삭제

    골즈워디의 서적은 소행에게는 무리입니다. 역사 전공자도 아니고, 사실 어학이 딸려서
  • 델카이저 2011/07/14 10:47 #

    최근 30여년의 연구 결과는 최소 2세기 정도에는 전문화된 종사단의 존재와 규모가 작긴 해도 중앙 집권적 체제가 발견된다고 하더군요..3세기의 만족들을 1세기와 공화정 시절의 만족 수준으로 생각하면 안될 텐데 말이죠;;; 아무래도 카이사르 시절의 임팩트 때문인지 3세기 이후의 만족들이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는 점은 잘 알려지지 않은 듯 합니다. -_-;;
  • Mr 스노우 2011/07/14 20:01 #

    물론 전체적으로 봤을때는 여전히 로마군이 강력하기는 했지만, 당시 만족들을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강했다는 점은 동의합니다. 그리고 사실 카이사르가 정복한 갈리아와 이후 제국이 대치해야 했던 다른 지역의 정치적 상황도 크게 달랐다는 점도 고려해야 하는데, 그거를 잊어버리는 경우가 많지요.

    아무튼 3~4세기에 상황이 급변하는 것이 아니라 이전부터 상당히 점진적으로 변해오고 있었던 것을 두고, 특정한 사건 하나 둘이 역사의 진로를 바꿨다고 평하는 것은 무리한 행동이라고 생각합니다.
  • 파랑나리 2012/04/08 00:11 #

    여담인데 시오노 나나미는 로마사 이야기에서 일본의 제국주의를 간접적으로 옹호했다는 비판을 듣습니다. 그리고 [십자군 이야기]를 쓴 김태권도 참고문헌 소개에서 은근히 시오노 나나미를 깝니다.
  • 녹두장군 2012/04/08 20:01 #

    저때는 왜 스쿠툼(사각방패)를 안 썼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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