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산 조반니 인 라테라노 대성당과 아시나리우스 문 (일정 1일차) ㄴ2011 이탈리아 방황기

시간은 슬슬 저녁으로 접어들어 오후 5시를 훌쩍 넘겼습니다. 도착해서 내내 고대 로마에서 놀았는데 이제 중세와 근세 로마도 잠깐 경험해볼까 합니다. 포로 로마노를 나와서 지도 한장에 의지하여 계속 걸어갑니다.

이 길을 따라서 제법 오래 걸어갔습니다. 패키지 여행과 달리 배낭여행의 좋은 점은 거리를 정말 실컷 걸어볼 수 있다는 점이지요. 로마는 도로가 상당히 복잡합니다. 로마 도시하면 잘 정비된 도시계획이 떠오르지만, 그건 나중에 건설된 식민시 이야기고, 정작 로마는 그런 도시계획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애초에 초기부터 사람들이 조금씩 모여살면서 조금씩 확장된 도시니까요.

그런 까닭에 고대 로마는 거리는 복잡하고 화재에 취약했으며, 위생상 더러웠습니다. 그런 상황이 네로 시대 로마의 대화재 이후의 리모델링으로 다소 나아지긴 했지만, 복잡한 도시라는 본질은 변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다만 로마의 지도는 매우 정확한 편이라, 지도를 들고 거리 이름만 잘 확인하면서 간다면 저처럼 로마를 처음 찾은 사람이라도 길 잃을 염려 없이 목적지를 잘 찾아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어차피 배낭여행인데, 길 좀 잃어버리면 어떤가요 ㅎㅎ

아무튼 계속 가다보니 좁은 길이 끝나고 넓은 차도와 광장이 나타납니다.
그리고 길 건너 보이는 오벨리스크의 모습. 현재 로마에 있는 오벨리스크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파라오 투트모스 3세가 만들기 시작했으며, 투트모스 4세가 완공시켜 카르낙의 신전에 세웠습니다. 그리고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콘스탄티노폴리스를 장식하기 위해 이 오벨리스크를 옮길 것을 명령했는데, 대제는 그것을 보지 못하고 죽습니다. 그의 아들인 콘스탄티우스 2세는 오벨리스크를 콘스탄티노폴리스가 아닌 로마로 옮기도록 명령합니다. 357년부터 이 오벨리스크는 로마의 키르쿠스 막시무스의 중앙 분리대에 세워졌다가 이후 사라졌는데, 16세기에야 발견되어 라테라노 광장에 세워지게 됩니다.
그리고 그 뒤로 라테라노 궁전이 보입니다. 이곳이야말로 초기 서방 그리스도교 세계의 중심이었습니다. 14세기 아비뇽 교황청 시대 이전까지 교황은 이 라테라노 궁에 거주하였고, 이 시기가 천년에 걸친 라테라노 교황청 시대입니다. 따라서 후기 고대부터 중세 서방 그리스도교 교회의 역사는 이곳 라테라노 궁전을 중심으로 하여 펼쳐졌던 것입니다. 이후 아비뇽에서 돌아온 교황이 바티카누스 언덕으로 옮겨감에 따라 바티칸 교황청 시대가 열리게 됩니다. 물론 그 이후 무솔리니와의 라테라노 조약이라는 흑역사도 있습니다만..
산 조반니 인 라테라노 대성당의 정면 모습. 바로 이곳이 공식적으로는 가장 오래된 가톨릭 성당일겁니다. 라테라노라는 이름은 본래 이 지역이 네로 치세에 역모 가담죄로 처형된 라테라누스 가문의 영지였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며, 교회가 세례자 요한과 사도 요한에게 바쳐졌기 때문에 현재의 이름을 갖게 되었습니다.

본래 이 자리에는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황제의 황실 근위 기병대의 막사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막센티우스와의 접전에서 승리를 거둔 콘스탄티누스 1세가 옛 근위대를 폐지하면서 그 막사도 허물어졌고, 그 잔해는 현재 교회의 밑바닥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아무튼 콘스탄티누스는 이 자리를 로마 주교에게 주었고, 그것이 라테라노 성당과 궁전의 기원이 됩니다.

그러니까 정말 오래된 성당 건물이긴 한데, 현재의 외관은 후기 고대와 중세 초기의 바실리카가 아니라 17세기 이후의 것입니다. 몇 차례나 지진과 화재 피해를 입었고, 특히 1361년 화재는 교황청을 이동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지요. 이후 1646년에 바로크 양식으로 대대적으로 개축하여 과거의 모습은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프란체스코 보로미니가 개축한 바로크 양식의 성당 역시 대단한 걸작입니다.
이때쯤 되면 힘들고 피곤해서 쓰러질 지경이었는데, 조용한 성당 건물 안에 들어서니 갑자기 진정이 되고 마음이 편안해지더군요. 저도 어쩔 수 없는 그리스도교 신자임이 여기서 드러납니다 -_-

아무튼 이런 성당 건물들은 단순한 유적이 아니라 여전히 살아서 기능하는 종교 건물들입니다. 따라서 내부는 엄숙하며 그 기능에 방해되는 행동은 금지되어 있습니다. 게다가 이날은 일요일 저녁인지라 안에서는 미사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신자들은 조용히 앉아서 미사를 드리고 있고, 덕분에 관광객들도 뒤로 들어와서 숙연하게 보고 나갑니다. 저도 잠깐 앉아서 기도를 드렸으나, 미사가 이탈리아어로 진행되기 때문에 도저히 알아들을 수는 없었습니다.

내부 복도의 벽감에는 12 사도의 상이 줄지어 있습니다. 베르니니의 제자들이 조각한 것이지요.
교황청의 문장이 보이는군요. 이 성당에서 콘스탄티누스가 세례를 받았다는 전설도 있지만 어디까지나 전설입니다. 콘스탄티누스는 임종이 가까워서야 세례를 받았고, 그때는 니코메디아에 가 있었으니까요.

성당을 둘러보고 기운도 좀 회복하고 밖으로 나갑니다. 미사는 아직 끝나지 않았지만...

여기서 옛 로마시의 성벽까지는 지척입니다.
아우렐리아누스 성벽. 그 밑으로는 차들이 지나다니고 있습니다. 여기를 통과했으니 이제 옛 로마시의 경계 밖으로 나온 셈이군요. 로마시의 경계를 확정하던 성벽은 고대의 세르비우스 성벽이었지만, 도시가 팽창하면서 그 경계는 이미 옛날에 벗어나게 됩니다. 그리고 소위 '3세기의 위기'에 이르면 반달족이 북이탈리아로 쳐들어오는 등, 더이상 로마도 안전하지가 않다는 불안감이 늘어가게 됩니다. 이에 아우렐리아누스 황제는 로마의 중심인 일곱 언덕과 마르스 들판, 트라스테베레 지역까지 포함하는 새로운 성벽을 건설합니다.

성벽의 모습에서 세월의 풍상이 느껴집니다. 후기 고대의 유적치고 아우렐리아누스 성벽은 상당히 좋은 상태로 보존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물론 그것이 유적으로 남아있었던게 아니라 실질적인 성벽으로 계속 사용되었기 때문입니다. 19세기에 이르기까지 이 성벽은 로마의 방어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제가 굳이 포로 로마노에서 여기까지 지친 몸을 이끌고 걸어온 까닭은, 라테라노 성당과 이 성문을 보기 위해서였습니다. 아시나리우스 문입니다. 관광객들은 굳이 여기까지 오지 않기때문에 매우 한적한 분위기입니다. 그리고 패키지 여행을 왔다면 여기까지 내려올 가능성은 거의 없겠지요. 배낭여행이니까 가능한 겁니다 네...
유명한 관광 코스는 되지 못했지만, 아시나리우스 문은 역사적으로는 매우 중요한 곳입니다. 유스티니아누스 대제의 이탈리아 재정복이 진행되던 536년, 벨리사리우스가 이끄는 동로마 제국의 군대가 바로 이 문을 통해서 로마에 입성했습니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이 문은 비잔티움 제국 영광의 순간을 기억하고 있는 몇 안 되는 장소인 셈입니다. 잠시 이곳에서 지친 다리를 쉬면서 1500여년 전, 옛 영광의 부활을 꿈꾸며 이 문을 통해서 진군하던 제국군의 위풍당당한 모습을 그려봅니다.


첫날 일정은 여기까지입니다. 원래는 저녁 먹고 또 나가보려고 했는데 더 이상은 도저히 무리였습니다. 첫날부터 무리할 필요도 없었구요.

덧글

  • 위장효과 2011/07/19 20:42 #

    저녁은 뭘 드셨습니까?^^

    위풍당당이라곤 하지만 벨리사리우스의 비잔티움 제국군 규모가 일만명이 채 안됐으니...
  • Mr 스노우 2011/07/19 22:51 #

    뭐.. 그냥 비잔티움을 좋아하는 입장에서 써본 문학적 수사라고 이해해주시면 되겠습니다 ㅎㅎ
    그래도 마침내 로마를 회복하는 순간이었으니까요.

    저녁은 테르미니 역 근처의 작은 음식점에서 피자를 먹었습니다 ^^
  • 위장효과 2011/07/20 07:31 #

    그 병력가지고 북아프리카 회복하고 이탈리아 반도 남단 탈환했으니 벨리사리우스도 대단하긴 대단했죠. (게다가 보스란 인간은 뭐 그리 질투심은 많은지)
  • 희동이 2011/07/19 21:22 #

    아이구 첫날에 포로 로마노에서 라테란까지 걸으셨다구요? 그 먼거리를요? 더구나 언덕인데... 그렇네요. 라네란이 남아 있는 것으론 가장 오래된 것이겠네요. 최초 베드로 성당도 파괴되어서 다시 지은 것이고, 성 바오로도 1800년대 중반 화재로 다시 지은 것이고... 그 밖의 7대 성당가운데 로렌쪼, 성 십자가, 대 성모성당, 세바스챤도 라테란 보다는 나중의 것이니...
  • 희동이 2011/07/19 21:23 #

    꼭 다쓰고 나면 오타가... 수정기능은 왜 없는지..흑흑흑 라테란...윽 라테란
  • Mr 스노우 2011/07/19 22:52 #

    옛 모습이 제대로 보존되지 않은게 아쉽긴 하지만, 그래도 바로크 양식의 지금 성당도 4백년된 걸작이니까요 ㅎㅎ

    혼자 여행온 것이니 처음부터 많이 걸을 작정을 하긴 했지만, 그래도 힘들더군요 ㅎㅎ
  • 희동이 2011/07/20 15:53 #

    지금 모습은 바로크로 치장되어 있지만 그 뼈대가 되는 부분은 역시나 평평한 천장의 초기 교회양식이겠지요. ㅋㅋㅋ
  • Mr 스노우 2011/07/20 16:15 #

    그렇군요. 좀더 맨정신으로 제대로 봤어야 했는데, 당장 눈에 들어오는게 바로크여서...ㅎㅎ 전문가와의 동행이 가장 필요한 부분인 것 같습니다 ^^
  • hyjoon 2011/07/19 22:14 #

    베낭여행......저도 돈 모이면 지도 한장 들고 떠나고 싶어요. 수학여행 때 일본 갔던 것은 일정이 짜여 있어서 마음대로 돌아다니지도 못하고......(오사카 성 얼마 보지 못하고 지나간거 아까워요........ㅠ.ㅠ)
  • Mr 스노우 2011/07/19 22:53 #

    저도 작년에 터키에서 하기아 소피아에 오래 머물지 못한게 참 아쉬웠습니다. 뭐 앞으로 기회가 많으실겁니다. 저도 혼자서는 이제야 처음 나가봤는데요 ^^
  • 리리안 2011/07/20 06:39 #

    저도 나중에 이탈리아 배낭여행을 가보고 싶네요. 저는 이탈리아는 대부분 가족여행으로 가서 차타고 가이드만 따라다녀서 저런 로망이 없었어요~. 라테란 성당 말고는 본 기억이 없네요...(아우렐리아누스 성벽은 본 것 같기도?)
  • Mr 스노우 2011/07/20 10:35 #

    그런 여행도 메리트가 있지요. 저는 딴건 몰라도 체력소모가 너무 커가지고...-_-;
  • 네비아찌 2011/07/21 09:55 #

    라테라노 성당이 이런 곳이었군요. 저도 언젠가 꼭 가보고 싶습니다.
  • Mr 스노우 2011/07/21 09:58 #

    정말 멋진 성당이었습니다. 하루종일 걸어서 매우 피곤했는데, 들어서는 순간 경건한 분위기에 피로가 싹 사라지는것 같더군요 ㅎㅎ
  • 기번 2011/07/21 23:38 # 삭제

    정말 장엄하고 눈부신 곳이죠. 예술과 문화의 힘으로 기독교를 확장시키려는 로마 카톨릭의 정책이 반영된
    르네상스의 성과물이죠.
  • enat 2012/03/08 22:01 #

    얘는 세르비우스 성벽과는 다르게 제역할을 한 성벽이네요! ㅋㅋㅋ
    계속 쓰여서 상태도 양호하고, 현대에 봐도 든든한 느낌이군요.
  • Mr 스노우 2012/03/09 21:00 #

    여행 넷째날에 이 성벽을 따라서 쭉 걸으면서 아피아 가도가 시작되는 성 세바스티아노 문까지 갔었는데 정말 견고하다는 느낌이 절로 들더라구요 ㅎㅎ 로마 성문들은 그 자체가 박물관인 것 같아요. 그래도 다음에 또 가게 된다면 세르비우스 성벽을 꼭 보고 싶네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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