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코틀랜드-잉글랜드 투쟁사 (12)-배녹번 이후 ㄴ스코틀랜드-잉글랜드 투쟁사

브루스 왕조

로버트 브루스는 배녹번 전투에서 모든 것을 걸고 전투에 임했고,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그 결과 그는 스코틀랜드의 국왕으로서 더 이상 흔들리지 않을 탄탄한 지위를 확보하였다. 잉글랜드는 절대 인정하지 않았지만, 스코틀랜드의 독립도 이제 기정사실이었다. 윌리엄 월레스의 봉기 이래의 숙원은 사실상 이루어진 셈이었다.

그래도 좋은 일만 일어나지는 않는다고, 에드워드 2세를 놓쳐버린 것이 브루스로서는 가장 아쉬운 점이 되었다. 에드워드가 탈출에 성공하면서 전쟁을 완전히 끝내버릴 기회를 놓쳤기 때문이었다.

로버트 브루스의 기반은 그 어느때보다도 탄탄했으나 몇 가지 문제점은 있었다. 우선은 잉글랜드 왕을 놓쳐버렸고, 잉글랜드는 여전히 브루스의 왕위와 스코틀랜드의 독립을 인정하지 않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패배하기는 했으나, 잉글랜드는 국가적 기반과 경제력, 인구 면에서 스코틀랜드가 장기적으로 상대하기 어려운 적이었다. 또 하나는 교황이 내렸던 파문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점이었다. 이 역시 정통성 면에서 상당히 껄끄러운 문제일 수밖에 없었다. 마지막은 이때까지 브루스에게는 아들이 없었다는 점이었다. 예전에 알렉산더 3세가 후사 없이 죽은 것이 지금의 모든 문제를 낳은 것처럼, 이 점도 새로운 왕조에게는 큰 문제였던 것이다.

로버트 왕은 이 문제들을 하나하나 해결해나가려 노력하였다. 우선 그는 배녹번의 대승으로 인해 확보된 군사적 우위를 최대한 활용하였다. 에드워드 2세로부터 스코틀랜드 독립을 인정받기 위해, 로버트 왕은 북부 잉글랜드에 쉴새없이 공세를 퍼붓기 시작하였다.
로버트 브루스

금세 이 지역은 사람 살곳이 못되는 곳으로 바뀌었다. 컴벌랜드와 노섬벌랜드의 상당수 주민들은 잉글랜드로부터 구원의 희망이 없자, 아예 스코틀랜드로 전향해버렸다. 1318년에는 스코틀랜드 내에 유일하게 잉글랜드 거점으로 남아있던 버윅이 제임스 더글러스 경에 의해 함락되었다. 이렇게 되자 할 수 없이 에드워드 2세는 다시 출정하여 버윅을 포위했으나, 이번에는 모레이와 더글러스가 요크셔로 깊숙이 침투하였다. 요크의 시장과 대주교는 가능한 모든 병력을 끌어모아서 스코틀랜드군을 막으러 달려갔으나, 이 잡다한 병사들로는 숱한 실전경험으로 다져진 모레이와 더글러스의 군대를 막을 수 없었다. 잉글랜드군은 처참하게 박살이 났고, 에드워드 2세는 버윅 포위를 풀고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1315년에 로버트 왕의 동생 에드워드 브루스는 아일랜드를 침공하였다. 에드워드 1세 이래 아일랜드는 잉글랜드, 특히 칼라일 지역에 상당한 식량을 공급하고 있었다. 스코틀랜드군의 침공은 이를 차단하여 칼라일을 압박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아일랜드 원정은 스코틀랜드의 역량을 벗어나는 것이었다. 1318년에 에드워드 브루스는 포가트 전투에서 패하여 죽었다. 그는 당시 로버트 왕의 유일한 후계자나 다름없었기 때문에, 그의 죽음은 상당한 타격이었다.

로버트 브루스도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상황은 스코틀랜드가 잉글랜드에게 거의 일방적인 공세를 가하고 있었음에도, 스코틀랜드 독립 승인은 아직도 요원해보였다. 무엇보다도 북부 지역의 온갖 구원요청에도 불구하고 에드워드 2세가 '안 들려 안 보여'로 일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스코틀랜드가 잉글랜드 전역을 정복할 능력이 없는 이상, 더 이상 로버트 브루스로서도 사실 방법이 없었다.

1320년, 스코틀랜드는 다른 방향에서의 상황 반전을 노렸다. 4월 6일 '아브로스 선언'이라고 이름붙은 문서가 교황 요한 22세에게 전달되었다. 스코틀랜드 귀족과 영주, 토지보유농, 그리고 전 공동체가 서명했다고 전해진 이 문서는 스코틀랜드의 전설적인 역사를 기록하며 '스코트인은 한번도 다른 이들에게 종속된 적이 없었던 자유로운 백성'이라고 선언하면서, 동시에 로버트 1세는 신의 뜻과 왕국의 법과 관습, 백성의 동의에 의해 세워진 스코틀랜드의 국왕임을 밝히고 있었다.
아브로스 선언문

'스코틀랜드 독립선언서'나 다름없는 이 문서는 얼핏 보면, 미국 독립선언문에 영향을 주었다는 말도 나올만큼 상당히 민주적이지만 사실은 브루스 쪽의 입김이 많이 닿은 물건이었다. 예전에 윌리엄 월레스가 존 베일리얼을 위해 활동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상당히 외교적인 문서였던 것이다. 이 문서의 진짜 목적은 로버트 브루스와 교황 간의 관계를 회복하는 데에 있었다. 선언은 전 스코틀랜드인이 브루스를 왕으로 원한다는 것을 보이면서 은근히 교황을 압박하는 동시에, 잉글랜드와 더이상 싸울 필요가 없어진다면 교황을 위해 십자군에 참가하겠다는 조건을 제시하고 있었다.

교황은 이 협상이 일단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다음 해에 잉글랜드의 설득에 바로 넘어가서, 아브로스 선언은 그 효과를 당장 달성하지는 못했다. 그래도 의의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어쨌든 수년에 걸친 외교전 끝에 8년 후인 1328년, 교황은 공식적으로 스코틀랜드에 내렸던 성무금지령을 해제하였고, 로버트 브루스도 마침내 파문 상태에서 벗어나게 된다.

1320년대로 접어들면서 브루스에게는 그런대로 일이 풀려나가기 시작했다. 교황과의 관계도 앞서 본 것처럼 진전되기 시작하였고, 1322년에는 잉글랜드와의 싸움에서 또한번 승리를 거두었다. 1322년에 에드워드 2세는 마침내 스코틀랜드로 다시 한번 원정을 기획하였다. 그러나 로버트 브루스는 다시 한번 대담한 작전으로 올드 바일란드에서 에드워드 2세에게 배녹번보다 더한 치욕을 안겼던 것이다. 전투의 규모나 피해는 배녹번보다 작았지만, 에드워드는 개인 물품까지 몽땅 버리고 도망쳐야 했다.

1324년에는 마침내 아들 데이비드를 얻었다. 이제야 그의 왕조를 물려줄 후사를 얻은 셈이었다.



독립

하지만 로버트 왕은 여전히 고민스러웠다. 그는 자신이 살아있는 동안에 스코틀랜드의 독립을 확보하고 왕조를 안정시키기를 원했다. 그러나 아무리 얻어맞아도 에드워드 2세가 스코틀랜드 독립을 승인할 기미는 안 보이는 마당에 자신의 건강이 빠르게 악화되어갔다. 이제 그의 나이는 52세에 불과했지만, 그동안 너무 많은 고생을 하고 긴장 속에서 살아온 탓이었을까. 게다가 그의 아들 데이비드는 아직 3살에 불과했다.

그때 갑자기 상황이 돌변하였다. 1327년, 잉글랜드에서 모두에게 인기 없었던 에드워드 2세가 폐위되고 그의 14살난 아들이 옹립되었다. 그가 바로 에드워드 3세였다.

이 궁정 쿠데타는 에드워드 2세의 왕비 이사벨라와 그녀의 애인 모티머의 작품이었다. 이제 정권은 이 둘의 손에 넘어갔다. 에드워드 3세는 할아버지의 자질을 그대로 물려받은 듯한 소년이었으나, 아직 너무 어렸다.
"프랑스의 암늑대" 이사벨라

로버트 브루스는 자신에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를 직감했다. 그리고 평생 그래왔듯이, 그 기회를 움켜쥐었다. 스코틀랜드군은 다시 잉글랜드 북부에 맹공을 퍼붓기 시작했다.

이사벨라와 모티머는 여기에 대응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쿠데타로 정권 잡은 마당에 패배한다면 그 뒷감당이 두려웠다. 여기서 로버트 1세와 두 사람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다.

1328년, 에든버러 조약에서 잉글랜드는 공식적으로 스코틀랜드 왕국에 대한 모든 권리를 포기하였다. 이렇게 해서 1296년 윌리엄 월레스에 의해 시작되었던 길고 처참한 전쟁, 혹은 '제 1차 스코틀랜드 독립전쟁'이라고 불리는 전쟁은 마침내 방점을 찍었다. 스코틀랜드는 다시 한번 독립국가의 지위를 공인받았다.

1329년 6월, 끝내 나라의 독립을 이루어놓고 로버트 브루스 왕은 눈을 감았다. 그의 나이 54세. 온갖 모험과 투쟁, 음모와 인고, 그리고 최종적인 승리로 끝난 삶이었다. 그의 아들 데이비드가 5세의 나이로 왕관을 물려받아 스코틀랜드 왕 데이비드 2세가 되었다.

로버트 1세는 분명히 중세 스코틀랜드 지도자들 중에서 손꼽을 만큼 여러모로 재능이 탁월했던 국왕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의 후계자는 불행히도 그 재능을 온전히 물려받지는 못하였고,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의 관계는 이제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게 되었다.
배녹번 전장을 내려다보는 로버트 브루스 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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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원더바 2011/10/24 19:29 #

    에드워드도 그렇고 로버트 브루스도 그렇고 자식복은 없군요;;; (먼산)
  • Mr 스노우 2011/10/24 19:31 #

    아버지가 너무 잘나서 자식들 몫까지 다 가져간게 아닐런지...-_-;
    그래도 로버트네 아들이 에드워드네 아들보다는 그나마 나았던 것 같습니다.
  • hyjoon 2011/10/24 19:33 #

    결정적인 기회에 상대는 견부호자, 여기는 호부견자.......(....).....
  • Mr 스노우 2011/10/24 19:35 #

    형평성의 법칙.
    그래도 데이비드 2세가 에드워드 2세보다는 더 나은듯..(2)
  • 위장효과 2011/10/24 21:47 #

    병신력 균등의 법칙은 참 오래돼긴 했죠...
  • 리리안 2011/10/24 20:17 #

    후손들이야 어찌됬건 스코틀랜드는 독립에 성공하는군요. 지못미 웨일즈...
  • Mr 스노우 2011/10/24 20:45 #

    피와 고통의 대가이긴 하지만, 결국 성공은 했지요.
  • 야스페르츠 2011/10/24 20:22 #

    오오... 브루스가 이렇게 떠나는군요. 브레이브하트 때문인지 스콧에 감정이입이 되어버렸다능.. ㅋㅋ
  • Mr 스노우 2011/10/24 20:45 #

    저 역시 브레이브하트 때문에 스코틀랜드에 호의적이 되버렸습니다 ㅎㅎ
  • 사과향기 2011/10/24 21:31 #

    아 얘기가 계속이군요. 배넉번 이후까지. ㅎ 암튼 스코트의 브루스왕 정말 대단합니다.
  • Mr 스노우 2011/10/24 22:40 #

    일단 갈때까지 가볼 생각입니다 ㅋ
  • 앨런비 2011/10/24 21:40 #

    진짜 재커바이트까지 갈려나.;
    그리고 시기를 보니. 스코틀랜드인이 슬슬 프랑스에서 싸울 때가 다가오는구만요(....)
  • Mr 스노우 2011/10/24 22:41 #

    언급을 안할 수는 없겠지만...-_-; 일단 브리튼 섬 안 이야기만 열심히 파볼 생각입니다 네...
  • 앨런비 2011/10/24 21:42 #

    근데 에드워드 3세는 월레스와 이사벨라의 아들..(....)
  • Mr 스노우 2011/10/24 22:41 #

    설마 진지하게 믿으시는건...(퍽)
  • 위장효과 2011/10/24 21:48 #

    재커바이트가 아니라 오늘날 스코틀랜드 독립까지도 올 수 있을 듯...^^
  • Mr 스노우 2011/10/24 22:42 #

    어이쿠 그건 도저히 무리입니다 ;;;
  • 로자노프 2011/10/24 21:56 #

    사실 에드워드 3세도 한 번 스코틀랜드에서 작살이 났었죠. 덕분에 온갖 굴욕은 다 당하고 프랑스 왕위계승권 주장했다가 일시 취소하고 충성 서약....
  • Mr 스노우 2011/10/24 22:43 #

    뭐 다 그러면서 크는거죠...(?)

    아무튼 브레이브 하트의 범위를 벗어나니, 앞으로 어떻게 나가야 할지 좀 난감합니다 ㅋㅋ
  • 萬古獨龍 2011/10/25 02:15 #

    드디어 독립하는군요. 하지만 앞날이 맑지만은 않은게 참....
  • Mr 스노우 2011/10/25 11:49 #

    뭐 계속 잘 나가기만 하는 나라가 있겠습니까마는...;;
  • 누군가의친구 2011/10/25 06:09 #

    그리고 슬슬 백년전쟁의 스멜이...(...)
  • Mr 스노우 2011/10/25 11:50 #

    휴우... 대륙까지 확장시키는 것은 피할 생각(...)
  • Das 2011/10/25 09:18 # 삭제

    에드워드 1세의 죽음때보다 지금이 더 중반부!란 느낌이라서 이제서야 댓글을 다네요...;
    저도 계속 스코틀랜드에 감정이입을 하며 읽고 있었습니다. 브레이브하트를 본 적이 없는데(코흘리개 시절 영화라ㅎㅎ;;) 이 연재물을 읽고나니 갑자기 마구 그 영화가 보고싶어집니다. 토탈워를 할때도 스코틀랜드가 반란세력인건 별로 신경 안쓰고 있었는데 지금 다시 생각해보니 또 감각이 새롭네요...ㅎㅎ;;

    그간 연재 즐겁게 읽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기대하겠습니다!
  • Mr 스노우 2011/10/25 11:49 #

    감사합니다 ^^
  • 크핫군 2011/10/25 09:21 #

    오오오!!! 스타가 돌아왔당!!! 에드워드3세가 왔당!
  • Mr 스노우 2011/10/25 11:50 #

    그래봤자 이 이야기에서 에드워드 3세의 비중은 그닥...
  • 행인1 2011/10/25 09:30 #

    브루스는 기회 포착에 정말 탁월했군요. 과연 다음번에는 어떤 전개가 기다리고 있을런지...
  • Mr 스노우 2011/10/25 11:51 #

    그런 면에서는 정말 뛰어난 인물이었찌요.
  • 델카이저 2011/10/25 15:00 #

    - 왜 아일랜드는 들쑤셨는지 모르겠습니다;;; 그 쪽 형들은 스코틀랜드 인들 이상 가는 근성 가이들인데 말이죠;;;

    - 에드워드 3세도 대단히 훌륭한 중세 지도자긴 합니다만 역시 할아버지의 포스에는 ㅋ 뭐 성격은 훨씬 좋았다고 생각합니다만..

    - 사실 국력 자체가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는 넘사벽이라;;; 훨씬 강한 국력을 가진 나라의 "안보여 안들려" 신공은 레알 충공깽이죠.. 1차 문제 침입 30만 2차 양제 침입 100만 막고 나니 이번에 쉬지않고 몇 만씩 떼거리로 몰려오는 수군을 상대하며 고구려 인들은 얼마나 공포에 떨었겠습니까..ㅋㅋㅋ
  • Mr 스노우 2011/10/26 14:27 #

    제가 보기에도 참 미스테리입니다. 아무래도 스코트인이 아일랜드에서 왔고, 같은 켈트 계열이라 대잉글랜드 공동전선을 펴려고 한건 아니었을런지 모르겠습니다.

    국경지대 주민들은 죽어나겠지만, 나라가 망할 정도는 아니니 백성의 고통에 귀만 막는다면 나름 훌륭한 방책이겠습니다. ㅋ (그러고보니 대몽전쟁이 떠오르는군요;;;)
  • 원한의 거리 2011/10/25 19:32 # 삭제

    역시 스코틀랜드 독립전쟁하면 브레이브 하트만 떠오르니.....

    영화에서 봤던 로버트 브루스는 살집좋게 생겼어도 그리 늠름하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그림을 보니 제법 위풍당당하게 생겼네요.
  • Mr 스노우 2011/10/26 14:28 #

    영화가 브루스를 좀 찌질하게 그린 점이 없지않아 있지요;;;
  • 기번 2011/10/25 23:00 # 삭제

    그런데... 부르스와 거미는 단지 동화에 불과한 건가요? 로버트 부르스가 6번째 패배했다가 거미가 집을 짓는 거 보고 7번째로 싸워서 영국왕을 쫓아냈다는 건 허구인가요?
  • Mr 스노우 2011/10/26 14:28 #

    8회부터 꼼꼼히 읽어보세요.
  • 기번 2011/10/25 23:03 # 삭제

    아일랜드는 거칠고 척박한 섬인데..잉글랜드에다가 식량을 공급했다니... 그게 가능했을까요? 워낙 가난한 섬이라 수많은 아일랜드인이 영국군에 용병으로 갔을 정도인데
  • 빛둥 2011/10/26 02:09 # 삭제

    아일랜드 대기근으로 엄청난 아일랜드인들이 굶어죽고 있을 때도, 정작 아일랜드는 엄청난 양의 곡물을 영국으로 수출했답니다.

    밀은 재배해서 농장주인 영국인이나 신교도 아일랜드인이 가져가고, 구교도 아일랜드 농부는 감자밭에서 재배한 감자만 먹고 살다가... 감자 바이러스가 퍼져서... 아일랜드 대기근 사태가 난 거죠.
  • 빛둥 2011/10/26 02:17 # 삭제

    아일랜드 대기근에 대해 델카이저님이 쓰신 글(http://delkizer.egloos.com/m/4594419)을 보면,

    "(전략)...그러나 이 최악의 기아상태에서조차도 여전히 영국으로 오트밀과 밀은 수출이 계속되었다고 한다... (중략)... 요컨데 아일랜드의 대기근은 식량이 부족해서 생긴 문제가 아니었다. 잘못된 사회구조, 누적된 위험성, 저소득층에 대한 잘못된 제도와 복지 제도의 미흡이 총체적으로 만든 비극이었다. (후략)"

    이렇습니다.
  • 기번 2011/10/26 22:09 # 삭제

    이런... 늦게 들어와서 읽다 보니 앞에 연재된 글들을 다 잊어먹었습니다. 브루스와 거미는 결국 후대에 만들어진 우화였나 보네요.
  • 기번 2011/10/26 22:11 # 삭제

    헐 아일랜드 대기근은 결국 영국인들의 비정하고 잔인한 횡포와 착취에 의해 발생했다는 건가요? 아일랜드인이 굶어 죽을때 영국에서 구호 식량도 안 보냈을지? 자칭 신사의 나라라는 영국넘들이 저런 잔인한 짓을 할 줄이야.. 신사의 나라는 커녕 야만인의 나라라고 해야 겠네요.
  • Mr 스노우 2011/10/26 22:50 #

    그런 예가 수두룩한게 바로 역사인데 새삼스럽게 무슨...-_-;
  • 칼스루헤 2012/12/05 20:18 #

    재미있게 읽고 있다 오류가 있어서 말씀드립니다.
    <독립> 부분에서 로버트 1세의 나이가 52세일때 아들인 데이비드의 나이가 3세로 되어있는데, 54세에 로버트 1세가 죽을 때 데이비드가 7세로 왕위를 받았다고 되어있습니다. 2살이 차이가 나네요.
  • Mr 스노우 2012/12/05 20:43 #

    어이쿠 감사합니다 ㅎㅎ 제가 숫자에 약해서 종종 이런 실수를 합니다 ㅋ 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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