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혁명의 의의 History-근동, 서양사

들어가면서

미국혁명은 많이 주목받는 것 같으면서도 또 의외로 그 중요성이 간과되는 경우가 많은 사건입니다. 심하면 '식민지인들이 세금 내기 싫어서 벌인 깽판' 정도로 폄하되는 경우도 있고, 국내에서는 미국혁명=독립전쟁 정도의 인식만 가지고 있는 경우도 많은데다가, 미국 혁명의 주역들은 민중의 정치참여에 대해 부정적인 보수적인 인물들이었다는 인식도(반드시 틀린것만은 아니지만, 이것도 단순하게 생각해선 곤란) 널리 퍼져있습니다.


그러나 미국혁명은 여러모로 중요한 사건입니다. 최초의 본격적인 시민혁명이었다는 점에서도 그렇고, 그것이 가져온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파장은 결코 프랑스 혁명에 뒤지지 않습니다.

우선 용어부터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는데, 앞서 말했듯이 국내에서는 인식이 미국혁명=독립전쟁이고, 그것 때문에 미국독립혁명이라는 이상한 조합의 단어까지 주변에 돌아다니는 것을 흔히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독립전쟁도 중요하지만, 엄밀히 말해서 독립전쟁은 미국혁명의 일부분에 불과하다고 해도 그렇게 틀린 말이 아닙니다. 독립전쟁은 어디까지나 미국혁명 안에 포함되는 하위개념이기 때문입니다. 미국혁명은 단순히 영국으로부터의 독립국가가 되었다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는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혁명이었습니다.



공화주의 혁명

미국혁명이 독립전쟁과 엮이면서 많이 간과된 부분인데, 미국혁명에도 상당히 탄탄한 이념적 기반이 존재했습니다. 프랑스 혁명에 비하면 상당히 온건했으나, 그래도 미국혁명을 혁명답게 만들었던 이데올로기는 바로 공화주의였습니다. 미국 혁명기 이전까지의 고전적 공화주의를 살펴보면 그 뿌리는 물론 고전적 고대에 있으며, 이를 사상으로 정립한 이들은 마키아벨리를 위시한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시민적 휴머니스트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를 계승한 이는 제임스 헤링턴과 같은 영국의 공화주의자들이며, 이것이 다시 18세기 아메리카로 계승되어 강력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이 공화주의의 핵심을 이야기하자면 바로 고전적 덕성과 공공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고전적 덕성은 고대 로마에서 말하던 '비르투스'의 부활이라고 해도 좋을 것입니다. 지난번에 시민군 이야기할때도 한번 썼지만, 이 덕성은 바로 남성적 가치이자 시민 전사로서의 가치입니다. 즉 절대주의 시대의 궁정귀족들과 대비되는, 자기 땅을 경작하는 소박하고 검소하면서도 자신의 공동체를 위해 싸우는 강건한 시민 전사가 가진 품성인 것입니다.

공공선은 말 그대로 사익보다 공익을 우위에 두는 태도를 말합니다. 이 역시 이상화된 고대 로마의 영웅들을 모델로 한 가치이면서 동시에 실질적인 정치의 지침이기도 했습니다. 정치의 최종목적은 공공선의 실현이라는 것이 공화주의 이념이고, 이 공공선은 다름아닌 '인민의 안녕'이었으니까요. 당시 공화주의자들에게 최고의 격언은 바로 키케로가 말했던 "Salus Populi Lex Superma Est(인민의 안녕이 최고의 법이다)"였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주의해야 할 점은 고전적 공화주의에서 공익우위의 태도가 어떠한 강제력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이것은 오직 공동체의 구성원이 시민적 덕성을 가질 때에만 가능해집니다. 결국 이는 공화주의의 핵심 가치는 결국 덕성이라는 결론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그런데 18세기 아메리카의 공화주의자들이 보기에 영국에 이러한 덕성이 있는가는 심히 의심스러웠습니다. 이들은 영국식 헌정주의 자체는 공화주의의 모범이라고 보았으나, 이 시기에 이르러 부패하고 타락했다고 파악하였습니다. 공화주의 정치의 핵심은 권력의 분리와 균형인데, 이 때에 이르러 비대해진 영국의 의회와 그로 인한 의회만능주의가 이 균형을 심각하게 파괴하고 있다고 생각되었던 것입니다.

이 당시 지식인들이 탐독했던 책들은 물론 고전이지만, 동시대의 저작 중에서도 고전 공화정의 몰락을 다룬 책들이 많았습니다. 한때 위대했던 아테네와 스파르타, 그리고 로마 공화정은 왜 몰락하였는가가 그 주제였지요. 그리고 에드워드 기번의 <로마제국 쇠망사>에 나오는 태도가 대표적이지만, 18세기인들은 그것이 고대의 강건한 시민정신이 타락했기 때문에 몰락했다고 파악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메리카인들은 당시 영국이 가던 길도 비슷하다고 생각했으며, 따라서 고대적 시민정신의 회복을 통해 이를 막아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를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에 대해서도 당대 지식인들은 고대 현인들의 지혜를 빌렸습니다. 미국 공화주의 연구의 대가인 고든 S. 우드가 언급했듯이, 당시 모든 사람들이 동의하던 공화주의적 영감의 원천은 결국 고전 고대였으니까요. 여기에서 미국 공화주의 특유의 혼합정치 이론이 나옵니다.

이 이론의 기반은 아리스토텔레스와 폴리비오스에게서 찾을 수 있습니다. 이들의 저작에 따르면 정체는 군주정에서 출발해 과두정, 민주정을 거쳐 결국에는 민주정의 타락으로 중우정치에 이르게 됩니다. 이러한 사이클을 막을 수 있는 정체를 이들은 혼합정체라고 파악하였습니다. 즉 앞선 모든 정체는 각각 특정한 사회계급의 이익이 반영된 정체입니다. 따라서 모든 사회계급의 이익이 균형을 이루어 반영될 수만 있다면 안정적인 정부를 운영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던 것이지요. 이에 따라서 행정부를 이끄는 최고행정관은 군주와 같이 막강한 권한을 가져야 했고, 상원은 귀족의 이익을, 하원은 민중의 이익을 대변해야 했습니다. 이 세 기구가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는 것이 당시의 혼합정치 이론이었고, 그 영향력은 아직까지도 남아있습니다.

이것은 영국 정치로부터 결정적인 변화이기도 합니다. 영국의 경우 상, 하원은 모두 의회(Parliament)의 일부입니다. 국왕도 의회 안에 있습니다. 이것이 영국 헌정주의 특유의 King(Queen)-in-Parliament 개념입니다. 그리고 이 시기 영국의회는 사실상 헌법에 대한 최고재판소의 역할까지 담당하게 됩니다. 따라서 존 애덤스는 영국정부는 양원제 정부가 아니라 하나의 의회를 가진 정부라고 주장하였습니다. 정부는 각기 다른 독립된 기구로 나뉘어야 하며, 이것이 미국식 혼합정부와 양원제의 핵심이 됩니다.

미국 혁명기에 급진적인 대중정치에 반대하였던 혁명 지도자들은 사실은 이 균형정치 이론을 신봉하였던 공화주의 이론가들이었습니다. 존 애덤스라든지, 알렉산더 해밀턴 등과 같은 연방파들이 여기에 해당됩니다. 이때문에 과격파로부터 귀족주의자라고 불리고, 아직도 이들을 보수파로 보는 견해가 많습니다만, 이것은 현대 기준으로 진보-보수로 나눌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특히 존 애덤스 같은 경우에는 오직 '고전적 공화주의자'의 틀로 해석하는 것이 그의 사상을 가장 합당하게 해석하는 방법입니다.

이 사람들도 기본적으로 혁명가였고, 공화주의자였기 때문에 대중의 정치참여를 반대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그것의 무분별한 남용을 반대했을 뿐입니다. 그것은 공화주의적 균형을 깨뜨릴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귀족적인 상원의 경제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하였고, 아메리카에는 혈통귀족이 없기 때문에, 대신 그에 어울리는 품성과 교육, 인맥을 가진 자연귀족(Natural Aristocracy)이 그 자리를 대신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지요.



미국헌법과 사법혁명

미국혁명이 가졌던 또 다른 혁명적인 면이 바로 헌법 제정입니다. 엄청난 진통 끝에 성사된 이 헌법 제정 과정을 통해서 비로소 근대적 성문법 개념이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독립 직후 신생 공화국의 혼란상은 대단했습니다. 당시 미국 연합(Confederation)은 독립된 13개 공화국의 느슨한 연합체에 불과했으며, 중재자 역할을 할 수 있는 초월적 권위를 가진 중앙정부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혁명으로 인한 평등주의의 열기, 그리고 토리파의 이주로 인한 빈자리를 신흥계층이 채우면서 나타난 사회적 유동성의 증가는 긍정적인 결과 못지 않게 부정적인 모습도 표출했고, 결과적으로 혁명에 대한 회의까지 불러오게 됩니다.

이런 상황에서 연방파(The Federalist)로 불리게 될 이들이 강력한 중앙정부를 통해 미국연합이 가진 취약성을 보강하려 하였고, 이는 상당부분 혁명으로 이루어진 급진화를 되돌리는 것이 되었기 때문에 반연방파(The Antifederalist)로 불리게 될 이들의 격렬한 반발을 사게 됩니다. 이 두 정파는 신생 공화국의 앞날을 놓고 치열한 논쟁을 벌였으며, 미국헌법은 그 와중에 연방파의 의도가 상당부분 반영되어 제정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미국헌법 자체가 갖는 혁명성이 무엇인가 보자면 우선 기존의 헌정주의에 대해서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잘 알려져있다시피 영국헌법은 불문법이고 관습법입니다. 하나의 문서화된 헌장에 의존하는 대신, 마그나 카르타, 권리장전을 비롯한 역사적인 헌정상의 문서들과 의회의 법령이 모두 헌법의 일부를 구성하게 됩니다.

이러한 불문법 체계의 기반을 이루는 것은 이른바 '신과 자연의 법'이라는 오래된 개념입니다. 여기에 따르면 인간은 헌법을 새로이 만들어내지 않습니다. 그것은 신과 자연에 의해 이미 주어진 것이며, 인간은 오직 그것을 해석하고 선포할 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로마법, 소위 '고래의 헌정(Ancient Constitution)' 등에서 마그나 카르타를 거쳐 계속 이어져온 영국의 헌정적 전통은 여기에 속하게 됩니다. 또한 의회의 법령(제정법)은 같은 이유로 보편적인 Common Law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의회의 법령도 헌법의 일부입니다.

그러나 18세기에 이르면 아메리카인들은 더이상 불문법 체계가 통하지 않는 시대가 되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전통적인 관념 하에서라면 의회는 어디까지나 관습법을 해석하는 기관일 뿐입니다. 그러나 이 시기에 비대화된 의회는 관습법과 분리된 새로운 법 자체를 만들어내는 기관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리고 앞서 보았듯이 영국 정부 자체가 혼합정부 이론에 완전히 들어맞지 않았기 때문에, 이 의회는 통제가 불가능한 '전지전능한' 주권적(앞서 말했듯이 국왕과 상하원이 모두 의회의 일부입니다) 입법기관이 되어버렸던 것입니다. 18세기 아메리카 식민지에 대한 과세 시도는 아메리카인들이 보기에 이러한 현상의 한 예에 불과했던 것이구요.

정리하자면, 기존의 인식 하에서 헌법과 기본과 의회의 법령은 분리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의회의 법령은, Common Law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었고, 따라서 보편타당성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렇기 때문에 아메리카 식민지인의 권리와도 어긋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18세기 중엽에 이르면 그 원인이 영국 정치의 부패이든 입법부의 비대화이든간에 이러한 체계가 더 이상 작동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아메리카인들은 국왕과 의회의 자의적인 통치를 제어하기 위해서는 정부와 분리된 무언가, 즉 국왕이든 의회든 국가기관이 마음대로 바꾸거나 파괴할 수 없는 무언가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미국헌법이며, 그것이 혁명적인 성격을 갖는 이유입니다.

이것은 사법적으로 상당히 중대한 변화인데, 기존 영국법의 권위의 원천이 신과 자연에게서 나온 관습법(고래의 헌정)에 있다면, 새로운 미국법에서 권위의 원천은 헌법 그 자체에 있었습니다. 영국의 헌법 개념에 중세적 영향이 남아있었다면, 미국헌법은 완전히 근대적인 현상이었습니다.

필라델피아 제헌회의


아메리카인들은 헌법이 이렇게, 군주나 입법부의 자의적 통치로부터 인민의 권리를 수호하는 역할을 담당할 수 있도록 헌법에 초월적 권위를 부여하는 방법을 고민하였습니다. 결국 그것은 앞서 말했듯이 국가기관과 별개의 존재가 되어야 했으며, 입법부의 다른 법령보다 우월해야 했습니다. 그렇다면 결국 헌법은 입법부가 제정해서는 안 되는 것이 됩니다. 입법부가 제정한다면 그것은 입법부가 바꿀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토머스 제퍼슨 등의 노력에 의해 제헌회의라는, 일반 입법부와 분리된 별도의 기구가 탄생하게 됩니다. 이는 입법부나 다른 기관이 마음대로 헌법을 만들고 수정할 수 없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에서 향후 200년간 미국 법제사의 핵심이 될 대원칙이 세워졌습니다.


"헌법은 집단적 인민의 동의 위에 세워져야 하며, 오직 인민에 의해서만 수정 가능하다."



이러한 원칙은 모든 주에 빠르게 적용되었고, 헌법은 미국 전역에서 인민의 적극적인 동의에 의해 행해진 사회계약이 되었던 것이지요.



나오며

지금까지 공화주의와 미국헌법이라는 두 개의 틀 하에서 미국혁명의 역사적 의의를 살펴보았습니다. 다소 딱딱한 이야기라 읽는 재미는 많지 않으셨을 것 같은데(^^), 미국혁명의 사상적 기반이 그만큼 견고했다는 점과, 독립 이후 신생 공화국을 안정시키고 국가의 틀을 잡아가는 과정에서 얼마나 치열한 고민과 토론, 논쟁이 있었는가를 조금이라도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보면 소모적이고 지루해 보이는 이러한 과정이야말로 미국혁명의 결과가 결국 성공적으로 자리잡을 수 있었던 근본원인이고, 현재까지도 시사해주는 바가 크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미국의 공화주의 실험, 그리고 그에 이른 민주적 공화국의 건립은 이론적으로는 르네상스 때부터 내려오던 관념이었지만, 정치적으로는 상당히 낯선 실험이기도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이렇게 치열한 이론적 논의가 뒷받침이 되지 않았다면 성공하기가 결코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는 영국 본국과 식민지 간의 갈등, 그리고 독립전쟁의 최종적 승리와 미국의 건국에 더 주목하는 경향이 있지만, 단언하건대 독립을 얻어내는 순간부터 미국헌법이 제정되기까지의 과정은 그 못지 않은 위기의 순간이었고, 역사적으로 대단히 중요한 순간이었습니다. 그것은 상당히 불안한 상태의 신생 공화국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결정하였고, 더 나아가 근대사의 흐름에 막대한 영향을 남겨놓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들을 모두 포함하고 있는 미국혁명이 가진 역사적 의의는 참으로 거대하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덧글

  • 크핫군 2012/07/04 17:43 # 답글

    흔히 우리가 배우길 미국독립혁명을 그저 영국의 지나친 과세에 대해 반발하여 일어났던걸로만 배우지요. 이런 중요한 것들에 대해 그냥 지나친다는 것에 왠지 씁쓸합니다
  • Mr 스노우 2012/07/04 18:10 #

    위에서도 써놓았지만, "미국독립혁명"은 바른 용어가 아닙니다. "미국혁명(American Revolution)"이 있고 그 안에 "독립전쟁(War of Independence)"이 포함된 것이지요.
  • 크핫군 2012/07/04 18:16 #

    하지만 우리는 미국혁명이 아닌 미독립혁명으로써 배우지요... 글을 읽고나니 이 점이 더욱 씁쓸하네요
  • 2012/07/04 18:15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2/07/05 16:23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零丁洋 2012/07/04 21:48 # 답글

    요즘 우리 정치에도 시사하는 봐가 큰 좋은 글이네요. 권위를 인정받은 헌법과 깨어있는 시민! 바로 이 시민이 민주공화정의 핵심이죠. 우리는 미국이 복지을 등한시하고 세금보다 기부에 의존하는 것이 이상하게 보일지 모르나 시민의 약속으로 헌법을 만들고 시민의 노력으로 국가를 형성한 미국시민 입장에서 미국적 민주주의를 위해서는 국가에 의존하지 않고 자기 운명을 스스로 책임지는 독립적인 시민이 필요했기에 세금을 강탈로 생각하고 복지가 시민 다운 정신을 빼았아 갈까 두려워하고 있죠.
  • Mr 스노우 2012/07/05 16:24 #

    아무래도 동시대 유럽보다 상대적으로 빈부격차가 적었고, 자기 땅 가진 농민이 비교적 많았던 18세기 아메리카라는 상황도 고려에 넣어야 할겁니다. 거기다 고전적 공화주의 이론에 따르면 누군가에게 경제적으로 예속되는 것은 자유로운 시민이 아니라는 쪽으로 나아가게 마련이니까요.
  • 행인1 2012/07/04 22:46 # 답글

    사실 18세기 후반에 왕없이 나라를 꾸려나가고 '성문 헌법'을 만들겠다는 발상을 실천에 옮긴건 대단하다고 밖에 볼 수 없죠.
  • Mr 스노우 2012/07/05 16:25 #

    사실 한 세기 앞서 영국의 예가 있으니 왕이 없는 공화정 자체만으로는 그렇게 새롭다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 속성에서 고대-르네상스의 시민적 전통을 이으면서 완전히 근대적인 국가 시스템을 창출했다는 점에 의의가 있는 것이지요.
  • 부여 2012/07/04 22:47 # 답글

    흐음. 과연 미국혁명은 단순히 정치적인 '독립'만이 아니라 사상적이나 법제적으로도 세계사적 의미를 가진다는 것이로군요. 현대로 한 발짝 더!
  • Mr 스노우 2012/07/05 16:27 #

    솔직히 한 나라의 독립에 그치고 마는 사건이라면 세계사적으로 그렇게 큰 의미를 둘 수 없는 것이겠지요.
  • 다레하늘 2012/07/05 00:57 # 답글

    미국혁명은 독립전쟁이라는 큰 사건을 기점으로 삼기는 했으니 그게 가장 주목받는 것은 어쩔 수 없지요. 건국 직후에는 어디서나 나라를 어떻게 이끌어가야하나에 대한 철학적 논의가 이어지지만 미국의 경우에는 "백지에서부터 시작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독보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 Mr 스노우 2012/07/05 16:28 #

    국내에서 독립전쟁이 인지도가 더 높은 것은(물론 학계 내에서는 딱히 그렇지도 않지만) 법제적 논의나 토론 같은 머리 아프고 딱딱한 것보다는 흥미로운 사건에 끌리는 경향이 더 크지 않을까 싶습니다.
  • 셔먼 2012/07/05 02:01 # 답글

    당대 미국의 균형정치 이론이 고전적인 공화주의를 참고하고 이를 보완하는 방식으로 발전해 나갔다는 점이 매우 흥미롭습니다. 헌데 프랑스는 혁명 이후에 미국의 균형정치 이론이 도입된 사례가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 Mr 스노우 2012/07/05 16:30 #

    프랑스의 경우에도 고전적 정치가 상당히 영향을 많이 미쳤습니다. 고대적 상징, 의례의 부활 면에서 두드러지지요. 그러나 프랑스 혁명기의 자코뱅주의에서 나타난 급진적 평등주의는 아무래도 고전적 공화주의와는 양립하기가 어려울 것 같습니다.
  • 위장효과 2012/07/05 07:43 # 답글

    7월 4일 기념 포스팅이시군요^^;;;.
  • Mr 스노우 2012/07/05 16:31 #

    사실 이번학기 내내 쓰려고 생각하던 글이었는데 날짜 맞춰서 올렸습니다 ㅋ
  • daswahres 2012/07/05 11:15 # 답글

    오오 또다른 포스팅이로군요!! 기대됩니다!!
  • Mr 스노우 2012/07/05 16:31 #

    아니 사실 이 포스팅은 이걸로 끝입니다 ㅋ
  • 2012/07/05 17:29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2/07/05 17:44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2012/07/05 19:43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2/07/05 20:36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파랑나리 2012/07/05 23:01 # 답글

    미국독립을 살피면서 궁금한 게 식민지에 피압박 민족이 아니라 식민지에 이주한 본국인이 독립의 주체여서 이것을 식민지배에 대한 독립으로 볼 수 있을까 하고 궁금해했습니다. 다시 보니 미국혁명도 꽤나 치열했군요.
    1. 군주론만 아는 분 가운데 이 마키아벨리가 공화주의를 정립했다는 걸 얼마나 될까요?(사실 군주론도 반어적인 책인데)
    2. 성문헌법과 제헌의회가 미국에서 처음 시도되었군요. 처음 알았습니다.
    3. 다른 나라에서 미국식 민주주의를 받아들였다가 파시즘으로 파토난 것. 미국의 공화주의가 이론의 역사가 길다는 걸 생각하면 역시 이런 일은 뿌리가 깊어야 되나봅니다.
    4. 이 점에서 하워드 진의 주장은 다시 살펴봐야될지도.
댓글 입력 영역
* 비로그인 덧글의 IP 전체보기를 설정한 이글루입니다.


유사역사아웃

원시림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