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고대사를 모른다 History-근동, 서양사

제목을 좀 도발적으로 붙인감은 있지만, 이 말은 사실입니다. 물론 무슨 말이냐고 생각하실 분들도 계실겁니다. 역사에 대해 어느 정도의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서양의 고대사는 익숙한 에피소드들로 가득하기 때문이죠. 고대 그리스의 폴리스, 올림피아 제전, 스파르타의 300 용사, 알렉산드로스 대왕, 알프스를 넘는 한니발 기타등등... 그래서 우리는 은연중에 서양 고대사에 대해 비교적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가 익히 들어 알고 있는 이야기들이 확정된 사실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서양 고대사를 다루는 대부분의 대중적인 책들도 그렇게 서술되어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습니다. 물론, 고대 그리스인들은 우리가 동의하는 개념으로서의 역사를 만들어냈습니다. 헤로도토스는 '인간들의 행적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망각되는 것을 막고', 또 '헬라스와 비헬라스가 전쟁을 벌이게 된 원인을 탐구'하기 위해 <역사>를 썼습니다. 과거 사실의 기록, 그리고 한 사건의 원인과 결과에 대한 탐구는 근대 역사학에서도 변함이 없는 목적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대 그리스, 로마의 역사서술과 근대 역사학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고대 사료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지식은 근본적으로 제한된 것입니다.

첫째, 사건의 인과를 합리적으로 추정하는 것이 그리스가 개발해낸 역사 개념이긴 합니다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100퍼센트 팩트를 기록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그것은 근대 역사학의 개념, 혹은 잘해야 르네상스 이후의 개념입니다. 상당수의 그리스, 로마 역사가들의 관심은 일차적으로 사건의 객관적 전달보다는 도덕적 교훈에 치우쳐져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실 현재에도 역사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고 보는 사례가 많으니, 딱히 이상한 일은 아니겠습니다. 그리고 고대 근동 이래로 역사기록은 사실보다는 정치적, 종교적 목적을 위해 쓰여졌던 것이 당시의 상식이었지요. 많은 역사가들은 청중, 특히 정치 엘리트 계층들에게 도덕적 교훈을 주기 위한 목적으로 역사를 썼으며, 이 목적에 부합한다면 사실을 희생시키는 것은 당시로서는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둘째, 당시 기준으로 역사는 무엇보다도 '이야기'였으며, 호메로스의 서사시처럼 사람들 앞에서 낭독되는 것을 목적으로 쓰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런 까닭에 당시의 역사서는 드라마틱한 구성도 많고(다름아닌 헤로도토스의 <역사>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수사학적인 표현으로 가득합니다. 그리고 그 중 상당수는 허구입니다. 헤로도토스의 <역사>라든지, 투퀴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 멋지게 표현되는 당대 인물들의 긴 연설들이 대표적입니다. 이런 연설들이 얼마나 진실을 담고 있는지 우리는 결코 알 수 없습니다. 거의 대부분이 창작일 가능성도 있습니다.

셋째, 심지어 도덕적 교훈보다도 사건의 인과에 대한 합리적인 탐구를 주장한 역사가라 할지라도 그 자신의 주관적 관점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특히 제가 첫째 부분에서 서술했듯이, 당시 작가들은 자신들의 목적을 이야기하기 위해서 객관적 사실까지 얼마든지 변형시켰습니다. 헤로도토스의 경우 반스파르타 감정으로 인해 스파르타에 대한 서술이 왜곡되었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고, 투퀴디데스는 제가 지난번 포스팅에서 설명했듯이 반민주주의 감정으로 아테네 민주정에 대해 상당히 왜곡된 서술을 하고 있지요. 예전엔 이런 부분을 곧이곧대로 믿기도 했습니다.(그리고 아직도 많은 대중서들은 그렇게 서술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고대에서 현대까지 세월의 간극은 많은 사료들을 소실시킨것 못지 않게, 살아남은 사료들도 변형시켰습니다. 당연히 우리가 보는 원사료들은 다 사본들이고, 사본들은 필사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오류가 발생하게 됩니다. 특히 숫자와 관련된 것들은 가장 취약한 정보들이라 필사 과정에서 무수하게 변형되었습니다.

이것은 당시 역사가들이 엉터리라는 뜻이 아닙니다. 19세기 역사학의 기준으로 고대 역사서술을 평가할 수도 없을뿐더러, 고대 그리스가 탄생시켜서 로마에 넘겨준 역사 개념은 이전에 비하면 대단히 진보적이고 객관적이 것이 맞습니다. 다만 현대적 의미에서 역사와는 다르며, 따라서 그것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런 점들을 생각해볼때, 우리는 고대사에 대해 아는 것이 정말 없습니다. 공부를 하면 할수록 모르는 것이 더 나온다고 해야겠지요. 우리는 스파르타의 정치체제의 실상에 대해 잘 모릅니다. 페리클레스가 실제로 어떤 연설을 했는지도 알 수 없습니다. 한니발이 칸나이 평원에서 상대했던 로마군의 정확한 수도 알기 어렵습니다. 이와 같이 고대사는 모르는 것 투성이입니다. 단지 제한된 사료와 여러가지 가능한 증거들을 총동원하여 가장 그럴듯한 추측을 할 뿐입니다.


덧글

  • 초록불 2013/12/30 11:45 #

    과거는 낯선 나라...
  • Mr 스노우 2013/12/30 11:53 #

    그게 진리인 것 같습니다
  • 도연초 2013/12/30 12:14 #

    과거는 미래를 모르고 미래는 과거를 모른다..... 아....
  • 도연초 2013/12/30 12:11 #

    저도 어릴적부터 역사에 깊게 관심을 가져왔고, 덜컥 믿는 일이 많았지만

    점점 나이먹고 일본사에 관심을 가지면서 기록된 역사에 의문을 품게 되었지요....

    (어찌보면 일본사에 감사해야할지도. 기록 그대로 믿기보다 교차검증 등 온갖 과정을 거치는 습관을 들게 해주었으니)
  • Mr 스노우 2013/12/30 13:21 #

    어느 나라 역사나 마찬가지죠..;;
  • 긁적 2013/12/30 15:33 #

    음. 우리는 고대사를 ""잘"" 모른다고 하시면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 세부적으로 쓰신 내용은 전부 옳으니까요.

    데카르트 이전에는 객관과 주관의 분리 내지 회의주의에 대한 본격적인 고려가 빈약했다는 걸 감안하면 더 그렇죠. '참' 혹은 '옳음'이라는 개념 자체가 우리와 약간 다를 것입니다.
  • Mr 스노우 2013/12/30 21:16 #

    제목은 그냥 과장이 좀 들어갔다고 생각하심 됩니다ㅋ
  • 진냥 2013/12/30 15:44 #

    어느 시대건 역사 자체를 100% 알 수 있는가 하는 점도 의문스럽지요. 같은 시대 같은 공간에 일어난 일조차 주관과 왜곡의 필터를 거쳐서 뇌수로 도달하니까요.
    사료란 진리의 성전이 아니라 끊임없이 의심하고 궁구하며 상상해야 하는 것.... 이것만으로 역사가 성립된다거나, 이것이 없어도 역사를 공부할 수 있다거나 하는 의견에 대해서는 정말이지 탄식이 나올 따름입니다=ㅅ=
  • Mr 스노우 2013/12/30 21:17 #

    그렇지요. 사실 현대사도 그런 성격이 있는 마당인데 고대사는 더 말할 것도 없지요. 그래서 파면 팔수록 더 어려운게 학문이기도 하고..ㅠ
  • af 2013/12/30 16:09 # 삭제

    로마와 중국이 '그나마' 고대사에서 사료가 많이 남은 케이스고 한국도 로마중국만큼은 아니지만 나름 풍부한 편인데도 사료가 부족해서 뭘 하기가 힘들죠. 그래서 추측에 추측이 꼬리를 물고 모든게 추측으로 귀결됩니다. 고대사는 이런 한계가 있고 이런 한계는 고대사에 접근하는 이를 질리게 하더군요.
  • 긁적 2013/12/30 18:32 #

    그래서 그런지 제대로 쓰여진 책을 보면 '아마 이랬을 꺼다' 내지 서술을 대강 하고 넘어가더라구요 ㄱ-.... 하이켈하임의 로마사를 본 적이 있는데 로마 왕정에 대한 서술은 그냥 없다시피..;;
  • Mr 스노우 2013/12/30 22:51 #

    고대사를 전공하시는 분들은 정말 대단하신 분들입죠. 설령 사료가 풍부하다 하더라도 그 사료가 모든 것을 말해주는 것은 아니니까요.
  • 무갑 2013/12/30 18:52 #

    말씀하신 문헌학적인 역사연구도 그렇지만,
    문헌에는 전하지 않고, 고고학 자료만(유적, 유물) 남은 문화, 문명들의 경우도 많고 그에 대한 해석 과정 중 현대인의 시각에서 잘못 된 해석을 하기도 하고,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미스터리로 남기도하죠.(청동기 유물만해도 용도불명 청동제품이라는 설명을 많이 접하게 됩니다^^;)
  • Mr 스노우 2013/12/30 21:19 #

    이래저래 어려운 부분입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아직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있는 범위가 그만큼 크기도 하고 말이죠.
  • BARCO 2013/12/30 18:52 # 삭제

    멋진 글입니다. 역사학도는 아니지만 역사를 좋아합니다.
    주인장의 글에서 느껴지는 것처럼 요 몇년간 고민하는 것 중 하나가 현재의 나의 입장에서 역사를 보고 있는 것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입니다.
    역사는 재미있지만, 너무 어려워요!
  • Mr 스노우 2013/12/30 21:20 #

    감사합니다^^ 뭐든지 제대로 하려면 어려운 법이지만, 어렵기 때문에 더더욱 파고들 가치가 있다고도 할 수 있겠지요ㅎ

    완전히 객관적인 역사인식은 불가능합니다. 모든 역사는 자신이 서 있는 입장에서 볼 수밖에 없지요. 다만 그 입장으로 모든 역사를 재단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이 중요할 것 같습니다.
  • 바이라바 2013/12/31 07:40 #

    그래서 카의 '역사는 현재와 과거의 대화다'라는 말을 믿지 않습니다. 대화란 건 산 것끼리하는거지, 산 것하고 죽은 것이 대화하면 그건 강령술이 아닐까 싶네요. 산 것끼리 붙여놓아도 말이 안 맞는 마당에 죽은 것과 말하는 건 오죽할까요.
  • Mr 스노우 2013/12/31 14:05 #

    글쎄요;; 저는 과거가 낯선 나라라고 해서 반드시 죽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제 블로그 대문에 써놓은 포크너의 말에 동의하는 바거든요. 어려운 대화라고 하더라도 더욱 열심히 대화해서 과거를 복원하도록 노력하는데 역사가의 할 일이겠죠.
  • 지나가던과객 2013/12/31 11:16 # 삭제

    고대사를 모른다니요!!

    바이칼 호수를 지나 수메르 제국까지 세운 위대한 환국을 무시하지 말라능!!
  • Mr 스노우 2013/12/31 14:05 #

    컥;;
  • daswahres 2013/12/31 14:54 #

    저도 이번에 나리타 류이치의 저서를 바탕으로 일본 근현대사를 다시금 돌면서 반성 많이 했습니다
    하물며 근현대사도 이런데 고대사는..
  • Mr 스노우 2013/12/31 15:14 #

    다 그런게 있죠. 고대사가 특히 심하지만..
  • 누군가의친구 2013/12/31 18:12 #

    그러고보면 사극이라는 것도 현대인들이 보는 시점의 고대사 이야기지, 사실 고대인들 관점은 아니죠.
    단종-세조때를 다룬 70~80년대와 현재를 보면 정말 어떤 시각으로 역사를 보고 있느냐가 극명하게 갈리는 터라 말입니다.


    그러고보면 요즘 사극들이 막장화 추세인것을 보면 요즘 한국인들은 막장 드라마를 좋아한다는걸 알수 있는것 같습니다?(어이.)
  • Mr 스노우 2013/12/31 21:55 #

    뭐 제 글의 요지는 고대인의 서술을 있는 그대로 신뢰할 수는 없다는 것이고, 따라서 이에 대한 비판적 읽기는 반드시 필요한거겠죠;; 요즘 사극이 그러고 있는건 아닌것같지만..
  • 누군가의친구 2013/12/31 23:13 #

    즉, 그 시대의 사람의 시각을 다루다보니 조금만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도 동일한 역사적 사건에 대한 서술이 저런걸 보면, 고대였더라더 고대인의 시각에 의해 사실과 다른 부분도 있는건 당연한듯 합니다. 생각해보니 삼국사기의 표문도 임금의 선함과 악함, 신하의 충성과 간악함을 후세에 교훈을 주기 위함이라고 했던걸 보면 교훈을 주기 위한 목적이라는 것은 동서양 막론하고 공통적 공감대가 있군요.

    그리고, 사극은 무인시대만 하더라도 맨 마지막회 마지막 5~10분정도는 무인집권자들의 등장과정 정리와 한계점, 그리고 조선의 건국자인 이성계와 차이점을 비교하며 왜 문제가 있었는지 비판적 해설까지 하는데 그 이후론 사극엔 비판적 읽기는 더이상은 보지 못했습니다.
  • 유수 2016/07/25 20:38 #

    잘 봤습니다. 객관적 전달보다 도덕적 교훈에 치우쳐진 경우가 많다는것과 역사가가 주관적 관점에서 자유로울수 없다는것 그리고 그리고 살아남은 사료의 변형은 사료비판이 필요하다는 것을 다시 상기시켜주는군요. 한자권의 경우 十자와 千자의 차이란;;

    이 글을 퍼가도 될런지요?
  • Mr 스노우 2016/07/25 23:57 #

    그래서 고중세사 연구가 많은 역사애호가분들이 흔히 생각하는 것보다 대단히 어려운 것이지요. 네 괜찮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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