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는 왜 죽었는가 (1) homo religiosus

그리스도교의 교리에서 예수의 죽음과 부활만큼 중요한 사건은 없을 것이다. 이 사건은 당연히 신학적 의미를 띄고 해석이 된다. 하지만 곧 부활절이 다가오는 이 시점에서, '죄의 대속' 등과 같은 신학적 개념들을 잠시 제쳐놓고, 1세기 팔레스타인에 실제로 살았던 한 유대인 남자의 죽음을 생각해보는 것도 의미있는 일일 것 같다. 역사학적으로 보았을때, 예수는 왜 죽어야만 했을까?

대중적으로 예수는 유다교에 반기를 들었다가 신성모독죄로 죽음을 맞았다고 많이들 말한다. 특히 모 위키에 서술된 내용(종교범죄를 다루는 산헤드린은 사형선고를 내릴 권한이 없었기 때문에 -어디까지나 사형을 시키기 위해-정치범으로 몰아서 로마 총독에게 보냈다는등)은 이러한 관점을 잘 반영한다. 주일학교 식의 성서교육은 예수와 바리사이파를 대비시키는 내러티브를 많이 주입시켰고, 여기서 바리사이파는 예수를 종종 죽음으로 몰고 간 유다교 '근본주의자'로 묘사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설명은 얼마나 역사적으로 타당할까?



만악의 근원 바리사이?

20세기 이후로 유다교에 대한 연구가 급진전되면서 학계에서는 바리사이파에 대한 인식이 예전과는 상당히 달라졌다. 물론 그 변화가 대중적인 인식까지 이르지는 못한듯 보인다. 여전히 그리스도교 교인들이나 일반인들중에서도 바리사이파라는 말에는 부정적인 뉘앙스가 상당히 있으며, 인터넷 등지에는 근본주의적 교인들의 행패를 가리켜서 '옛날 바리사이가 하던 짓'이라고 써놓은 경우가 종종 보인다. 하지만 이는 사실 바리사이들이 들으면 상당히 억울할 표현이다(...) 위에서 언급한 모 위키의 서술은 이러한 편견을 여과없이 반영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처음부터 끝까지 죄다 틀린 서술이다.

그렇다면, 몇 가지 문제를 본격적으로 따져보도록 하자. 1세기 팔레스타인에서 바리사이는 흔히 표현되듯 유다인들에게 있어서 종교나 정계에서 주류, 기득권층이었는가? 예수는 그들의 신학 사상과 정면으로 충돌했고, 바리사이들이 보기에 '신성모독'을 저질렀는가? 그것이 결국 예수를 죽음으로 몰아넣었는가?

우선 첫번째 문제부터 따져보자면, 바리사이는 정치든 종교든(당연히, 고대 사회에서 이 둘은 칼같이 구분되지 않는다) 기득권과는 한참 거리가 있는 집단이었다. 가끔 오해되는 것인데, 바리사이파는 사제집단과 동의어가 아니다. 사제들 중에 바리사이 학파가 있을 수는 있어도, 바리사이는 기본적으로 평신도 신학 운동에 가까웠다.

유다교는 경전의 종교다. 그 중에서도 율법을 기록한 토라가 유다교 경전의 핵심이다. 하지만 토라의 율법이 아무리 세세하다고 해도 일상생활에서 마주치는 문제는 더 복잡하다. 그리고 율법이라는게, 본문비평 연구가 밝혀낸 바에 따르면, 모세가 단번에 받아쓴 것이 아니고, 오랜 기간에 걸쳐 축적된 문서인만큼 상충되는 점과 모순점도 많을수밖에 없다. 이런 면에서 율법이 실생활에 적용되기 위해서는 '해석'이 필요하게 된다. 바리사이는 평신도로서, 많은 경우 생업에 종사하면서 동시에 이 율법 연구와 해석을 전문적으로 하는 신학자들이었다.

이들은 율법의 엄수를 핵심으로 삼고 그에 따라 살았지만, 결코 경직된 종교 집단은 아니었다. 거기다가 바리사이 학파들은 자신들이 지키는 엄격한 법 규정을 다른 이들에게 강요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민중들에게는 보다 실생활에서 쉽게 지킬 수 있는 법 규정을 만들어내기 위해 노력했다. 그 덕분에 이들은 유다인들 사이에서 큰 존경을 받는 집단이었다.

하지만 학문적 영향력 외에 정치적 영향력이 있었느냐 하면 그렇지는 않았다. 이들이 정치무대에서 활동했던 것은 하스모니아 왕조 시기였으며, 이때 하스모니아 왕들에게 대대적인 탄압을 받은 뒤로(바리사이 수백명이 십자가에서 처형되었다) 정치적 영향력은 완전시 상실한 뒤였다. 1세기 유대에서 정치적, 종교적 권력은 어디까지나 헤로데 왕가의 왕들과 로마의 힘을 등에 업은 예루살렘의 사제집단에게 있었다.

두번째 문제. 이들은 예수와 신학적인 문제로 정면 충돌하는 관계였을까? 예수는 그들을 엄청 배척했을까? 이건 좀 애매하다. 확실히 복음서의 내러티브를 따라가면 그런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그들의 대중적인 이미지가 꼴통 근본주의자들로 굳어지게 되었다. 하지만, 복음서는 역사적 예수 연구의 가장 중요한 사료이지만 결코 역사적 사실을 그대로 기록한 문서는 아님을 명심해야 한다.(사실 그런 고대 문서는 거의 없다. 예전에도 몇번 쓴 적이 있지만, 심지어 투퀴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도 그의 반민주주의적 편견이 짙게 들어간 저작이다)

최근의 학자들, 특히 E. P. 샌더스의 경우 복음서에서 바리사이와 예수가 충돌하는 사례는 대부분 예수 사후에 그리스도교가 본격적으로 유다교와 갈라서면서 나타나게 된 대립관계가 투영된 것이라고 보고 있다. 우선 한 예를 살펴보도록 하자.



예수님께서 다시 회당에 들어가셨는데, 그곳에 한쪽 손이 오그라든 사람이 있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고발하려고, 그분께서 안식일에 그 사람을 고쳐 주시는지 지켜보고 있었다. 예수님께서 손이 오그라든 사람에게 "일어나 가운데로 나와라." 하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안식일에 좋은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남을 해치는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목숨을 구하는 것이 합당하냐? 죽이는 것이 합당하냐?" 그러나 그들은 입을 열지 않았다. 그분께서는 노기를 띠시고 그들을 둘러보셨다. 그리소 그들의 마음이 완고한 것을 몹시 슬퍼하시면서 그 사람에게, "손을 뻗어라." 하고 말씀하셨다. 그가 손을 뻗자 그 손이 다시 성하여졌다. 바리사이들은 나가서 곧바로 헤로데 당원들과 더불어 예수님을 어떻게 없앨까 모의를 하였다. (마르코 복음 3: 1-6)



이것이 흔히 알고 있는 바리사이파의 이미지이다. 그런데 찬찬히 뜯어보면 이상한 점이 몇 군데 있다. 첫째로, 이 사건은 누군가를 죽음에 이르게 할 정도로 심각한 대립이 아니다. 앞서 말했듯이, 유다교는 경전의 종교고 이는 필연적으로 경전의 해석을 둘러싼 견해 차이와 논쟁을 수반한다. 안식일 규정과 정결법 규정이 이에 해당한다. 안식일에 일을 하지 말라고 하더라도 그 일의 범위가 어디에 해당하느냐는 사람이나 학파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위 본문에서 예수는 안식일을 부정하지 않았다. 앞서 마르코 2장에서도  예수는'사람이 안식일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 있는것'이라고 말할 뿐, 안식일 자체를 부정하지 않는다. 그런데 안식일은 사람을 위해 존재한다는 인식이나, 본문에서 예수가 말한대로 위급한 병이라면 안식일에도 치료해야 한다는건 당시 유다교의 율법학자들도 대부분 동의하는 전제였다.

결국 예수와 바리사이 파의 의견 대립은 안식일을 비롯한 율법의 디테일한 해석의 차이에 해당하는 것이고, 이러한 논쟁은 1세기를 포함한 유다교 역사에서 수도 없이 일어났다. 하지만 그런 논쟁이 누군가의 죽음으로 이어진 경우는 찾아보기 드물다.

권력층과 거리가 먼 집단인 바리사이와 권력층에 속하는 헤로데 당이 같이 모의를 꾸몄다는 것도 믿기 어렵다. 루카 복음서를 보면 정작 헤로데 왕이 예수를 죽이려 한다는 말을 전해주어 예수를 피신시킨 이들이 바리사이 파였다.(루카 13:31-33) 게다가 바리사이가 예수를 죽이기 위해 모의를 꾸몄다지만 정작 그 뒤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반면 헤로데가 예수를 죽이려 했을때 예수는 재빨리 피신한다. 이는 '바리사이의 모의'는 역사적 실재라기보다는 예수 사후 교회가 경험한 일들이 복음서에 투영된 것임을 암시한다.

거기다 복음서를 보면 예수와 바리사이 파는 논쟁하는 기사 외에도 위와 같은 우호적인 서술과, 바리사이가 예수를 초대해서 같이 식사를 하는 서술이 함께 나온다. 당시에 집으로 초청해 식사를 함께 한다는 것은 요즘 생각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는 일이었다. 예수가 소외된 이들, '죄인'으로 규정된 이들과 함께 식사를 한 일이 그렇게 시끄러운 스캔들이 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러한 이야기들은 어쨌든 바리사이들이 예수를 자신들과 비슷한 격을 가진 사람으로 인정했다는 뜻이 되고, 그 초대를 받아들인 예수도 그랬다는 말이 된다. 이러한 기사는 예수와 바리사이의 실재 관계가 그렇게 험악하지만은 않았다는 것을 암시한다.

물론 성서에 기록된 양측의 적대적 관계가 전적으로 허구라는 말은 아니다. 샌더스도 예수와 바리사이의 관계를 너무 순화시켰다고 종종 비판을 받는다. 복음서에 바리사이에 우호적인 전승과 비판적인 전승이 혼재되어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분명 예수와 바리사이는 견해 차이가 있었고 그에 따라 논쟁도 했을 것이다. 논쟁을 하다보면 얼굴 붉힐 일도 있을테고, 당연히 감정이 안좋을 때도 있었을 것이다. 특히 위에 언급된 '죄인들과의 식사' 문제는 바리사이 파를 꽤 심각하게 자극했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유다교 내 논쟁의 전통을감안한다면, 이것이 예수의 죽음을 부른 원인이 되었을 가능성은 낮다. 바리사이 파 내에서도 율법을 가지고 논쟁이 끊이지 않았고, 바리사이 파와 진짜 종교권력층인 사두가이 파의 대립은 한층 더 험악해서 복음서에 기록된 예수와 바리사이 파의 논쟁보다 열배는 더 심각한 논쟁도 자주 있었다.

신약학자 헬렌 본드의 말을 인용하자면, '바리사이는 누군가를 죽일 권력도 없었을뿐더러, 딱히 예수를 제거할 이유도 없었다.'




예수는 구약의 법을 파괴하였나?

예수가 구약시대의 율법, 특히 정결법과 음식에 대한 법을 거부하였다는 인식은 생각보다 널리 퍼져있는듯 하다. 하지만 복음서를 상세히 읽다보면 예수가 직접적으로 구약의 법에 도전하는 경우는 거의 드물다. 위의 안식일 논쟁도 안식일 그 자체가 아니라 안식일 규정의 해석을 둘러싼 논쟁이었다. 대부분의 논쟁이 그런 식이다.

유다인의 정결법 규정은 성전 중심의 유다교에서는 대단히 중요한 규정이다. 하지만 이게 가장 엄격하게 지켜지는 경우는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갈 때이고, 평소의 자잘한 규정은 해석의 차이가 많았다. 예수와 바리사이는 이 해석을 둘러싸고 논쟁을 벌였으나 정결법 자체를 무시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물론 성전과 멀리 떨어지는데서 사는 갈릴레아 인들은 아무래도 정결법에 대해 느슨한 인식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았을 것이다. 그래서 도미닉 크로산 같은 경우는 예수가 정결법에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고 보기도 한다. 그러나 유다인으로서의 예수를 중요하게 보는 게자 버마스나 샌더스 같은 경우는 여기에 반대하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무엇보다도, 예수는 생애 마지막 1주일을 예루살렘에서 보냈으며, 많은 시간을 성전에서 가르치거나 논쟁하면서 보냈다. 예수가 진짜로 정결법을 무시했다면 이때 성전에 들어가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예수 사후에 제자들도 성전에 출입하며 활동하였다. 이들도 기본적인 정결법을 준수했던 것이고, 따라서 예수도 그랬을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예수 재판에 대한 이야기를 보면, 예수의 유죄를 입증하는 여러 증언들이 등장하지만, 성전의 정결 규정을 어겼다는 말은 하나도 없다. 정말 정결법을 무시하고 성전에 들어왔다면(들어오기도 힘들지만) 그 자체로 심각한 위법이었음에도 말이다.

음식에 관한 법도 마찬가지다. 예수 사후 초대교회에 비유다인 신자들이 늘어나면서 음식 규정을 둘러싼 격렬한 논쟁이 일어난다. 이는 사도행전에 묘사된 사도 베드로의 환상 장면에서도, 사도 바오로의 서신에서도 그 흔적을 찾아볼수 있다. 그런데 예수가 평소에 구약의 음식 규정을 지킬 필요가 없다고 제자들에게 가르쳤거나, 본인이 안 지키고 살았다면 그럴수 있었을까? 막말로 예수가 구약의 음식 법을 폐기했다면 이걸 가지고 사도들이 싸울 이유 자체가 없다. 결국 예수는 생전에 음식과 관련된 율법의 규정을 지켰으며, 제자들에게도 딱히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남기지 않았을 것이다.(사실 전원 유다인인 그들 공동체에서는 그럴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여기서 유추할 수 있는 결론은 간단하다. 예수는 구약의 법을 준수했다. 다만 그 해석에 있어서 당대의 다른 많은 종교인들과 달랐을 뿐이다(물론 그들도 서로서로 달랐다). 사실 이 율법에 있어서 통일된 해석은 거의 없었으며, 당시 유다교는 해석이 다르다고 사람을 죽이는 종교도 아니었다.

그렇다면, 예수의 진짜 적은 누구였으며 왜 그를 죽음으로 몰아넣었을까?



ps. 원래는 한번에 다 쓰려고 했는데 쓰다보니 너무 길어져서 가독성을 위해 둘로 나눠써야 할것같습니다ㅠㅠ

덧글

  • 도연초 2015/03/31 12:34 #

    사실 예수의 산상수훈중에 율법과 관계된 의미심장한 구절이 있습니다.

    나는 율법을 없애러 온 게 아니라 완성하러 온 것이다. 진심으로 말하노니 세상이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한 자투리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않고 다 이루리라. 마 5:17-18

    음식에 대해서 그 유명한 최후의 만찬도 전형적인 유월절 식단이었고... 거기다가 본문에 나와있듯이 이슬람교같은 글로 돼지 먹지 마라 같은 과정도 없었고요(하지만 예수 사후의 원시 기독교에서 있었을법한 식단문제를 암시하는 게 사도행전에 나오는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먹으라 하나님께 속한 것을 네가 부정하다 하지 말라 였을 테고요.)
  • shaind 2015/03/31 17:49 #

    "너희는 내 말을 새겨들어라. 무엇이든지 밖에서 몸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사람을 더럽히지 않는다. 더럽히는 것은 도리어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다."
    예수께서 군중을 떠나 집에 들어가셨을 때에 제자들이 그 비유의 뜻을 묻자 예수께서는
    "너희도 이렇게 알아듣지를 못하느냐? 밖에서 몸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사람을 더럽히지 못한다는 것을 모르느냐? 모두 뱃속에 들어갔다가 그대로 뒤로 나가버리지 않느냐? 그것들은 마음속으로 파고들지는 못한다."
    하시며 모든 음식은 다 깨끗하다고 하셨다.

    (막 7,14)

    마르코 복음서의 문헌비평적 지위를 고려하면 예수가 음식과 관련된 유대교의 일부 전통에 도전한 것은 분명 사실이긴 한 것 같습니다.
  • Mr 스노우 2015/03/31 21:20 #

    도연초// 그러니까 예수 사후, 교회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관련된 논쟁이 불거졌다는 것이지요.


    shaind// 그 마르코복음 전문을 보면 식사전 손씻기 논쟁이라는 맥락에서 그 구절이 나옵니다. 여기서 예수도 음식과 관련된 토라의 법 자체에 '도전'했다기보다는 그와 관련된 바리사이의 해석과 견해를 달리했다고 봐야 합니다. 당시 유다교 내에서도 일관된 해석이 없었다는걸 고려하면 그렇게 심각한 도전은 아니었을겁니다.
  • 해색주 2015/03/31 13:05 #

    도서관에서 몇 권의 유대, 종교의 역사책을 찾아봐서 제가 얻은 결론은 말이죠. 당시 사두가이, 바리사이 및 엣세네라는 3개의 주요 분파가 있어서 서로 대립하였는데, 예수님은 주로 사두가이파에게 공격을 받은 걸로 나옵니다. 성경책에서는 예수님이 바리사이파에 대해서 대놓고 비난한 적이 있기는 합니다.

    제가 읽은 책들에서는 사두가이와 엣세네파가 몰락하고 이후 바리사이가 유대의 주류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
  • Mr 스노우 2015/03/31 21:21 #

    감사합니다^^ 사두가이와 엣세네는 유대 반란으로 몰락했지요. 딱 하나 살아남은게 바리사이고.. 예수 당시에는 크게 강한 세력은 아니었습니다.
  • 리리안 2015/03/31 17:54 #

    간만에 절묘한 절단신공을 보고 분노(?)가...

    다음편도 기대하겠습니다
  • Mr 스노우 2015/03/31 21:21 #

    지금 쓰고 있습니다ㅎ
  • 앨런비 2015/03/31 19:24 #

    무슨 신부님이던가 쓴 책에서 본내용이 주루룩(...)
  • Mr 스노우 2015/03/31 21:21 #

    아닌데.. 원서 보고 쓴건데..
  • 지나가던과객 2015/03/31 20:44 # 삭제

    신전에서 난동부리면서 신전 근처의 상인들과 신전의 높으신 분들에게 찍혀서 죽은 겁니다.

    ps. 이런 글을 쓰는 이유는? 내일이 만우절이라고 해서 그냥.......
  • 귀여운 순록 2015/04/01 13:37 #

    모 위키가 어딘가 했더니 역시나 거기군요. 각종 좆문가들이 설치는 곳이지만 그중에서도 종교 관련 항목들은 읽고 있으면 한숨이 나오는게...

    저도 예전에 유대교-기독교의 역사에 대해 알아보니 바리사이의 이미지가 확 변하길래 좀 놀랐죠. 아니 얘네 이런 애들이었어? 하는 느낌--;;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 Mr 스노우 2015/04/02 02:12 #

    잘 모르면 단정적인 표현을 말아야 하는데 별 근거없이 자신있게 서술하는 태도가 참 문제죠
  • 별의내공 2015/08/04 12:53 #

    궁금한게 있는데, 바트 어만도 예수님의 실존에 대해서 지지한다고 나무 위키에 기록되어 있더라구요. 인터뷰 영상도 있으니 믿고는 있는데, 바트 어만이 이와 관련해서 발표한 논문이나 서적이 있나 궁금해서요. 그러니까 예수님이 실존한다고 증명한 논문이나 서적 말이죠! 유투브에서 시대정신 반박영상을 보고 있는데, 예수님이 실존했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은 기독교인들 뿐이라는 댓글이 있어서 그걸 반박하고 싶어서요~

    물론, 기독교인 학자들이 요한의 콤마나 몇몇 서신들이 바울이 아니라고 하는걸 증명할 때는 믿었으면서 예수님이 실존한다고 했을 때는 기독교인이니 믿지 못하겠다고 한건 이중잣대 맞습니다. 자기 입맛과 편견에 맞는 주장만 받아들이겠다는 거니까요. 다만, 기독교인이 아닌 학자들도 지지한다는걸 증명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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