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리아스>와 고대 전투의 실상 History-근동, 서양사


서양 문학의 근간을 이루는 서사시 <일리아스>는 고대 전투를 현실적으로 묘사하는 사료로도 쓸수 있을까? 아마도 이러한 반론이 들어오리라 예상해본다.


"그럼 전투가 죄다 장수들 일대일 대결인 삼국지연의도 고대 중국 전투의 실상을 반영한거냐?"


일견 타당한 지적이기는 하다. 문학 작품은 반드시 현실을 반영할 필요가 없으며, 그 나름대로 정형화된 형식과 틀이 있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몇년 전에 쓴 포스팅에서 언급한바 있지만, 이 점은 고대 역사서도 마찬가지다. 헤로도토스에서 폴리비오스에 이르기까지, 고대 그리스의 역사서술, 특히 전투 서술은 일리아스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 자신들이 목격한 동시대의 전투를 묘사할 때에도 일리아스의 언어와 패턴을 빌려와서 서술했다는 뜻이다.

이런 부분은 사실 고대세계의 흔한 서술법이기도 하다. 이 시대는 현대의 우리들이 하는것처럼 역사와 신학, 문학의 경계가 명확하게 구분되는 시대가 아니었다. 이것이 우리가 일리아스의 사료가치를 평가할때, 단순히 신화나 문학이니 허구라고 치부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일리아스의 전투서술은 고대 전투의 실상을 얼마나 잘 반영하고 있을까?

본격적으로 들어가기 이전에 한 가지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우리가 현대에 재구성하는 고대 전투에 대한 이론은 모두 가설이다. 대중서나 개설서의 서술 방식 때문에, 고대 전투에 대해 확고한 사실이 밝혀져있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지만, 정작 고대 역사서는 전투의 매커니즘이나 디테일에 그렇게 상세한 설명을 하지 않는다.(그도 그럴것이, 그 사서들의 독자들은 이미 그걸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다) 우리가 잘 안다고 생각하는 그리스 호플리타이 팔랑크스의 전투나, 마케도니아 팔랑크스나, 심지어 로마 군단병의 전투 방식까지도 명확히 밝혀진 것은 매우 적다. 그러니 자료가 훨씬 더 부족한 그 이전 시대의 전투에 대해서는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미케네 시대의 전투와 일리아스

일리아스가 묘사하는 시대는 미케네 문명기, 즉 후기 청동기 시대다. 그동안 이루어진 많은 연구와 조사 덕분에 이제는 미케네 문명 시기에 대해 상당한 정보가 축적된 상태다. 이 시기에 그리스는 근동의 다른 문명들과 유사한 왕궁 중심의 문명을 발달시켰다. 미케네 문명기의 그리스 왕국들은 흔히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정교한 중앙집권화를 이룬 사회였다. 왕은 제법 규모있는 상비군을 거느렸고, 그 시대 기준으로 상당히 잘 발달된 관료조직을 통해 국가를 통치했다. 그리고 이들 궁정 엘리트들의 생활수준은 꽤 높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물론 이 시기의 군사에 대한 기록은 단편적으로 발견된 궁정 기록이 대부분이라 여전히 논쟁의 여지가 많다. 그중에는 몇 대 안 되는 전차에 탄 영웅들이 일 대 일 대결을 벌이는게 전부였다고 보는 사람도 있고, 이러한 요지의 서술이 대중서에 여과없이 등장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후술하겠지만, 이건 일리아스를 오독한 경우다.

이 당시 왕궁 기록을 검토해보면, 강력한 왕국들은 적어도 수백대의 전차를 보유하고 있었음이 드러난다. 문제는 이 부대를 어떻게 운용했는가가 확실치 않다는 것이다. 일단 최근의 많은 학자들은 이 전차가 보병에게 돌진하거나 혹은 전차 대 전차의 대결 방식으로 싸우지는 않았을 것으로 보고 있다. 최근의 주장은 이들 전차가 일종의 이동 포대로 쓰였다는 것이다.

이 주장을 따르자면, 미케네 시대 그리스군은 다양하게 무장한 보병과 전차의 복합군이었으며, 전차는 주로 투창병이나 궁수를 태우고 적군의 측면이나 후방을 노리는 기동전술을 구사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일리아스는 미네케 전투의 실상을 반영하는 작품일까? 별로 그렇지는 않을 것 같다. 일리아스에 등장하는 전설적인 영웅들은 한 나라의 왕과 왕자들이지만, 본문을 자세히 뜯어보면 미케네 시대의 잘 발달된 국가를 다스리는 전사-왕이라기보다는 부족장에 더 가까운 이미지이다. 이들은 모두 선두에서 적군과 격투를 벌이는데, 딱히 휘하에 수행원 역할을 하는 신하나 부장들, 혹은 장교단 같은 존재를 찾아보기 어렵다. 당시 기준으로 상당한 수준의 상비군과 관료조직을 거느렸던 미케네 시대 왕들의 이미지와는 잘 맞지 않는다. 물론 전투 형태도 위에서 제시한 연구결과와는 다르다.

일반적으로 호메로스는 고졸기(Archaic period)에 살았던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물론 일리아스는 한 명의 시인이 만들어낸 것이 아니다. 호메로스는 구전 문화 시대의 사람이며, 구전은 의외로 정확하게, 상당히 온전한 형태의 내용을 전달해준다. 그리고 일리아스의 저자는 후기 청동기 시대의 문화에 대해 상당한 지식이 있었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후기 청동기 시대의 전투 매커니즘까지 구전을 통해 호메로스에게 전달되고, 시인이 자신이 보지도 못했던 전투 방식을 온전히 글로 옮기리라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 것이다. 따라서 일리아스가 고대 전투의 실상을 담고 있다면, 그것은 시인 자신이 살았던 고졸기의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고졸기의 전투와 일리아스

아직까지도 명확하게 판명되지 않은 이유들로 미케네 문명이 무너지고 난 뒤, 초기 철기 시대의 그리스 문명은 크게 쇠퇴하였다. 이러한 이른바 '암흑 시대'를 벗어나 회복기로 접어드는 시기가 고졸기이다. 아무튼, 미케네 문명이 무너진 뒤로 전쟁의 모습도 크게 변화하였다. 전차는 주력에서 밀려났고, 전투는 주로 보병전이 되었다. 미케네 시대에 주로 사용되던 거대하고 길쭉한 방패 (타워 실드)는 더 작고 둥근 방패로 바뀌었다.

이러한 부분은 일리아스에 의외로 세밀하게 반영되어있다. 일리아스의 영웅들은 여전히 전차를 타고 다니지만, 그 용도는 대부분 전사들을 전장으로 실어나르는 역할이거나, 부상자 후송용이다. 일리아스에서 전차전을 벌이는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다. 또한 무구는 미케네 시대의 거대한 방패와 고졸기의 둥근 방패가 혼용되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옛 구전 전승의 영향과 호메로스 시대의 실제 전투가 혼재된 것이 아닌가 한다.

병사 수는 당연히 과장이라고 보아야 한다. 일리아스에 따르면 적어도 5만 명 이상의 대군이 결집하여 트로이를 쳤다고 나온다. 고졸기의 도시들이 동원하기에는 어려운 숫자다.

그렇다면 실제 전투의 매커니즘은 어떠할까?

사실 많은 사람들이 일리아스에서 떠올리는 이미지는 영웅들의 일 대 일 대결이다. 그런데, 일리아스를 읽어보면, 워낙 임팩트가 커서 많아보이지만, 공식적인 일 대 일 대결, 즉 전군이 싸움을 멈추고 앉아서 싸움을 구경하거나 응원하고, 영웅들이 정식으로 나와서 격식을 갖춰 대결을 벌이는 경우는 그다지 많지 않다는 점을 깨닫게 된다. 파리스와 메넬라오스의 대결, 헥토르와 아이아스의 대결, 헥토르와 아킬레우스의 대결 정도다. 그 외에 영웅들이 서로 싸우는 장면은 어디까지나 혼전 중에 적장과 마주쳐서 싸움을 벌이는 것이지 정식으로 일 대 일 대결을 벌이고 그 결과에 따라 승패가 기계적으로 결정되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후자는 이 시기 전투 방식의 정확한 반영인가? 이 질문에 답하기 전에 현대 학자들이 재구성한 고졸기 전투의 모습을 한 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이 시기의 전투에 대해 상세히 연구한 학자 Hans Van Wees는 고졸기 전투에 대해 한 가지 흥미로운 모델을 제시한다. 이 모델은 파푸아 뉴기니의 부족사회가 전투를 치르는 방식에 대한 연구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사실 화약 무기 이전 전투에 대해서 경험할 길이 없는 우리에게, 현대까지 남아있던 부족사회가 전투를 벌이는 방식은 상당한 단서를 제공해준다.

뉴기니 전사들은 창과 활로 무장하고 전투를 벌인다. 이들은 느슨한 대열을 이루는데(적어도 5미터 이상의 간격을 유지), 발사무기에 맞는걸 피하기 위해 계속해서 움직인다. 양편의 전사들은 무기를 휘두르며 모욕적인 말을 외치면서 앞으로 달려갔다 물러났다를 반복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전열이 점차 접근한다. 이어서 교전이 벌어지는데, 역시 돌격했다 물러났다를 반복한다. 양쪽이 돌격을 반복함에 따라 전선은 끊임없이 앞뒤로 움직인다. 충돌은 길어야 15분을 넘기지 않고, 한번에 전 병력의 3분의 1 정도만 실제로 싸움에 참여한다.

Van Wees는 이러한 전투 방식이 일리아스의 전투 방식과 매우 흡사하다고 보고, 실제 고졸기 전투의 모습도 이와 유사하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고졸기의 전장을 한번 상상해보자. 고전기 팔랑크스와 비교하면 상당히 느슨하게 펼쳐진 대열이 서로 접근한다. 충돌이 벌어질 모습이지만, 말처럼 쉽지는 않다.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군대가 매우 쉽게 와~ 소리를 지르며 달려가서 쾅 부딪치고 마구 찌르고 베고 하지만, 그건 영화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백병전을 두려워하며, 날붙이로 상대를 살상하는 것에 대한 심리적 저항감은 생각보다 매우 크다. 더욱이 갑옷으로 중무장하고 날이 선 무기를 세운 전사들이 앞에 버티고 서있는데 그 방향으로 곧장 달려가는 것은 생각보다 매우 어려운 일이다.

이런 상황에서 꼭 필요한 존재가 훈련이든, 경험이든, 아니면 우월한 무술이든 그 무언가를 통해 이런 심리적 저항감을 일반 병사보다 더 쉽게 극복할 수 있는 돌격장들이다. 이런 사람들이 먼저 길을 뚫어줘야 다른 병사들도 용기를 얻어 뒤따를 수 있게 마련이다. 이들이 바로 호메로스가 노래한 '영웅들'의 실체였을 것이다. 이런 고수들이 다가가면 아마 평범한 적병들이라면 움츠러들고 물러설 가능성이 높다. 그러면 상대쪽에서도 어느정도 실력과 용기를 갖춘 고수가 맞상대를 하러 나와야 한다.

그렇다면 이제 혼전 와중에, 각 전열의 선두에 선 두 영웅이 마주보고 있는 상황이 전개가 된다. 둘 다 상대가 만만치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싸우면 둘다 부상을 입을 가능성도 높다. 이들도 가능하면 피를 안 보고 끝내고 싶다. 그래서 맹수의 싸움처럼 기싸움이 먼저 이어진다. 일리아스에 나온것처럼 욕설이나 조롱이 오가고, 창을 던지기도 한다. 이걸로 상대방의 기를 꺾어서 제압하지 못한다면 이제 본격적인 격투가 벌어지는 것이다.

그러면 그 뒤에 있는 다른 전사들은 구경만 하고 있는가? 아니다. 두 영웅이 맞붙으면 그 자체만으로도 다른 전사들이 심리적 저항감을 극복하게 하는 효과가 있다. 거기다 군중심리까지 더해져서, 주변에 있던 다른 전사들이 뛰어든다. 그렇게 해서 대결을 벌이는 두 영웅을 중심으로 작은 무리의 전사들이 뒤엉켜 싸우는 전투가 벌어진다. 뉴기니 전사들처럼, 이 전투도 오래가지 않는다. 아무리 힘이 센 장사라도 무거운 갑옷을 입고 오래 격투를 벌일수는 없다. 얼마 뒤에 두 무리의 체력이 소진되면서 대열이 분리된다. 이들은 잠시 물러나서 호흡을 가다듬고 다시 돌진하든지 할 것이다. 일리아스에서는 신화적인 영웅이 끝없이 많은 적장을 쓰러뜨리지만 그것은 문학적인 과장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실제 전투는 훨씬 더 산발적으로 진행되었을 것이다.

그러면 혼전 중에 1대 1 대결이 벌어지는 영화 속 묘사도 완전히 과장이나 창작은 아닌 셈이다

이러한 간헐적인 형태의 전투가 전 전선에 걸쳐서 벌어지는게 고졸기 전투의 일반적인 모습이라고 Van Wees는 주장한다. 사실 상당히 현실적으로 설득력 있는 모델이다. 그리고 일리아스에서 전반적으로 묘사하는 큰 그림과 일치한다.

물론 Gregory F. Viggiano가 Van Wees와 함께 쓴 글에서 지적했듯이 고졸기 전투가 뉴기니 모델과 완전히 같지는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뉴기니 전사들과 달리 고졸기 그리스 보병은 대체로 중무장을 했고, 방패를 들었다. 또한 뉴기니 전사들보다는 발사무기의 비중이 낮았기 때문에, 그쪽보다는 보다 느리고 덜 유동적인 전투가 벌어졌을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군이 중무장을 하고도 유연하게 움직였다는 주장도 있기 때문에 단정할 수는 없다)

또한 이러한 Van Wees의 주장에 반대하는 쪽은 Kurt A. Raaflaub의 주장을 들 수 있다. 그는 일리아스 내의 전투 묘사가 일반 전투에 대한 사실적인 묘사와 예술적 묘사가 공존한다고 주장하는데, 이 중 사실적인 묘사는 오히려 후대 팔랑크스 전술을 닮았다고 주장한다. 바로 이 대목이다.


그리하여 한 곳으로 달려와 서로 마주치자
그들은 청동으로 무장한 전사들의 용기와
쇠가죽과 창을 서로 맞부딪쳤다. 장식 붙인
방패들이 서로 맞닿았고 큰 소음이 일었다.
거기서 신음소리와 환성이 죽이는 자들과 죽는 자들로부터
동시에 울렸고 대지에는 피가 내를 이루었다. (4:446-451)


이 묘사는 분명히 영웅들간의 대결이 아닌, 두 부대 간의 집단전을 보여주고 있다. 이 점을 들어서 Raaflaub는 고졸기 전투는 Van Wees가 주장하는,  "유동적 전투 모델"이 아니라 오히려 "프로토-팔랑크스"라고 주장한다.



결론

고대사 전공이 아닌 필자가 여기서 어떤 이론이 더 설득력 있는지를 판단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분명 일리아스 내에는 다소간의 과장된 신화적 묘사와 함께 상당히 현실적인 "유동적 전투 모델"과 집단전 형태가 공존한다. 특히 "유동적 전투 모델"은 최근에 연구된 전투 심리학, 그리고 그리스-로마 전투에 대한 최신 연구성과와 상당부분 일치한다.

사실 어느 것 하나만이 이 시대 전투의 실상이라고 결론 내릴수는 없을 것이다. 팔랑크스 전술은 상당히 오랜 시기에 걸쳐서 점진적으로 완성되어갔다. 어쩌면, Jeremiah McCall의 지적대로 호메로스의 시대는 그 과도기였을지도 모른다. 이후 팔랑크스 전술로 나타나게 될 집단전의 씨앗이 보이지만, 그것은 여전히 초기의 형태였고, 잘 정비된 대형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처음에는 집단전 대형으로 출발했더라도 전투가 벌어지면서 혼전 양상으로 들어가고, "유동적 전투 모델"이 설명하는 것과 흡사한 전투 양상이 나타났을 가능성도 높다. McCall의 설명대로 이러한 전투에서는 전열에 빈 공간들이 생기기도 쉽고, 뛰어난 전사를 중심으로 한 소집단이 각기 전투를 벌이다 물러나는 형태의 전투가 벌어지기도 더 쉬웠을 것이다. 그렇다면, 결국 이 가설들은 반드시 서로 대치되는 것만은 아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질문에 답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 일리아스는 고대 전투의 실상을 얼마나 반영하는가? 분명히 과장된 요소와 예술적 창작이 있지만, 고졸기 전투(미케네 시대가 아니라)의 실제 매커니즘을 상당부분 반영한다는 것이 현재 학자들의 의견이다.



참고문헌

Josiah Ober, The Rise and Fall of Classical Greece (Princeton, 2015).
Donald Kagan and Gregory F. Viggiano (eds.), Men of Bronze: Hoplite Warfare in Ancient Greece (Princeton, 2013).
Jeremiah McCall, Swords and Cinema: Ancient Battles in Modern Movies (Barnsley, 2014).
Hans Van Wees, Greek Warfare: Myths and Realities (London, 2004).
John E. Lendon, Soldiers and Ghosts: A History of Battle in Classical Antiquity (New Haven,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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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노우 씨의 거주지 : 로마 팔랑크스는 과연 존재했는가? 2016-11-14 19:52:17 #

    ... 6세기까지도 그리스 전투는 호메로스의 서사시에 묘사된 것과 흡사한 유동적인 모델에 가까웠다고 주장하였다.(이 모델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http://charger07.egloos.com/4105478) 또한 이때까지도 군대는 씨족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었기 때문에, 다양하게 무장한 전사들(중무장 전사와 경무장 전사, 투사무기로 무 ... more

덧글

  • 연성재거사 2016/01/23 18:53 #

    알렉산드로스가 『일리아스』를 전술의 교본으로 여기고 항상 곁에 두고 읽었다고 하는데, 개인적으로는 결론에서 말씀하신 "유동적 전투 모델"과 전투심리학의 측면에서 읽었던 것 아닌가 싶습니다.(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추측입니다만.......;;;)
  • Mr 스노우 2016/01/23 19:28 #

    그건 좀 무리한 추측일수도 있습니다. 확언할수는 없지만, 알렉산드로스 시대의 전투 매커니즘은 호메로스 시대와는 또 다르니까요.
  • 2016/01/23 19:42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Mr 스노우 2016/01/23 21:41 #

    그것도 알렉산드로스만의 특징인가, 유독 알렉산드로스가 일리아스를 탐독해서 그런 전술적 결과를 낳았는가는 의문의 여지가 있습니다. 골즈워디 선생도 지적한 바지만, 선두에 서서 돌진하는 것은 헬레니즘 시기 군주에게 당연히 요구되는 덕목이었고, 알렉산드로스뿐 아니라 에파미논다스와 같은 그 이전 그리스의 지휘관들, 알렉산드로스의 부왕 필리포스도 그러했고, 후계자들도 다 똑같이 행동했습니다. 군사령관이 돌격장이 아니라 지휘관의 역할을 하게 되는건 로마군부터입니다.
  • 로자노프 2016/01/23 20:26 #

    미케네 시대의 전차 운용법이란 걸 보니 뭐랄까... 마치 궁기병들을 운용하는 것과 조금은 비슷해보이는군요,
  • Mr 스노우 2016/01/23 21:34 #

    그 역할을 해줄 부대가 필요한데, 미케네군은 궁기병을 운용하지 않았으니 대신 전차가 그 역할을 한거죠.
  • 앨런비 2016/01/23 21:27 #

    일단 일리아스가 구전문학이라는 것이 가장 문제인디, 유고에서 엄청난 분량을 구전으로 전하는 것을 보고 일리아스가 구전으로 못할 수준은 아니라고 반증했지만, 구전은 역시 첨삭의 가능성이 있고, 실제 그 흔적이 드러난다는게 참-_-;; 그나마 할 수 있는 추정은 나름 멀쩡한 군대였을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는 정도.
  • Mr 스노우 2016/01/23 21:36 #

    어차피 그 시대는 죄다 구전문학. 나중에 복음서도 전부 구전문학의 카테고리에 들어간다고 할수 있음. 다만 호메로스가 한 명이든 여러 명이든, 당시 수도없이 벌어졌던 아르카이크 시대 전투 양상을 모를 사람들은 아니고, 그 묘사가 실제 부족시대 전투 양상과 상당히 들어맞는다는것. 다만 본문에 이야기했듯이 이건 아르카이크 시대 관련해서지 미케네 문명의 전투 쪽으로는 그다지 알아낼게 없다는게 중론.
  • 앨런비 2016/01/23 21:46 #

    ㅇㅇ 관련해선 본문에 잘 나와잇고, 호메로스든 그 똘마니(...)든 그 전의 구전자든 일단 미케네 문명을 '당시' 기준에서 상당히 잘 알던 축에 속한 사람이 일리아스를 기록한듯. 허나 말한대로 구전의 약점이 언제나 문제고. 대신 어느정도 조사로 흐릿한 모델이 그려질 수 있다는 정도 -ㅅ-
  • 시원한인생 2016/01/23 23:38 #

    글을 읽어보니 다시금 그 시대의 전투 양상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Mr 스노우 2016/01/24 00:43 #

    감사합니다 ^^
  • 슈타인호프 2016/01/24 01:19 #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Mr 스노우 2016/01/24 01:28 #

    감사합니다 ^^
  • BigTrain 2016/01/24 01:40 #

    미케네 시대의 전투방식이 상당히 세련돼 보이네요. 이집트도 그려진 걸 보면 전차를 비슷한 용도로 써먹었던 것 같고..
  • Mr 스노우 2016/01/24 01:48 #

    물론 그럴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지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기본적으로 미케네 문명기의 왕국들이 히타이트나 이집트 같은 동시대 지중해 세계 왕조들과 유사점이 많으니까요. 부대 운용법도 지형과 환경에 따른 차이는 있겠지만 근본적으로는 비슷했을듯 합니다.
  • 빼뽀네 2016/01/25 17:27 #

    그 유명한 영웅들의 '돌격장'적인 모습이 머릿속에 떠오르며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일리아스'는 어렸을 때부터 재밌게 읽었던 책인데 이렇게 재밌는 내용을 더 알게되어 좋습니다. ^^
  • Mr 스노우 2016/01/25 19:28 #

    감사합니다 ^^ 전근대 전쟁은 동양이나 서양이나 이런 용사들의 역할이 분명히 컸다고 생각이 됩니다. 전체 군대의 전투수행이 상당히 정교해지는 것과는 별개로, 소부대의 전술적 차원에서는 말이지요.
  • 2016/01/26 17:53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6/01/29 00:13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유수 2016/06/21 01:00 #

    좋은글 잘 봤습니다. 유동적 전투모델이 상당히 흥미롭기도 하고 집단전과 유동적 전투모델이 시대와 전장상황에 따라 변화와 공존한게 아닌가도 싶습니다. 이 글을 퍼가도 될런지요?
  • Mr 스노우 2016/06/21 01:09 #

    네 괜찮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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