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교과서 수준으로 역사를 공부할때 흔히 접하는 공식이 있다. 중앙집권(혹은 왕권강화)=부국강병, 영토확장이다. 한국 고대사에 대해서 시험 보기 위해 열심히 암기한 상황도 항상 뭔가 율령제 반포, 관료제 정비 등등으로 중앙집권화, 그 다음은 해당국가의 팽창과 전성기가 나오게 마련이다. 물론 세계사를 보든 시각도 크게 다르지 않다.
뭐 틀린 것은 아니다. 한국 고대의 왕국들은 초기에 생존을 위해 더 많은 물자와 인력의 확보가 필요했고, 이를 위해 필사적으로 체제정비에 매달렸으니까. 하지만 문제는 그것이 뜻하는 사회적 맥락과 의미를 생략하고, 그저 수학공식 외우듯이 그것을 어디에나 적용할 수 있는 보편적인 진리인 것처럼 외우는 것이다. 역사를 볼때 "어떻게"와 "왜"를 배제한 기계적인 외우기는 부작용을 낳는다.
실제 역사는 이러한 단순한 도식보다 훨씬 더 복잡하다. 가령, '중앙집권' 혹은 '왕권강화'라는 지극히 명료한 네 글자가 내포한 의미는 무엇인가? 국왕이 거느리는 관료집단이 체계화되고 능률적인 행정을 할 수 있게 되었단 뜻인가? 왕과 수도에 거주하는 귀족이 지방 영주들보다 더 큰 부와 강한 군사력을 거느리게 되었다는 뜻인가? 아니면 왕이 수도에 같이 거주하는 귀족들을 약화시키고 직접 통치를 전담하게 되었단 뜻인가? 아니면 왕이 뭐든 멋대로 할 수 있게 되고 그걸 견제할 다른 힘이 사라지게 되었다는 뜻인가?
그렇다면, 일단 흔히 떠올리는대로 왕과 왕으로 대표되는 수도의 군사력과 행정력이 잘 정비되고 막강해져서 국가 전체에 대한 통제력이 강해지는 것으로 중앙집권을 정리한다고 치자. 그것이 언제나 역사에 있어서 긍정적이 의미를 갖는다고 보아야 할까?
가령, 고대 이집트는 정말 초기부터 상당히 강력한 왕조국가로 시작했다. 흔히 생각하는 중앙집권적 왕조의 좋은 예라고 해도 될 것이다. 예전에는 고대 이집트사를 해석할때 고왕국,중왕국, 신왕국 시대를 중앙집권이 잘 유지되는 정치적 안정의 시기, 대외팽창과 문화적 발전이 꽃피운 시기로 해석하고, 그 사이사이의 중간기를 중앙집권이 붕괴된 혼란의 시기로 해석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현대 이집트사 연구자들의 해석은 다르다. 일례로 제1 중간기는 중앙정부의 권위가 완전히 무너지고 각 지역 총독들이 치열하게 권력싸움을 벌인 시기이다. 그런만큼 분명 위기의 시대였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현대 연구에 따르면, 이 시기는 단순한 혼란기만은 아니었다.
고왕국 시절에는 국가의 모든 부가 멤피스 지역에 집중되어 있었고, 그곳의 중앙 정부를 통해서 지방으로 그 부가 재분배되었다. 이런 구조에서는 중앙과 지방 사이에 넘을 수 없는 벽이 존재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제1 중간기에는 각 지역에 자리를 잡은 총독들이 부의 중심이 되었다. 즉, 중심지가 하나에서 여럿으로 나뉜 것이다. 고고학적 증거들은 시기에 지방이 더욱더 부유해지고, 문화적으로도 크게 발전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예는 중앙집권=국가발전 도식보다 훨씬 더 복잡한 양상을 보여준다.
단순한 공식의 문제점은 고대 로마사 해석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흔히 들어볼 수 있는 이야기가 '광대한 제국을 통치하는 데에는 중앙집권적인 국가가 유리하다. 따라서 공화정에서 제정으로의 이행은 필연이었다'라는 말이다. 그런데 정말 그러한가? 상식인것처럼 말하는 이러한 단언에는 한 가지 문제점이 있다. 로마 제국은, 적어도 후기 이전에는,중앙집권화된 행정국가와는 거리가 멀었다는 사실이다.
어쩌면 여기에는 광대한 제국을 천년이나 유지했다면 틀림없이 중앙집권화된 국가였을 것이라는 선입견이 한몫 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고대 로마 제국은 공화정 시기나 제정 시기나 근본적으로 자치 도시들의 연합에 더 가까웠다. 물론 아우구스투스 시대 이래로 중앙 행정부가 (매우)점진적으로 발전하긴 하지만, 전통시대 중화 제국에서 찾아볼 수 있는, 중앙과 지방을 총괄하는 행정 관료조직과는 거리가 있었다.
제국의 지방행정은 기본적으로 토착 귀족들과 그들의 회의체(curia)가 담당했다. 로마에서 파견된 총독과 장관은 방어, 징세, 로마법 제도의 유지를 책임졌을 뿐, 일상적인 행정 업무는 근본적으로 자치였다. 결국 공화정과 제정 초중반 시기에 가장 근본적으로 다른 것은 총독 파견의 주체가 원로원인지, 아니면 황제와 그 후계자들인지 정도였다고 해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니다.
중앙집권화=국가발전 도식에 익숙한 분들은 로마제국의 이런 면모에 어리둥절해하기도 한다. 간혹 이런 점을 들어 고대에는 동아시아 전통왕조가 더 진보한 국가였다고 하는 분들도 있지만, 이런 얼핏 보기에 엉성한 조직을 가지고도 로마는 장구한 세월을 잘 버텼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결론은? 특정한 개념을 외우는게 중요한게 아니라 그것이 어떤 상황에서 왜 중요한지를 생각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즉, 무작정 중앙집권이 중요하다고 외우는 것이 아니라, 어떤 시대 어떤 상황, 어떤 사회적 맥락에서 중앙정부의 힘이 커지는 것이 중요하게 작용을 했는지에 대해 따져봐야 한다는 것이다.





덧글
르네상스도 그 콩가루 도시국가들이 해낸 거고...
일견 이런 해석이 많은 건 단순한 도식을 원하는 사람이 많아서 겠죠.
무엇이든 제대로 이해하긴 위해서 선입견을 빼고 깊게 살펴야 하는 것 같네요
추신: 죄송하지만 저 비로그인 아이피 추적 좀 해주실 수 있으신가요?
애초에 왕, 귀족에겐 백성은 수탈의 대상이니
봉건제 = 중앙집권도 못하는 행정력 찌질이들의 병신 정치체제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상상 이상으로 많더라고요
통치체제라는건 항상 그 시대 사람들이 나름 머리를 굴려서 최선의 방책을 찾아낸거라는 사실을 좀 알았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