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 예수의 재발견 (3) homo religiosus

존 도미닉 크로산

앞선 글에서 '예수 세미나'에 대해 서술하면서 언급하긴 하였으나, 크로산(John Dominic Crossan, 1934~)은 역사적 예수 연구에 큰 족적을 남겼기 때문에, 따로이 다룰 필요가 있다. 아일랜드 출신 가톨릭으로서, 크로산은 16세에  성모 마리아의 종 수도회(Ordo Servorum Beatae Mariae Virginis)에 입회하였고, 이후 미국으로 옮겨가 신학교를 졸업하고 사제 서품을 받았다.
존 도미닉 크로산 (1934~)

그는 훗날 사실 본인은 예수 연구자가 될 생각은 없었는데, 교회의 요구 덕분에 하게 되었다고 술회하였다. 하지만 학문 연구로 방향을 잡은 뒤, 그는 성서 연구에 치열하게 몰두하였다. 그는 25세에 박사학위를 받았고 빠르게 신약학자로서의 명성을 얻었다.

그 뒤의 이야기는 게자 버메스와 상당히 비슷하다. 교회의 공식적인 가르침과 학자로서의 연구결과가 충돌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는 훗날 이렇게 이야기했다. "1960년대 중반에 사제 생활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나에게 있어서 축복이었다. 로마 가톨릭 교회가 현대화를 위한 대대적인 개혁을 추진하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전히 교회 내 보수파의 세력은 막강했고, 개혁에 반대하는 힘도 만만치 않았다. 크로산은 결국 1969년에 보수파 사제들과 갈등 끝에 사제직을 떠났다(단 그리스도교를 떠난 것은 아니다). 그리고 결혼하고, 학자로서의 인생을 살기 시작한다.

그의 대표작, The Historical Jesus: The Life of a Mediterranean Jewish Peasant (1991)은 긍정적인 의미에서든 부정적인 의미에서는 기념비적 저작이었다. 그가 그려낸 예수상은 기본적으로 예수 세미나와 비슷하다. 예수는 부유층이 지배하는 농경 사회에 살던 문맹의 평민이었다. 그는 종말론적 예언자로서 임박한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한게 아니라, 이미 도래한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했다. 그 나라는 중재자나 성전 같은 기관 없이, 모두가 하느님과 직접 소통하는 세상이었다.(가톨릭 출신으로서는 특이하게도 이점은 참 개신교적이다) 즉, 예수는 매우 급진적인 평등주의자였다.

동시에 크로산이 제시한 예수 상은, 지혜의 교사, 현자로서의 예수 상이다. 크로산은 다른 제3의 탐구 연구자들이 제시한 철저히 유다교적인 예수 이미지를 거부하였다. 그가 보기에 갈릴래아는 독실한 유다교 지역이 아니라, 매우 헬레니즘화된 지역이었다. 예수는 유다교 예언자보다는 오히려 헬레니즘 세계의 견유학파 같은 존재였다.

이렇게 크로산은 '유다인 예수' 보다는 '헬레니즘적 예수' 상을 제시하였다. 물론 그의 연구에는 많은 비판점이 있었다.(크로산의 연구가 국내에 소개될때, 국내의 근본주의 개신교계는 크로산을 거의 악마의 사도 정도 취급을 하였지만, 솔직히 거기는 말도 안되는 비판이 많았으니 넘어가도록 하자)  일단 예수에게서 유다인적 면모를 거세해버린 것은, 버메스와 샌더스 이래로 많은 연구자들이 밝혀낸 연구결과와 대치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급진적인 평등주의자라던가, 사회혁명가로서의 예수 상은 호슬리와 유사하게 역사학적 신빙성이 의심스럽다는 비판을 받았다. 그리고 '헬레니즘화된 갈릴래아'의 이미지도 현재의 정설과는 상당히 다르다.

그러나 역사적 예수 연구에 있어서 크로산의 존재는 우뚝하다. Bond의 지적대로, 그의 연구에서 크로산은 무시하기에는 너무 중요한 질문들을 제기하였다. 특히 방법론과 사료의 문제에 있어서 수많은 생산적인 논쟁이 크로산 이후로 쏟아져나왔다. 좋건 싫건, 찬성하건 반박하건, 크로산 이후의 역사적 예수 연구가들은 크로산을 자신의 연구에서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크로산의 연구는 여전히 이 주제를 연구하는 이라면 누구든 넘어야 할 큰 산이다.





존 P. 메이어

크로산 부분에서 살펴보았듯이, 역사적 예수 연구 자체가 본래 자유주의 프로테스탄트 쪽에서 시작한 것이기도 하고, 성서비평 이론을 받아들이는데 가톨릭계에서는 반발이 상당히 있었다. 그러나 1960년대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기점으로 상황은 상당히 크게 바뀌었다.(물론 크로산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진통도 있었고 개혁과 보수의 대립은 계속되었지만)

공의회는 여러모로 혁명적이었다. 첫째로, 성서에 대한 비평적 연구가 본격적으로 긍정되었다. 둘째로, 교회 내의 반유다주의가 공식적으로 공식되었고, 유다인들은 '예수를 죽인 자들'이라는 부당한 오명을 벗었다. 이 두 변화는 가톨릭 내의 역사적 예수 연구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일단 공식적인 결정이 확정되자, 상당히 빠르고 유연하게 현대 비평학의 성과를 받아들이기 시작했던 것이다. 기존의 역사적 예수 연구가 주로 자유주의 개신교 신학계의 주도였다면, 이때를 기점으로 가톨릭 신학계에서도 역사적 예수와 관련된 탁월한 연구들을 내놓기 시작한다.

그 중 반드시 언급해야 할 거장이 바로 존 P. 메이어(John P. Meier, 1942~)다. 몬시뇰 존 P. 메이어는 미국의 가톨릭 사제로, 노트르담 대학의 신학교수이다. 역사적 예수를 연구하면서, 메이어는 가능한한 모든 자료를 최대한도로 세심하게 검증하여, 가톨릭이든 프로테스탄트든, 유다인이든 불가지론자든 동일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결과물을 내놓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웠다.

존 P. 메이어 몬시뇰 (1942~)

그 결과물로 나온 것이 총 다섯권이라는 분량을 자랑하는 방대한 연구, Jesus: A Marginal Jew (1991-2016)이다. 1991년에 첫 권이 나오고, 무려 올해인 2016년에 제 5권이 출간되었으니, 장장 26년에 걸친 대형 프로젝트였던 셈이다. 역사적 예수에 대한 현대 연구 중 가장 긴 분량의 연구다.

그 엄청난 디테일답게, 메이어의 연구에 대한 평가로 가장 많이 언급되는 단어들이, '신중하고(judicious, catious)', '세심하다(meticulous)' 등이다. Bond의 언급대로, 그의 연구는 예수의 일생에 대한 연대기적 복원에 있어서 지금까지 출간된 연구 중 아마도 가장 철저한 연구이며, 예수에 대한 여러 전승에 대한 진실성에 대한 가장 디테일한 검증을 포함하고 있다. 또한 그의 연구는 신앙의 그리스도와 역사의 예수는 다르다는 전제를 확고히 깔고 있으며 가톨릭의 전통적인 교리에서 중요한 부분이라 하더라도 역사학적 사실과 다르다 싶으면 주저없이 언급하고 있다.

그러한 연구를 통해 그가 복원한 예수는, 샌더스의 모델과 유사점이 많다. 메이어의 예수는 근본적으로 하느님 나라의 도래와 이스라엘의 회복을 선포하는 종말론적 예언자에 가깝다. 따라서 그는 예수 세미나와 크로산이 주장한 사회혁명가로서의 예수 모델을 부정한다. 실제로 그는 '예수 세미나'의 연구결과에 상당히 비판적이다. 다만 그의 모델은 샌더스와도 차이점을 보이는데, 메이어는 예수가 단순히 율법을 준수할 뿐 아니라, 자신이 율법을 일부 수정할 권위가 있다고 믿었다고 보았다. 또한 방법론적인 면에서 근본적으로 1950년대 The New Quest와 비슷한데, 기본적으로 여러 전승들을 검증하여 진실성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가려낸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물론 그의 검증 방법론은 상당히 정교하고 세밀하지만, 앞서 말했듯 근본적으로 제3의 탐구 이전의 The New Quest때와 동일한 비판점을 피할 수는 없다. 과연 이러한 역사비평적 방법론을 통해서 신뢰할 만한 사료를 구분해낼 수 있느냐에 대한 물음이 제기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메이어의 연구는 신중하면서도 비판적인 탐구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으며, 제3의 탐구가 배출한 또 하나의 탁월한 성과라고 할 만 하며, 그의 저작들은 역사적 예수에 대한 최근 연구 성과를 알기 위해서는 반드시 읽어야 할 저작이다.(분량때문에 결코 만만치 않겠지만)




N. T. 라이트

니콜라스 토머스 라이트(Nichlas Thomas Wright, 1948~)는 은퇴한 영국 성공회 주교로, 현재 영국을 대표하는 신약학자 중 한 명이다. 국내에도 비교적 잘 알려져 있으며, 근본주의 개신교쪽에서 간혹 그의 책은 자유주의(...-_-)라 보면 안된다는 소리를 하지만 사실 그는 상당히 보수적인 복음주의 성향의 학자다. 그의 많은 저작 중에서 특히 역사적 예수에 대한 그의 주장은 jesus and the Victory of God (1996)에 가장 잘 들어있다.

N. T. 라이트 전 더럼 주교 (1948~)

다른 많은 제3의 탐구 연구자들과 마찬가지로, 라이트도 예수를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한 유다인 예언자로 파악하였다. 다만 종말론적 예언자로서의 특징에서 독특성을 갖는다. 우선, 그는 1세기 유다인들이 바빌론 유배 이후 여전히 스스로를 유배 상태에 처해진 것으로 보고 있다고 파악하였다. 그리고 예수가 주장한 '이스라엘의 회복'은 바로 이 유배 상태의 끝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라이트에 따르면, 예수는 스스로를 '이스라엘의 대표자'로서 메시아로 인식하였고, 동시에 '이스라엘의 하느님'을 대표한다고 보았다.

라이트가 주장한 예수는 '매우 유다인'스러우면서도, 1세기 유다교의 몇몇 사상들을 거부한 예수였다. 따라서 그는 샌더스의 모델에 많은 부분 동의하면서도, 예수가 동시대 바리사이와 거칠게 충돌하지 않았다는 주장은 반대한다. 또한 예수의 종말론에 대한 인식도 독특한데, 그는 예수의 종말론이 곧 현 세상과 질서가 끝나고, 새로운 세상과 질서가 열린다는 슈바이처 계열의 종말론이 아니라, 로마군의 예루살렘 성전 파괴와 같은 좁은 의미에서의 민족적 재난을 예견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사실 위의 내용에서 볼 수 있듯이, 라이트의 예수는 신학과 역사학 사이의 경계에 다소 애매하게 걸쳐있다. 무엇보다도 비판자들은 라이트의 '맥시멀리스트'적 태도를 지적한다. 예수의 예언 부분이라든지, 다른 역사적 예수 연구가들이 거의 다루지 않는 부활 문제에 집중한다든지 하는 점때문에,, 종종 그는 '역사학적 의미'에서의 역사적 예수 연구자가 아니라, 그리스도론(Christology)을 탐구하는 신학자라는 비판을 받는다. 여기에 더해서 1세기 유다인들이 스스로를 영구적 유배 상태에 있다고 보았다는 주장이나, 그가 그려낸 바리사이 상도 종종 비판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그가 설명하는 예수의 종말론 부분은 대단히 흥미로운 면이 있으며, 그의 방법론이 역사적 예수 연구의 발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 부분도 많다. 1세기 유다교와 많은 공통점을 가지면서도, 동시에 이후 초기 교회와도 공통점을 갖는 예수 상을 설득력 있게 그려낸 것은 분명한 그의 업적이다.




제임스 D. G. 던

마지막으로 언급해야 할 학자는 바로 제임스 던(James D. G. Dunn, 1939~)이다. 제임스 던은 영국의 신약학자로 역사적 예수 뿐 아니라 이른바 '바울로에 대한 새 관점' 학파로도 유명하다. 그는 2003년 교수직에서 은퇴한 해부터 그의 일생일대의 연구 프로젝트라고 할 수 있는 Christianity in Making 3부작에 몰두하였는데 이 프로젝트는 올해(2016년) 세번째 권이 출간되면서 마무리되었다. 이 3부작의 첫권인 Jesus Remembered (2003, 국내 출판명 <예수와 기독교의 기원>)이 바로 역사적 예수에 대해 집중적으로 다루는 파트로, 그의 평생에 걸친 연구 및 이제까지 역사적 예수에 대한 연구성과를 집대성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제임스 D. G 던 (1939~)

던의 연구에서 가장 독특한 부분은 '구전 전승'에 대한 강조다. 사실 복음서는 예수의 1세대 제자들 뒷세대에 의해 쓰여졌다. 던은 이때 복음서로 문서화된 전승은 바로 예수가 그의 제자들에게 남겼던 기억이 구전으로 전해진 형태라고 주장한다. 던의 연구에 다르면, 구전 전승은 그것이 전해지면서 핵심은 놀라울만큼 잘 보존하지만, 디테일은 상당히 유연하게 변형시키는 경향이 있다. 예수의 본래 행적과 메시지 역시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라고 그는 보고 있다. 이를 종합하여, 던은 그의 책 제목이 시사하듯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어디까지나 '기억된 예수'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 '기억된 예수'는 실제 역사적 예수에 대한 가장 핵심적인 기억들을 잘 보존하고 있다.

이러한 복원작업을 통해 얻어낸 예수 이미지는, 다른 대다수 제3의 탐구 연구자들의 결과와 크게 다르지는 않다. 예수는 세례자 요한의 쇄신운동의 일부(요한의 제자)였으며, 임박한 하느님의 나라의 도래와 이스라엘의 회복을 선포한 유다교 예언자였다. 그는 사람들에게 이미 하느님 나라의 일원이 된 것처럼 살라고 가르쳤다. 그것은 곧 회개와 용서, 그리고 '아버지'인 하느님께 대한 감사의 삶이었다. 예수가 생각한 하느님의 나라, 정확히 표현하자면 하느님의 '통치'는 모두를 포용하는 것이었고, 이는 그가 실현한 '식탁 교제'를 통해 발현되었다. 또한 던은 예수가 '사회혁명가'라는 식의 주장에는 동의하지 않지만, 동시에 '예수와 가난한 이들'에 대한 분석에서 볼 수 있듯이 예수 당시의 정치적, 사회적 요소가 예수 메시지의 중요한 부분을 구성하고 있음은 부정하지 않는다. 예수 운동은 특히 예루살렘 성전의 소요 이후 사제집단이 사두가이파에게 위협적인 것으로 인식되었고, 그의 죽음의 원인이 되었다. 그러나 던은 '초기 교회가 로마 당국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으려는 정치적 이유로 예수 죽음의 책임을 유다인에게 돌렸다'라고 서술하면서, 예수 죽음의 가장 큰 책임은 로마에 있음을 분명히 한다.

던의 연구는 현재의 역사적 예수 연구에 대한 가장 탁월한 정리 중 하나이지만, 역시 비판을 받는 부분은 있다. 무엇보다도 그가 세운 '구전 전승'이론이 독특한 것이니만큼 비판의 여지도 있다. 예수 전승에 구전 요소가 있다는 것은 모두가 동의하는 바이지만, 그것이 얼마나 고정적이고, 어느 정도가 변형된 것인지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던은 중동 사회에 대한 케네스 베일리의 연구에 상당부분 기반을 두고 이론을 세웠는데, 베일리의 연구 자체가 일부 비판받는 부분이 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더욱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적 예수 재구성에 있어서 던이 상당히 신뢰성이 높은 연구결과를 제시했다는 점에는 거의 이견이 없다. 던 자신의 연구 외에도, 기존의 거의 모든 연구를 분석하면서 그 장단점을 분석하여 비판적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에, 던의 모델은 상당히 포괄적이면서도 중도적이다.  이러한 점은 일견 신중해보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큰 장점이기도 하다.





마치며

지금까지 역사적 예수 연구의 대표적인 연구자들과 그들의 성과들을, 특히 '제3의 탐구'에 초점을 맞춰서 간단하게 살펴보았다. 물론 모든 사람을 다 다룬 것은 아니고, 상당히 중요한 학자지만 아쉽게 생략한 경우도 있음을 밝혀둔다.

이러한 부단한 연구들이 축적된 결과, 역사적 예수에 대해서 상당한 합의도 나타났지만, 동시에 의견 불일치도 많이 나타났고 그것은 아직까지도 중요한 연구 주제를 던져주고 있다. 다만, 가장 중요한 합의점이라면 역시 '유다인 예수'의 재발견이며, 역사적 예수 연구를 위해서는 1세기 팔레스타인, 특히 갈릴래아를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 필수라는 점이겠다.

예수에 대한 이해는 여전히 종말론적 예언자, 지혜의 교사, 사회혁명가, 바리사이파 등등으로 다양하지만, 대부분의 연구자들은 그것을 1세기 팔레스타인의 맥락에 확고하게 위치시키려 노력하고 있다. 또한 그 과정에서 이분법적이거나, 모놀리스적 '유다교'가 아니라 상당히 역동적이면서도 다양성을 가진 1세기 유다교에 대한 합의도 이루어졌다.

현재의 역사적 예수 연구에서 아직 해결되지 않은 논쟁점은 다양하며, 그것이 후속 연구에 대한 기대감을 주고 있지만, 그 연구들 역시 지금까지 이루어낸 합의 내에서 발전할 것이라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참고문헌

Helen K. Bond. The Historical Jesus: A Guide for the Perplexed (London, 2012).
Bond 선생은 에든버러 대학의 신약학 교수로, 현재 매우 활발하게 활동하는 학자다. 역사적 예수 연구와 떼어놓을 수 없는 예수 당대의 인물 빌라도와 카야파에 대한 연구서를 내는 등 개성 있는 연구 활동을 하고 있다. 위의 책은 비전공자가 접근하기 쉽게 정리해놓은 책으로 연구사 정리에 있어서 매우 많은 도움을 받았다.
James D. G. Dunn. Jesus, Paul, and the Gospels (Cambridge, 2011).
------------------. Jesus Remembered (Cambridge, 2003).
John P. Meier. A Marginal Jew: Rethinking the Historical Jesus, vol 1. The Roots of the problem and the Person (New York, 1991).
E. P. Sanders. The Historical Character of Jesus (London, 1993).
Geza Vermes. Jesus: Nativity-Passion-Resurrection (London, 2010).
존 도미닉 크로산, 김준우 역 <역사적 예수> (한국기독교연구소, 2000).
http://www.nybooks.com/articles/2001/11/15/in-quest-of-the-historical-jesus/ (E. P. 샌더스의 서평기고문)
http://www.telegraph.co.uk/news/obituaries/religion-obituaries/10052468/Professor-Geza-Vermes.html (게자 버메스 타계 관련 기사)
http://edition.cnn.com/2011/LIVING/02/27/Jesus.scholar/ (존 도미닉 크로산 인터뷰 기사)

덧글

  • 로자노프 2016/11/01 20:16 #

    재미있는 글 잘 봤습니다. 근데 어째 국내엔 이런게 잘 소개가 안 된 것 같네요.
  • Mr 스노우 2016/11/02 20:01 #

    뭐 찾아보면 이런저런 책들은 있습니다. 대중적 레벨까지 전달이 안되서 그렇지..
  • 리리안 2016/11/01 22:21 #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역시 인문학의 매력 중 하나라면 이런 여러 주장들이 나오면서 새로운 가설을 쌓아가는데 있는 것 같습니다
  • Mr 스노우 2016/11/02 20:02 #

    동감입니다ㅎ
  • 2016/11/02 19:10 # 삭제

    잘 봤습니다. 다양한 해석들이 있네요 ㅎ
    실례가 안 된다면 올리신 참고문헌말고 읽어볼만한 책 추천 좀 부탁드려도 되나요? 한번 공부해보고 싶습니다.
  • Mr 스노우 2016/11/02 20:01 #

    정기문 선생님의 <그리스도교의 탄생> 추천드립니다.
  • 2016/11/02 21:41 # 삭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좋은 글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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