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이야기: 역사적 관점에서 homo religiosus

들어가며

유난히 전세계적으로 다사다난했던 올해도 변함없이 크리스마스가 코앞으로 다가왔다.크리스마스는, 특히 본고장이라 할 수 있는 서구에서는, 아이들에게는 1년 중 최고의 시기이며, 어른들에게는그 어린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따뜻한 상징으로 가득한 축제의 시기다.

그렇지만 역사를 공부하는 입장에서는 자연스럽게 다른 질문을 던지게 된다. 성탄 내러티브는 역사적으로 어떻게 해석될 수 있는가? 전통적인 성탄절 이야기는 '역사적 예수' 연구에 있어서 무엇을 말해주는가? 그리고 성탄 이야기가 비판적 분석을 거치더라도 여전히 그 의미를 잃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는가?

이 글은 이러한 질문에 대한 짧은 답변이며, 올 크리스마스를 나름대로 기념하는 글이기도 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첫째. '역사적 예수'의 재구성에 있어서 성탄 내러티브에서 건질 수 있는 역사적 사실은 거의 없다. 둘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탄 내러티브의 종교적, 상징적 의미는 상당하다.




사료의 문제-유년복음(Infancy Gospel)

성탄 이야기는 너무나도 유명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대부분 이를 매우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성모 마리아가 수태고지를 받고, 베들레헴으로 여행하고, 태어난 아기 예수가 구유에 누이고, 천사가 목자들에게 나타나고, 동방박사가 찾아오고 하는 이야기가 그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상당히 다른 두 이야기를 결합시킨 것임은 대부분이 인지하지 못한다.

신약성서에서 성탄 이야기는 마태오 복음서와 루카 복음서에만 등장한다. 그리고 많은 성서학자들이 지적하는 바와 같이, 이 두 복음서에 실린 성탄 이야기는 서로 다르다. 가령, 마리아가 받는 수태고지는 루카 복음서에만 나오고, 동방박사는 마태오 복음서에만 나온다. 반면에 천사를 목격하는 목자들은 루카 복음서에만 등장하며, 헤로데에 의한 베들레헴 영아의 학살은 마태오 복음서에만 등장한다.

사람들에게 성탄 이야기의 이미지는 대부분 성서 텍스트보다는 미디어를 통해 형성된 경우가 많다. 미디어는 두 별개의 내러티브에서 이것저것을 취사선택에서 하나의 내러티브로 만든다. 반면에, 나름 성서 텍스트를 읽는 비판적인 이들은 이러한 모순점들을 들며 '봐라, 이것만 봐도 성서는 뻥이다'라고 의기양양해하는 경우를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사료의 문제는 좀더 심도있게 들어갈 필요가 있다.

성서학계에서 복음서 내의 성탄 내러티브를 가리키는 용어로 '유년복음(Infancy Gospel)'이라는 표현이 쓰인다. 성탄 이야기가, 복음서 다른 부분들과 구분되는, 하나의 독립된 이야기임에 주목하는 용어다. 성서비평학의 연구결과는, 성탄 이야기가 복음서를 구성하는 다른 예수전승들보다 비교적 후대에 만들어졌으며, 그것이 각각 복음서 저자에 의해 채택되어 전체 복음서에 합쳐졌음을 지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복음서의 본문격에 해당하는 예수의 공생애에 대한 묘사에서 성탄 이야기가 인용되거나 암시되는 것은 찾아볼 수 없다. 성탄 이야기를 완전히 빼버려도, 복음서는 완결된 하나의 구조를 충분히 이루고 있다.

사실 생각해보면 당연한 이야기다. 이후 복음서에 수록되게 되는 예수 전승을 간직하고 전수한 이들은 예수의 제자들이었다. 그 제자들 중 누구도 예수가 태어나던 곳에 없었다. 성탄 이야기의 등장인물들 중, 이후 예수의 생애와 초대교회의 이야기에 재등장하는 이는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를 제외하면 아무도 없다. 일부는 제자들이 마리아로부터 이야기를 듣지 않았겠느냐고 추측하기도 한다. 그러나 대다수 연구자들은 회의적이다. 첫째로, 마태오와 루카 복음서가 보이는 상당한 차이점은 두 개의 독립된 성탄 전승이 있었음을 암시한다. 크게 다른 두 이야기가 마리아 한 명으로부터 이야기가 나왔을 가능성은 별로 없다. 둘째로, 마리아의 비중이 높은 루카 복음서는 실제 마리아의 기억을 토대로 한것 아니냐는 물음도 있지만, 존 P. 메이어 선생이 잘 지적하듯, 루카복음서에는 출산과 관련된 유다교 전례가 상당히 정확하지 않게 묘사되고 있다. 아무려면, 마리아가 본인이 직접 치르고 또 매우 익숙한 예식을 잘못 기억했겠는가? 결론은, 성탄 이야기가 그것을 실제로 경험한 이들의 증언에 바탕을 둔 것이 아님을 강력히 지지한다.

예수 전승을 기억하고 전달한 제자들의 관심은 예수가 어떻게 태어났느냐보다는, 예수의 행적과 메시지와 그의 수난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30대의 예수만을 알고 있었다. 가장 먼저 쓰인 마르코 복음서는 예수 탄생에 대해 단 한 마디도 하지 않는다. 그보다 더 먼저 쓰인 사도 바울로의 서신에도 핵심은 예수의 수난과 부활이고, 탄생에 관해서는 언급되어있지 않다.

그러다가 1세기 후반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예수의 일생 전반을 글로 정리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게 된다. 그러나 그 시점에서 이미 예수의 탄생과 관련된 정보들은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진 뒤였을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이 때 마태오 복음서와 루카 복음서의 프롤로그 격으로 첨가된 성탄 이야기는 실제 역사적 기억의 전달이 아니라, 예수의 생애와 행적에 대한 신자 공동체의 묵상이 투영된 일종의 신앙고백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 극히 일부 보수적 복음주의 학자들을 제외한 역사적 예수 연구자들의 중론이다.

이런 점을 들면서 '성탄 이야기만 봐도 이렇게 오류가 많은데, 예수가 어떻게 역사적 실존인물이냐?'라고 묻는 이들도 있지만, 이것은 그리 놀랄 일이 아니다. 고대의 인물들 중에 탄생에 대한 정보가 알려져있는 이는 극히 드물다. 상당히 유명한 인물이라 하더라도 기록은 성년기의 행적에 집중되어있다. 가령, 로마 공화정 중기의 인물들 중 가장 유명한 이들 중 한명에 들어가는 '이탈리아의 칼' 클라우디우스 마르켈루스만 하더라도 그가 정확히 몇년도에 태어났는지는 모른다. 예수의 동시대인이며, 예수 생전에 유다인 사회의 실질적인 최고 권력자였던 대사제 카야파도 생몰연도조차 알려져있지 않다.

아우구스투스나 알렉산드로스 대왕 같은 인물 정도나 되야 탄생비화같은게 전해져 내려오고 있는데, 그마저도 신화적인 이야기로 점철되어 있어서 역사적 신뢰성을 보장하기 힘들다. 이는 걸출한 인물의 경우, 뭔가 비범한 탄생이 있었을 것이라는 당대 사람들의 기대를 반영한 이야기 정도로 보는 편이 합당하다.





언제 태어났는가?

역사적으로 첫번째 성탄은 언제일까? 우선, 예수가 정말로 12월 25일에 태어났을 가능성은 존재하는가? 여기에 대한 대답은 쉽다. '존재한다'고 대답할 수 있다. 보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365분의 1의 확률로 존재한다(윤년일 경우 366분의1).

연도는 확정하기 매우 어렵다. 마태오 복음서와 루카 복음서는 모두 예수가 헤로데 대왕의 사망(기원전 4년) 이전에 태어났다고 기록하며(두 복음서가 일치하는 드문 경우다), 여기에 더해서 루카 복음서는 시리아 총독 퀴리니우스가 처음 실시한 인구조사때 태어났다고 기록한다.

그러나 거의 모든 연구자가 동의하는 바, 이 로마 인구조사의 역사성은 입증될 수 없다. 시리아 총독 퀴리니우스가 인구조사를 실시한 것은 서기 6년의 일이다. 헤로데 대왕의 생전의 일이 아니다. 그리고 헤로데 대왕은 로마의 동맹국의 왕(rex socius)이었다. 그의 왕국은 독립 왕국이었으며 로마가 인구조사를 실시할 권리가 없다. 서기 6년에 행해진 퀴리니우스의 인구조사도 유다와 사마리아와 이두메아를 대상으로 실시되었지, 예수의 고향인 갈릴레아에서는 행해지지 않았다. 갈릴레아는 엄연히 헤로데 안티파스가 다스리는 지역이었고, 앞선 지역들처럼 로마 속주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또한 모든 사람이 자기 고향이나, 조상의 땅으로 돌아가도록 하는 인구조사 이야기도 비현실적이다. 수백년 전 조상이 살던 땅으로 돌아가라고 할 이유도 딱히 없을뿐더러, 그 수백년동안 여러 세대가 지났는데 대체 그 중 누구의 고향으로 가야 한단 말인가? 그리고 인구조사는 재산(고대사회의 경우 대부분 토지)을 정확히 파악하고 세금을 매기기 위한 것이다. 그렇다면 자기 토지와 생업이 있는 현 주소지에서 등록하는게 가장 이치에 맞는다. 

서기 6년의 인구조사는 이전까지 독립국의 지위를 누려왔던 유다인들에게는 전례가 없던 일이었고, 이때문에 봉기가 일어났다. 사실 기원전 4년에 헤로데 대왕이 죽었을 때에도 봉기가 일어났기 때문에, 복음서 저자가 두 사건을 혼동한 것이 아닌가 싶다. 또한 신학적 목적으로 인해 루카 복음서의 저자는 예수의 탄생지를 베들레헴으로 설정해야만 했다. 나자렛에 살고 있던 요셉 일가를 베들레헴으로 보내기 위한 장치로 그는 유다인들의 집단기억에 큰 영향을 미친 인구조사를 사용했을 것이다. 사실, 현대처럼 구글 검색 돌릴 수도 없고, 국가 공식기록에 접근하기도 힘든 변방의 고대 역사가에게는 흔한 실수라고 이해할 수 있다.




어디서 태어났는가?

두 복음서는 모두 예수가 베들레헴에서 태어났다고 증언한다. 그러나 이 역시 역사적으로 검증하기가 힘들다. 마태오 복음서는 인구조사라든지 베들레헴으로 가는 성가족의 여행 등을 전혀 묘사하지 않는다. 마태오 복음서 내의 묘사만 보면, 요셉 일가는 본래 베들레헴에 살고 있었다. 나중에 헤로데의 영아 학살을 피해 이집트로 갔다가 나자렛에 정착한 것으로 나온다. 반면에 루카 복음서는 요셉 일가가 원래 나자렛 주민이다가, 앞서 보았듯 역사적 사실이 아닌, 인구조사 때문에 베들레헴으로 갔다 다시 나자렛으로 돌아온 것으로 그린다.

왜 굳이 나자렛으로 돌아오는 것으로 묘사해야 했을까? 그 이유는 예수가 나자렛 사람이라는것은 너무나 잘 알려져서 확고하게 굳어진 전승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성탄 내러티브를 벗어나면, 복음서에서 예수가 베들레헴 출신이라고 말하는 구절은 전무하다. 오히려 다음과 같은 구절을 생각해보자.


나타나엘은 필립보에게 "나자렛에서 무슨 좋은 것이 나올 수 있겠소?" 하였다.
(요한 복음서 1:46)


복음서가 정리될 무렵, 그리스도교 신자들에게는 예수가 바로 메시아라는 생각이 분명히 자리잡고 있었다. 메시아는 다윗의 자손이며, 베들레헴에서 나와야 했다. 루카 복음서의 저자가 역사적으로 문제가 있는 설정을 이용해서 성가족을 베들레헴으로 보내야 했던 사정은 여기서 기인할 것이다. 이는 성탄 내러티브가 신학적 묵상의 결과임을 다시 한번 강력히 암시한다. 물론, 베들레헴에서 태어났을 가능성이 1%도 없다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역사적 예수의 탄생지는 나자렛이었을 가능성이 더 높다.





두 복음서의 차이와 그 의미

사실 꼼꼼히 읽어봐야 알 수 있는 것이긴 하지만, 마태오 복음서의 성탄 이야기와 루카 복음서의 성탄 이야기는 디테일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분위기도 매우 다르다.

마태오 복음서의 성탄 내러티브는 임신한 마리아를 두고 고민하는 요셉의 고뇌와 심각한 내적 갈등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헤로데에 의한 잔인한 학살로 마무리된다. 심리적 갈등과 죽음의 공포, 학살 등 아름다운 크리스마스 이브의 분위기에 아이들에게 들려주기에는 다소 심각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마태오 복음의 성탄 이야기가 이렇게 진행되는 이유는, 그 신학적 목적 때문이다. 복음서 저자는 예수를 다윗의 왕통을 이어받은 이스라엘의 적법한 임금이면서, 동시에 제2의 모세로 묘사하고 있다. 이러한 제왕적 메시아이자 민족적 지도자의 면모가 두드러지기 때문에, 예수는 태어나면서부터 정치적 갈등의 한복판에 떨어진다. 탄생을 축하하고 그 정통성을 세워주기 위해 방문하는 이들도 고귀한 신분인 동방박사다. 동시에 마태오 복음서의 저자는 이후 비유다인들이 예수를 믿게 된 것을 알고 있었고, 동방박사는 이에 대한 예표로서 등장시킨 것이기도 하다.

아기 예수와 성가족이 천사의 경고를 받고 이집트로 피신하고, 무고한 사내아이들이 잔인한 임금의 군대에게 학살을 당하는 것은 정확히 엑소더스 이야기의 변형이다. 성가족이 피신한 곳이 다른곳이 아닌 '이집트'인 이유를 생각해보자. 물론 여러번 되풀이하는 것이지만 이는 메시아로서 예수의 의미에 대한 초기 그리스도교 신자들의 묵상의 결과물이지, 실제 역사를 반영하는 것은 아니다. 헤로데의 성격으로 보아 이런 학살은 잘 어울리긴 하지만, 그의 치세를 꼼꼼이 기록한 요세푸스를 비롯해서 어떤 동시대 기록도 이를 보여주지 않는다.

루카 복음의 성탄 이야기는 상당히 다르다. 여기에는 요셉의 갈등도 없고, 정치적 위험도 없고, 학살도 없다. 루카 복음의 성탄 이야기는 전원시를 연상케 할만큼 목가적이며, 아름답고 낭만적이다. 하늘의 천사들이 나타나서 하늘 높은 곳에 영광, 땅에는 평화를 선포하고 순박한 목동들이 아기 예수를 찾아보러 온다. 크리스마스 이야기 하면 떠오르는 따뜻한 이미지는 대부분 루카 복음서에서 왔다.

루카 복음서 역시 예수가 다윗의 왕통을 이은 이스라엘의 참된 메시아라는 점을 그리려고 했다는 데서는 마태오 복음서와 동일하다. 그러나 루카 복음서 저자는 자신의 복음서 전체에서 드러나는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에 대한 관심을 성탄 내러티브에까지 연결시켰다. 루카가 해석한 메시아의 탄생은, 하늘 가장 높은 곳에 계신 영광스러운 임금이 가장 낮은 곳에 있는 비천한 이들에게 평화를 선포하기 위해 가장 낮은 자리로 내려온 사건이었다. 마리아와 요셉이 여관에 방 한칸을 찾지 못하는 장면은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상징이다. 그리고 두번째 상징은 목동들의 존재다.


그때에 갑자기 그 천사 곁에 수많은 하늘의 군대가 나타나 하느님을 이렇게 찬미하였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그분 마음에 드는 사람들에게 평화!" (루카복음서 2:13-14)


이 메시지를 받는 이들, 즉 '하느님 마음에 드는 이들'은 가난한 소외계층인 목동들이다. 마태오 복음서처럼 고귀하고 높은 이들인 동방박사는 루카 복음에서는 등장하지 않는다.





나오며-성탄 이야기의 의미

결론적으로, 복음서의 성탄 이야기는 예수의 탄생에 대한 역사적 기록이 아니다. 오히여 헬렌 본드 선생의 표현대로, 이후 펼쳐질 복음서의 전체 내용에 대한 일종의 신학적 서곡에 가깝다. 따라서 대부분의 역사적 예수 연구자들은, 성탄 이야기를 역사적 사실로 보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이 이 이야기가 가치가 없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역사적으로도,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예수의 의미에 대해 어떻게 묵상했는지, 그것이 어떻게 발전되어 나갔는지를 보여주는 귀중한 사료다. 신학적으로 봤을때도, 창세기의 천지창조 이야기와 탈출기의 엑소더스 이야기가 과학적, 역사적 사실과 거리가 많지만 인류 역사에 있어서 귀중한 유산으로 남은 것은 그것이 단순한 역사적 fact를 뛰어넘는 영적 의미를 담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여러 차례 강조하는 바이지만, 고대의 종교적 텍스트는, 현대의 과학적 언어와 다르다. 이를 흔히 로고스와 뮈토스의 언어의 차이라고 구분한다. 복음서 중에서도 성탄 내러티브는 특히 이러한 뮈토스의 언어로 가득한 부분이다. 구약의 전통과 모티브에서 빌려온 상징을 통해서 복음서 저자들은 예수 탄생의 의미에 대해 간결하면서도 심오한 이야기를 엮어내었다. 특히 이러한 면모는 가장 존귀한 것과 가장 비천한 것이 만나고, 뒤바뀌고 하나가 되는 루카 복음서의 서사에서 절정을 이룬다.

물론 성탄 이야기의 역사성을 대부분 부정하는 이 글을 읽는 신앙인들은 당혹스러울 수도 있을 것이다. 보수적인 개신교 신자분들에게도 그렇고, 성탄 내러티브와 관련되어있는 교리들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보편교회의 신자분들에게도 그럴것이다. 특히 그런 분들을 위해서, 필자가 이 글을 쓰면서 많이 참고한 메이어 선생(예전 글에서 언급했지만 그는 역사적 예수 연구자이면서, 동시에 몬시뇰 칭호까지 받은 가톨릭 사제다) 의 글을 인용하며 마치고자 한다.


'내 책을 읽는 가톨릭 독자들은 내가 연구를 통해 예수에 대해 밝혀낸 점들과, 신앙으로 믿는 예수가 다르다는 부분에 대해 당혹해하지 않기를 바란다. 이러한 구분은 사실 가톨릭 전통에 확고히 존재해온 것이다. 가령, 토마스 아퀴나스는 우리가 이성을 통해 아는 것과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조심스럽게 구분하였다. 내 연구는 전자에 속한다.'





참고문헌

Helen K. Bond. The Historical Jesus: A Guide for the Perplexed (London, 2012).
Geza Vermes. The Nativity: History and Legend (London, 2006).
James D. G. Dunn. Jesus Remembered (Cambridge, 2003).
E. P. Sanders. The Historical Character of Jesus (London, 1993).
John P. Meier. A Marginal Jew: Rethinking the Historical Jesus, vol 1. The Roots of the problem and the Person (New York, 1991).


덧글

  • 위장효과 2016/12/21 08:13 #

    어쨌든 초기 공동체에서 더 중요했던 건 수난과 부활, 그리고 재림이었지 탄생은 공인 이후에까지 가서도 별로 큰 의미를 가지지 못했다지 말임다...
  • Mr 스노우 2016/12/21 16:45 #

    그때는 어차피 종말이 곧 올거라고 믿었고, 탄생이 어느정도 중요해진건 그 뒤의 일이었습니다.
  • 파파라치 2016/12/21 14:32 #

    학부시절 성서와 역사를 강의한 교수님은 "기독교 교리상 탄생이라는게 그렇게 기리고 축하할 일이 아님"이라고 말씀하셨죠... (그래도 구세주의 탄생만큼은 기리고 축하할일 맞는것 같지만)
  • Mr 스노우 2016/12/21 16:44 #

    글쎄요.. 그것도 너무 단정적인 해석이 아닐런지 모르겠습니다.
  • 나인테일 2016/12/21 15:19 #

    차별화, 그리고 이 차별화의 자연화. 그로 인한 이데올로기의 탄생.
    현대적 신화 읽기로 보면 굉장히 전형적인 케이스이긴 하네요.
  • Mr 스노우 2016/12/21 16:45 #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습니다. 탄생 이야기에 차별적 요소가 있다는 뜻인가요?
  • 나인테일 2016/12/21 16:59 #

    기호라는 것은 무엇이 다른 것과 어떻게 다른가를 설명하는 것이라고들합니다.

    신화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인데요 특정 대상을 설명하고 있습니다만 그 형식은 패턴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요.

    신화의 경우엔 차이를 설명하는데 있어서 가치 문제가 개입됩니다. 무엇이 무엇보다 우월하다, 열등하다 같은 것이요.

    이 가치의 근거를 설명하기 위해서 자연이라는 인간이 거스를 수 없는 이치를 끌고오게 됩니다. 자연현상으로 정해진 결과이니 이는 진리라는 것이지요. 이데올로기가 과학의 영역으로 승천하는 순간입니다. 근대에 있어선 우생학이 이런 케이스겠고 요즘 특정 사이트에서 회자되는 병신소리인 '까보전은 과학이다' 같은 것도 이런거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말씀하신대로 예수는 특별해야 되는 존재인데 별이 뒤따른다던가 하는 사이비 천체과학으로 천국 인증을 받는 자연화가 뒷받침되고 있지요.


    전통적 신화에 대한 이런 분석적 접근은 부루스 링컨의 신화 이론화하기, 현대적 담론을 마찬가지의 방식으로 분석한 것은 롤랑 바르트의 현대의 신화 같은 저작을 추천드립니다.
  • 로자노프 2016/12/21 15:57 #

    좋은 글 잘 봤습니다. 뭐랄까 아직 수수께끼의 영역같군요.
  • Mr 스노우 2016/12/21 16:46 #

    고대사의 많은 부분이 사실 크게 다를것도 없습니다.
  • 2016/12/21 17:00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6/12/21 18:11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섹사 2016/12/22 00:00 #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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