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과 솔로몬의 나라: 고대 이스라엘의 연합 왕정 논쟁 History-근동, 서양사

들어가며

구약성서는 가나안에 자리잡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부족연합을 거쳐서 왕국으로 나아가는 모습을 묘사한다. 그리고 성서 내러티브에 따르면 이 왕국은 사울과 다윗, 솔로몬이라는 세 임금을 거치면서 모든 이스라엘 부족들을 통합한, 따라서 흔히 '연합 왕정(united monarchy)'이라고 불리는 체제를 이루었으며, 솔로몬 시대에 전성기를 이룬 이 왕국은 예루살렘에 수도를 두고 정교한 관료제를 통해 광대한 영토를 다스렸다고 되어있다.



솔로몬 임금이 주님의 집과 자기 궁전과 밀로 궁을 짓고, 예루살렘 성벽과 하초르와 므기또와 게제르를 세우려고 부역을 시킨 이야기는 이러하다. ....... 그 밖에도 솔로몬은 예루살렘과 레바논을 비롯하여 자기가 다스리는 온 영토 안에 세우고 싶어하던 것을 다 세웠다. ....... 한 해동안 솔로몬에게 들어온 금의 무게는 육백육십육 탈렌트였다. 무역상들과 상인의 거래에서 받은 것, 그리고 아라비아의 모든 임금과 지방관들에게서 받은것을 빼고도 그러하였다. (열왕기 상 9~10장에서 발췌)



그리고 이 화려한 연합왕국은 르호보암 대에 이르러 둘러 나뉘어 이스라엘과 유다 왕국이 되었다는 것이 구약성서의 설명이다. 그런데 과연 이 이야기는 과연 얼마만큼의 역사적 사실성을 포함하고 있을까?

사실 부족한 사료에도 불구하고 이 이야기는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문헌적, 고고학적 증거로 인해 기원전 9세기에 시리아-팔레스타인 중앙 산악지대에 이스라엘과 유다라는 두 고대왕국이 존재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 되었다. 그 말은 그 이전 시기 언제쯤에 이 두 왕국의 기원이 되는 무언가가 존재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연합 왕정의 역사적 사실성을 둘러싼 논쟁은 바로 그 '무언가'를 찾기 위한 과정이다. 이 글에서는 연합 왕정에 대한 학계의 최근 논의를 정리하고, 핵심 쟁점들을 간략하게 다뤄보도록 할 것이다.




고대 이스라엘 초기 왕정시대 서술의 변화

1980년대 이전까지 고대 이스라엘 초기 역사의 재구성은 거의 전적으로 구약성서 텍스트에 의존한 것이었다. 가령 이 시기 고대 이스라엘사의 패러다임을 대표하는 존 브라이트의 저서는 구약성서의 열왕기를 가장 주된 사료로 밝히며 나머지 데이터는 이를 이해하는 것을 도울 뿐이라고 명시한 바 있다.

이러한 경향에는 사실 이유가 없지 않았다. 당시 활발하게 이루어진 고고학적 성과, 특히 성서에 연합왕정의 주 도시로 언급된 게제르, 므기또 등의 발굴결과는 분명 구약성서의 역사성을 증명하는듯 보였던 것이다. (물론 이 시기 고고학자들이 종종 성서를 가이드 삼아 어디를 발굴할지를 결정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특히 위 성서 본문에도 나오는 게제르, 하초르, 므기또 등의 발굴 결과 대형 건축물의 흔적이 발굴되자 이는 솔로몬의 거대한 왕국과 이에 대한 성서 기록의 사실성을 입증해주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물론 당시에도 성서 텍스트가 역사를 온전히 반영한 서술이라고 믿었던 것은 아니다. 필자가 예전 글에서 한번 설명했듯이 마르틴 노트가 1940년대에 '신명기계 역사서' 이론을 정립한 이후, 구약성서의 역사서는 사실 그대로의 기록이 아니라 신학적 목적을 위해 재구성되고 편집된 문서라는 것은 이미 전반적으로 받아들여진 중론이었다. 그러나 대다수의 학자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명기계 역사서들 내에는 다윗과 솔로몬 시대로부터 전해지는 독립된 전승들과 기록들이 섞여있다고 믿었다. 일반적으로 다윗의 왕권 장악 내러티브와 솔로몬의 왕위 계승 내러티브가 그러한 것들로 여겨졌다. 그 이유인즉, 이 기록들에서 명학하게 정통성이 부족하고 비정상적으로 집권한 왕의 정통성을 옹호하기 위한 프로파간다적 성격이 드러난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이 기록은 프로파간다가 필요한 다윗과 솔로몬 시대에 나왔을수밖에 없다는 논리였다.

따라서 1980년대 중반까지는, 이러한 프로파간다성 성격만 제외한다면, 성서 본문은 이스라엘 왕국의 초기 역사에 대해 그런대로 믿을만한 정보를 제공해준다는 것이 학계의 일반적인 중론이었다. 그 결과 이 시기까지 고대 이스라엘사 서술에서 초기 왕정시대 부분은 성서 내용과 크게 차이가 나지 않았다. 그러나 이러한 합의는 1980년대에 깨어지게 된다.

1980년대 중반부터, 성서학계는 고대 이스라엘사의 해석에 있어서 새로운 도전에 맞닥뜨리게 된다. 우선 성서 내용의 신뢰성과 기록 연도에 대한 물음이 끊임없이 제기되는 가운데, 몇몇 고고학자들이 지금까지 솔로몬 왕국의 증거로 받아들여지던 게제르, 하초르, 므시또의 유적들이 사실은 각기 다른 시대의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던 것이다. 더욱 결정적으로, 예루살렘에 대한 발굴조사 결과 정작 기원전 10세기 예루살렘에서는 별다른 건축사업의 흔적을 찾아볼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정작 수도에는 별 건축을 안하면서 지방도시들에 활발하게 대규모 건축물을 세웠다는 이상한 이야기가 된다. 게다가 학자들은 다윗과 솔로몬의 시대의 예루살렘은 지방의 대규모 건설 사업을 주도하기에는 너무 작은 도시였고, 특히 성서에 나오는대로의 대제국의 수도라기에는 너무 빈약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기원전 10세기 예루살렘 복원도

이보다 논쟁을 더 골치아프게 만들어버린 것은 연대측정 문제였다. 이른바 'low chronology'라고 불리는 새로운 연대를 제안한 I. 핀컬슈타인은 필리스티아 토기와 시리아-팔레스타인의 지층을 분석한 결과, 므기또 등지의 유적의 연대는 북왕국 오므리 왕가의 궁전 연대와 일치한다고 주장하였다. 즉 기존 생각대로 솔로몬 시대의 건축이 아니라 적어도 1세기 뒤인 기원전 9세기로 밀리는 셈이다. 이 외에도 많은 증거들이 재검토된 결과, 더 이상 성서에 나오는대로 거대했던 고대 이스라엘 연합 왕정이라는 개념은 더이상 유지되기가 어려워졌다.

그 결과 현재 학계에서는 저마다 다양한 의견을 내놓고 있지만 대략 몇 가지로 나누어볼 수 있다. 우선 한쪽 극단에 필립 데이비스와 같은 미니멀리스트 학자들이 있다. 이들의 주장은 기원전 10세기 이스라엘 왕국의 역사성은 전혀 입증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반대편 극단에 성서 내용을 거의 그대로 받아들이는 I. Provan, P. Long, T. Longman 등(셋이나 언급한 이유는 책을 같이 썼기 때문이다)의 맥시멀리스트들이 있다. 이들의 주장은 한마디로 '요즘 많이 쓰는 고고학이나 사회학적 접근이 성서의 증언보다 더 객관적이라고 볼 이유가 대체 어디있느냐?'로 요약될 수 있겠다. 중도적 입장을 취하는 Lester L. Grabbe는 위 세 맥시멀리스트 학자들의 저서에 대해 '성서 본문 요약(그것도 아주 지루한 요약)에 불과하다'고 혹평한바 있다. 사실 이쪽은 소수 복음주의 성향의 학자들을 제외하면 대체로 받아들이지 않는 입장이다. 물론 극단적 미니멀리스트 주장을 받아들이는 이들도 많이 없긴 마찬가지지만.

어쨌든 대다수의 학자들은 이 양극단의 가운데 어디쯤에 있다. 극단을 배제하고, 이들 학자들 중에서 연합 왕정의 역사성을 비교적 옹호하는 쪽의 대표자는 A. 마자르, 비교적 부정적인 이는 앞서 언급한 I. 핀컬슈타인을 들 수 있다. 그렇다면 이들 학자들이 현재 충돌하고 있는 쟁점들은 무엇일까?





현재의 논의

두 진영의 학자들이 치열하게 논쟁을 벌이는 것은 역시 최근에 발견된 새로운 증거들과 옛 증거들의 해석에 있다. 최근에 발견된 중요한 증거들 중 대표적인 것은 E. 마자르가 예루살렘에서 발굴한 유적들을 들 수 있다. 마자르는 최근에 예루살렘에서 발굴한 거대한 벽 유적(소위 Large Stone Structure)이 예전에 발굴된 소위 Stepped Stone Structure와 연결된 10세기의 구조물의 일부라고 주장한바 있다. 그녀는 이를 다윗의 궁전이라고 해석하였다. 그러나 핀컬슈타인은 마자르가 연대를 비정하는데 사용한 토기의 해석문제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고, 또 발굴에 있어서 성서 텍스트에 의존하는 태도를 비판하였다. 그리고 '마자르의 문자주의적 성서해석이 아니었다면, 이 구조물을 10세기 건축물로 볼 하등의 근거가 없었을 것이다'라고 주장하였다.

이에 대해 A. 마자르는 핀컬슈타인이 제기한 비판들을 다시 반박하면서 이 구조물들을 사실 다윗이 정복한 시온 요새라고 보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물론 마자르도 자신의 주장이 두개의 '불안정한 기둥', 즉 그 구조물의 철기1시대 건축연도에 대한 추정과 성서 텍스트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에 조심스러울 필요가 있다고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성서 텍스트와 고고학의 관계에 있어서는 아직도 논쟁이 치열하게 진행중이고, 이 분야에서 확고한 진실이랄 것이 아직 없으니만큼 다양한 시각을 인정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이 외에도 성서의 에돔 지역인 Khirbet en-nahas에서 발굴된 요새와 건물 유적을 놓고 10세기설과 8-9세기 설이 맞부딪치고 있는데, 역시 앞서와 비슷한 논쟁이라고 할 수 있다.

가장 중요한 최근 발굴은 역시 Khirbet Qeuiyafa에서 출토된 히브리어 명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를 어떻게 읽을것인지, 무슨 뜻인지에 대해서는 학계에서 아직 합의된 바가 없다. 그러나 이것이 현재까지 발견된 것 중 가장 오래된 히브리어 텍스트인것만은 분명하다. 이것은 기원전 10세기에 이스라엘의 문해율이 생각보다 높았다는 것을 암시해주는 귀중한 자료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도 해석은 치열하게 엇갈린다. 몇몇 학자들은 이 문해율의 증거를 들면서 이 시기에 이미 상당한 수준의 중앙집권화된 국가가 있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다른 학자들은 이 명문을 예루살렘의 중앙정부와 연결시킬 근거가 없다고 지적한다. 이 증거들은 오히려 인근 지역들과의 교류가 활발해지고 농업이 발전하면서 각 지역들이 저마다 도시국가와 비슷한 공동체를 수립하기 시작했다는 근거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아직 명문 자체의 내용이 해석이 제대로 안되는 상황에서, 어느쪽으로 결론 내리기 참 어려운 문제라 하겠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정황근거가 있다. 연합왕정이 존재했는지 안했는지는 둘째치더라도, 이후 북 이스라엘 왕국은 중앙집권화된 국가로 성장하면서 적어도 지역강국 정도는 되는 지위를 차지한다. 이 위상은 주변국들의 기록에서 비교적 쉽게 찾아볼수 있다. 그러나 남 유다 왕국은 북왕국의 전성기인 오므리 왕조가 끝나갈 시점이 되서야 비로소 주변국들의 기록에 본격적으로 나타난다. 여러 근거들은 남왕국이 북왕국보다 제대로 된 국가로의 성장이 늦었음을 가리키고 있다. 그만큼 인구나 물력, 인프라 면에서도 크게 뒤졌을 것이다.(그리고 마자르 등도 10세기 예루살렘이 거대도시가 아니었다는 점은 분명히 인정한다) 그런 지역을 기반으로 해서 다윗과 솔로몬이 더 부유한 지역의 부족들을 지배하는 연합왕국을 건설했다는게 이치상으로 잘 납득이 가지 않는다. 그 때문에 상당수의 학자들은 연합왕국의 실체에 대해 회의적이다.

이에 대해 마자르의 답변은 다음과 같다. '역사는 항상 일직선으로 전진하지 않는다. 역사는 항상 사회경제적, 혹은 환경적인 요인만으로 결정나는 것이 아니다. 때로는 개인의 역할도 중요하다. 특별한 카리스마를 가진 지도자들이라면(가령 다윗처럼) 상당한 정치력, 군사력을 보유한 국가를(비록 오래가진 못하겠지만) 건설하고 영토를 확장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아마르나 문서에 등장하는 아피루(혹은 하비루) 지도자들 중에 이런 경우들이 있음을 지적한다.




나오며

지금까지 살펴본 핀컬슈타인과 마자르가 정면 충돌한 논문은 나란히 2010년에 출간된 선집에 실렸다. 그리고 논쟁은 지금도 치열하게 이어지고 있다. 그런데 또 외부인의 시각으로 보면, 두 주장이 그렇게 생각만큼 크게 차이가 나지 않을 수도 있다. 핀컬슈타인의 주장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다윗과 솔로몬은 실존 인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대제국의 왕이 아니라 예루살렘과 그 인근을 중심으로 한 작은 나라의 통치자였을 것이다. 그들의 나라는 이후 북왕국이 자리잡게 되는 지역까지 뻗어올라가지는 못했을 것이다."

마자르의 주장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성서의 기록은 분명 초기 이스라엘 왕정을 크게 미화하고 과장하였으며, 따라서 문자 그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다. 그러나 보다 작은 규모의 연합왕정은 존재했을 것이다. 예루살렘에서 발굴된 구조물들은 분명 그 시대의 것이다. 따라서 예루살렘은 대제국의 수도라기에는 빈약하지만, 지역 통치자의 세력기반 정도는 충분히 되었을 것이고, 관료기구도 있었을 것이다."





참고문헌

Lester L. Grabbe, 1&2 Kings: History and Story in Ancient Israel (London, 2017).
Susan Niditch, The Wiley Blackwell Companion to Ancient Israel (Chichester, 2016).
John Barton (ed.) The Hebrew Bible: A Critical Companion (Princeton, 2016).
Megan B. Moore and Bred E. Kelle, Bibilical History and Israel's Past (Cambridge, 2011).
Amihai Mazar, "Archaeology and the Biblical Narrative: The case of the united monarchy.” In R. G. Kratz and H. Spieckermann (eds), One God – One Cult – One Nation: Archaeological and Biblical Perspectives (Berlin 2010).
Israel Finkerstein "A Great United Monarchy?: Archaeological and Historical Perspectives". One God – One Cult – One Nation.
H.G.M. Williamson (ed.) Understanding the History of Israel (Oxford, 2007).

덧글

  • 긁적 2017/02/17 20:04 #

    이거이거 어려운 문제네요. 저렇게 오래된 옛날에 대해서는 확고한 증거를 찾기가 어려우니.
    잘 보았습니다. ^^
  • Mr 스노우 2017/02/19 03:04 #

    사실 뭐 고대사가 다 그렇습니다. 로마 기원 논쟁만 봐도 똑같습니다.
  • 로자노프 2017/02/17 20:17 #

    그렇다면 고대 이스라엘 왕국이란건 과장되었다고 봐야겠군요. 에... 그럼 혹시 북왕국과 남왕국이 성경 묘사처럼 분열된게 아니라... 그냥 처음부터 2개의 나라가 있었던 것일 가능성도 있나요?
  • 파파라치 2017/02/18 13:24 #

    핀켈슈타인의 주장은 정확히 그런 관점에 서있습니다.
  • 슈타인호프 2017/02/18 05:13 #

    감사히 잘 보았습니다. <만들어진 이스라엘 역사>라는 책이 떠오르네요.
  • Mr 스노우 2017/02/19 03:04 #

    감사합니다. 국내는 양극단의 책은 번역되 들어오기도 하는데, 균형잡기에 좋은건 Grabbe와 핀컬슈타인 외에는 영 들어오지를 않으니 참 문제입니다. 들어와도 딱딱해서 많이들 보지도 않겠지만요.
  • 파파라치 2017/02/18 13:21 #

    솔직히 두 주장의 차이를 잘 모르겠네요...

    핀켈슈타안의 저서는 학부 시절에 읽어본 적이 있는데, 성서가 왜 유대 민족의 서사로서 생명력을 얻었는지에 대한 해석이 흥미롭더군요.
  • Mr 스노우 2017/02/19 03:03 #

    중요한 차이는 있지요. 북부 지역까지 아우르는 연합왕국이 일시적으로나마 존재했느냐 안했느냐의 문제입니다. 이는 결국 현재까지 발굴된 구조물들이 10세기의 것이냐 아니면 오므리 시대의 것이냐가 결론이 나야할텐데 당분간은 어려울듯 합니다.
  • 5thsun 2017/02/20 00:18 #

    이런 해석도 가능하지 않을까요?

    성경에 블레셋 이라고 언급된 등의 강력한 외적를 처리하기 위해서 뛰어난 군사 지도자(사울/다윗)가 몇몇 부족들의 지도자로 옹립되었다.

    그들의 활약과 내전으로 외적의 위협은 정리가 되고 한시적이나마 평화를 얻게 되었다.

    그 바로 아래 왕까지도 외적을 물리쳐준 위대한 영웅을 그리며 받들 수 있었다.

    하지만 애초에 전체적인 지배자로서의 왕이 아닌 토호들의 힘을 빌린 군사 연합체였던 고로,

    수도 보다 지방이 더 발달했을 수도 있고,

    군사적인 위협이 사라졌고, 영웅에 대한 그리움도 사라졌고, 그저 폭정을 휘두르는 왕만이 남은 상황에서

    그의 말을 들을 필요가 있느냐?

    해서 찢어져 나갔다던가...

    이러면 애초에 다른 나라 였던 것도,

    한시적인 연합이나 동맹이었던 것도

    수도 보다 지방이 더 발달한 것도.

    가능은 하겠죠.

    정확한것은 고고학자들이 더 수고해주시겠지만 말입니다.
  • Mr 스노우 2017/02/20 02:46 #

    지금으로서는 어떤 방향으로의 추측이라도 완전히 틀렸다고 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발굴과 연구와 논쟁이 더 축적되기를 기다려봐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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