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이스라엘 왕국의 역사서 History-근동, 서양사

들어가며

고대 이스라엘 역사 복원을 위한 사료로서 구약성서의 가치에 대한 의문이 끊임없이 제기되는 것은, 그 본문 상당부분이 상당히 후대에 완성되었거나 편집되었기 때문이라는 이유가 크다. 게다가 성서에 있는 역사서들, 즉 예전에 설명한 '신명기계 역사서'들은 역사적 사실을 객관적으로 전달한다는 목적이 아니라 명백한 신학적 목적을 위해 만들어진 책들이다.


이 성서 내의 책들, 즉 열왕기, 역대기 등의 이런 책들을 고대 이스라엘의 공식 역사서술이라고 생각한다면, 이스라엘은 맨 종교적인 잣대로 왕을 평가하거나 모든 일이 종교와 관련되어 일어나는 특이한 나라라고 생각하기가 매우 쉽다. 그러나 지난번에 한번 서술했듯이, 고대 이스라엘은 다른 주변국과 별로 다를것 없는 평범한 근동 왕조였다. 열왕기 등의 구약 텍스트는 이스라엘 왕조의 공식 역사서가 아니라 역사를 소재로 하여 후대에 편집한 종교적 텍스트라는 점을 간과할때 이런 오해가 발생한다. 그런면에서 동시대 이스라엘인들이 남겨놓은 진짜 역사서가 하나라도 남아있다면 정말 큰 도움이 되었겠지만, 안타깝게도 그런건 없다.

그러나 성서 본문에는, 살아남았다면 고대 이스라엘 역사 연구의 1차사료가 되었을 텍스트에 대한 실마리가 희미하게 들어있다. 사실, 신명기계 역사서의 저자들과 편집자들(그게 몇 명이든지)이 역사를 후대의 신학적 시각으로 재해석했다면, 무언가 이들이 보고 재구성한 사료가 존재했을 것이다. 그 사료의 존재는 무엇일까?




'이스라엘 왕조 실록'을 찾아서

마르틴 노트가 처음 신명기계 역사서 이론을 세웠을때, 그는 이 책들의 편집자가 기존에 존재하던 이스라엘 왕국의 공식 역사서들을 뼈대로 삼고, 내러티브의 빈 공간을 예언자 전설을 비롯한 각종 전승들을 수집하여 채워넣었다고 보았다. 사실 이건 완전히 새로운 이론은 아니었다. 성서의 열왕기 등의 책의 원사료가 이스라엘 왕국 궁정에서 편찬된 사서였을 것이라는 생각은 이미 19세기부터 자리잡은 견해였다. 그 뒤로 성서비평학은 계속 발전했지만 이 기본 이론, '고대 이스라엘 왕국이 남긴 동시대 사서가 구약성서 안에 있는 신명기계 역사서의 원사료'라는 생각은 이어지고 있다.

사실 구약성서의 이 부분은, 드물게도 원사료를 직접적으로 밝히고 있는 대목이다. 한번 살펴보도록 하자.



아사의 나머지 모든 행적과 무용, 그리고 그가 한 모든 일들과 그가 세운 성읍들에 관한 것은 유다 임금들의 실록에 쓰여 있지 않은가?
(열왕기상 15:23)

나답의 나머지 행적과 그가 한 모든 일들은 이스라엘 임금들의 실록에 쓰여 있지 않은가? (열왕기상 15:31)



이 두 구절에서 유추할 수 있는 바는 두 가지다. 첫째, 이스라엘과 유다 왕들의 연대기, 즉 '실록'이 원래 존재했다. 둘째. 성서 열왕기의 저자들, 혹은 편집자들은 이 책들을 참조했다. 이 책들이 남아있다면 말 그대로 1급 사료가 되었겠으나, 앞서 말했듯, 이 책들은 이러한 흔적만 남겨놓고 완전히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물론 여기서 이 구절을 정말 믿어야 하는지에 대해 회의를 품는 사람들도 있다. 다시 말하면, '성서 저자들이 자신들의 저작을 사실처럼 보이게 하려고 없는 사료를 만들어낸건 아닐까? 하는 의문이다. 사실, 완전히 허무맹랑한 의문은 아니다. 골즈워디 선생이 지적하듯, 고대 역사가들의 경우 종종 없는 사료를 지어내는 경우도 없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경우에는 그랬을 것 같지는 않다. Lester L. Grabbe 선생은 동시대 실록이 존재했을 가능성에 대해 몇 가지 이유를 제시한다. 첫째. 고대 근동의 왕정에서 공식 연대기를 편찬하는 것은 널리 퍼진 관습이었다. 따라서 고대 이스라엘 왕국이 그런 기록을 남겼을 가능성은 매우 높다. 둘째. 열왕기에서는 상당히 비슷한 패턴, 문장의 글이 반복되는 부분들이 많다. 이건 어디 다른 자료에서 통채로 가져다 복붙했을 확률이 높다.

마지막으로, 실재성을 두고 논쟁이 벌어지는 초기 왕정과 달리 남북 왕국 시대의 이스라엘과 유다 왕조의 역사성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성서에 등장하는 왕들 중 제법 많은 이들이 그대로 아시리아 등의 기록에도 등장한다. 따라서 후대의 편집자가 성서를 쓸때 이 인명이나 행적을 상상으로 지어낸게 아니라는건 명백하다. 그렇다면 어디선가 보고 썼다는 말인데, 보고 썼을 가장 가능성이 높은 사료는 궁정 연대기, 즉 실록밖에 없다. 이러한 이유를 종합해볼때, 이스라엘 왕조 실록은 존재했으며, 그것이 성서 열왕기의 원사료가 되었을 가능성은 매우 높다.

그렇다면 더더욱 이 역사속으로 사라진 실록의 내용이 궁금해질수밖에 없다. 이 점에 있어서 현재 학자들은 본문 분석을 통해 옛 실록이 어떤 내용이었을까를 추측하고 있는데, 대략적인 방법은 다음과 같다. 역시 Grabbe 선생의 방법을 소개하고자 하는데, 우선 열왕기 내용을 하나 살펴보도록 하자.



느밧의 아들 예로보암 임금 제십팔년에 아비얌이 유다의 임금이 되어,
예루살렘에서 세 해동안 다스렸다. 그의 어머니 이름은 마아카인데 아비살롬의 딸이었다.
그런데 임금은 제 아버지가 지은 죄를 모두 따라 걸었다. 그의 마음은 자기 조상 다윗의 마음과는 달리 주 하느님께 한결같지 못하였다.
그러나 주 다윗의 하느님께서는 다윗을 생각하시어 예루살렘에서 그에게 등불을 주시고, 그의 뒤를 이을 아들을 일으키시어 예루살렘을 굳게 해 주셨다.
다윗은 히타이트 사람 우리야 사건 말고는, 주님의 눈에 드는 옳은 일만 하였으며, 살아있는 동안 내내 주님께서 명령하신 것을 하나도 어기지 않았다.
르하브암과 예로보암 사이에는 늘 전쟁이 있었다.
아비얌 임금의 나머지 행적과 그가 한 모든 일들은 유다 임금들의 실록에 쓰여 있지 않은가? 아비얌과 예로보암 사이에도 전쟁이 있었다.
아비얌은 자기 조상들과 함께 잠들어 다윗 성에 묻히고, 그의 아들 아사가 그 뒤를 이어 임금이 되었다.
(열왕기상 15:1-8)



이 본문의 구성 요소는 다음과 같다. '왕의 등극, 재위기간의 일, 그의 통치에 대한 신학적 평가, 왕의 죽음'이다. 우선 이 중에 단연 눈에 띄는 것은 파란 색으로 표시한 부분, 즉 신학적 평가이다. 이게 본래 유다 왕조 실록에서 나왔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우선, 왕들에게 종교적인 평가를 내리는 것은 고대 근동 왕조실록의 일반적인 형태가 아니다. 또한, 그 평가의 잣대는 매우 전형적인 후대 신명기 사관이다. 필자가 예전에 썼듯이, 고대 이스라엘과 유다 왕국 역사의 상당기간동안 이스라엘은 철저한 일신교 사회가 아니었으므로 동시대 기록에서 위와 같은 평가가 나오리라고 보기는 어렵다. 따라서 이 부분은 비교적 자신있게 후대 신명기계 역사가의 평가라고 볼 수 있다.

그러면 이 명백하게 신명기 사관이 반영된 것으로 보이는 파란 구절들을 빼버리고 나머지를 한번 보자. 맨 처음 검은색으로 표기한 구절은 왕의 등극과 재위기간, 가족 사항이다. 이 포맷은 거의 모든 왕이 즉위할때 반복된다.(물론 암살당했거나 찬탈한 왕의 경우 표현이 조금 다르다) 아무런 가치 판단도 들어있지 않은 건조한 사실 기록이며, 고대 근동의 다른 왕국 연대기와 비슷한 포맷이다.(단, 왕의 어머니 이름까지 기술하는 것은 다른 근동 왕국의 연대기에서는 찾아보기 힘든데, Grabbe 선생은 유다 왕국의 독특한 문화적 관습이 아닌가 추측한다) 따라서 이 부분은 유다 왕조 실록의 원문에서 직접 가져왔을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판단되는 부분이다.

조금 애매한게 빨간 색 부분의 전쟁 기사다. 역시 매우 간략하게 전쟁이 있었다는 정보만 제공하고 있다. 대체로 메소포타미아의 궁정 연대기(업적을 자랑하거나 왕의 위업을 찬미하기 위해 쓴 노래, 시가같은것 말고)중에는 대체로 이와 비슷하게 간략한 서술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래서 실록에서 가져왔을 가능성도 있어보이는데, 문제는 문맥이 영 이상하다는 점이다. Grabbe 선생은 실록에서 그대로 인용한 것은 아니지만, 실록에 왕의 치세 중 전쟁에 대한 기록이 있었을테고 그것을 보고 끼워넣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그 다음은 초록색 부분인데, 당연히 실록 원문에 실록을 보라고 써놨을 가능성은 없으므로 이건 신명기계 편찬자가 레퍼런스로 제시한 구절이라고 보면 될 것이다. 문제는 마지막 보라색 구절이다. 조상들과 잠들다는 고대 이스라엘에서 죽음을 묘사하는 관용적인 표현이다. 이건 실록에서 가져왔을수도 있고, 신명기계 사가가 추가했을 수도 있다. 둘 다 가능성이 충분하기 때문에 확실하게 말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그렇다면 아비얌 임금의 재위에 대한 1차사료인 실록에서 왔을 것이 확실시되는 부분은 맨 앞줄 검은색, 그리고 약간 붉은색에 해당되는 기사가 원문 어딘가에서 변형되어 왔을 가능성이 있고, 마지막은 확신할 수 없지만 어쨌든 실록에도 왕의 죽음을 서술하긴 했을 것이다. 이렇게 보면 실록 원문은 정말 짧을 것 같은데, 이건 재위기간이 짧은 왕이라 그렇고 다른 왕의 경우는 이와 비슷한 방식으로 분석하면 조금 더 긴 원문을 복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간략한 책이었던 것 같다.




결론

이상의 분석을 종합해보면 다음과 같은 결론이 나온다. 현재까지 성서 내 역사서에서 1차 사료인 이스라엘과 유다 왕조 실록에서 가져왔을 가능성이 높아보이는 구절들은 대체로 다음과 같은 특징을 보인다. 간략하고, 정보만 제공하며, 대체로 재미없는 부분들은 실록에서 그대로 인용했을 가능성이 높다. 사실을 크게 왜곡할 여지가 없는데다가, 다른 고대 근동 왕국들의 연대기와 유사한 포맷을 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Lester 선생이 말하듯, 이 구절들의 역사적 신빙성은 대체로 높다고 봐도 될 것이다.

이 구절들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개별 왕들에 대한 신학적 평가가 들어오는데, 이는 신명기계 역사서의 대표적인 특징으로, 본래 실록에 실려있던 내용이 아니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나머지, 잘 알려져있고 흥미로운 이야기들은 기적과 예언자들이 나오는 소설 같은 이야기들인데, 이쪽은 다양한 민간전승들을 끌어다 채웠을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이런 부분들, 특히 스토리성이 강한 부분일수록, 역사적 사실성을 장담하기가 매우 어렵다.

이렇게 되면, 지금은 소실된 이스라엘과 유다 왕조 실록의 모습이 어떠했을지 대강의 그림을 그려볼 수 있다. 그것은 다른 근동 왕조의 공식 역사서와 비슷한 서술법으로 쓰여졌을 것이며, 한 명의 왕 당 한 문단 이상을 넘기지 않는(물론 재위기간이 길거나 임팩트 큰 일이 일어났던 왕의 경우 더 길었을 수도 있었겠지만) 짤막한 기록들의 모음집이었을 것이다. 그 내용은 성서 텍스트에 나오는 종교적 평가가 아니라, 왕들의 재위기간과, 인적사항 및 주요 치적들과 관련된 사실정보들을 딱딱하고 간결하게 나열한 형태였을 것이다.





참고문헌

Lester L. Grabbe, 1&2 Kings: History and Story in Ancient Israel (London, 2017).
Susan Niditch, The Wiley Blackwell Companion to Ancient Israel (Chichester, 2016).

덧글

  • 긁적 2017/02/19 19:32 #

    저도 예전에 저 구절 읽을때 '실록 그거 엄청 보고싶다..'라고 생각했었는데 역시 그런 거 없었군요 ㅠ.ㅠ
    연재 정말 재미있게 보고 있습니다 ^^ 감사합니다!
  • Mr 스노우 2017/02/20 02:43 #

    본문에 명시되어있듯이, 있었을겁니다. 지금 존재하지 않을뿐이죠.
  • 슈타인호프 2017/02/19 20:12 #

    삼국사기 본문 같았겠네요. 정말 딱딱하고 의외로 볼 거 없는...
  • Mr 스노우 2017/02/20 02:44 #

    뭐 이것만 그런게 아니라 근동 기록들 훓터보면 그런게 꽤 많습니다.
  • 로자노프 2017/02/19 20:20 #

    솔직히 저도 그 성경 보고는 그 연대기가 참 궁금했는데 말이죠. 다만 전 나머지 행적은 연대기를 참고하라는 문구 때문에 연대기는 좀 더 자세하지 않았을까 생각했는데..
  • Mr 스노우 2017/02/20 02:44 #

    특별한 일이 있었거나 한 경우에는 자세한 왕들도 있었을겁니다.
  • 파파라치 2017/02/19 22:36 #

    그래도 왕조실록인데 추측대로라면 너무 간략하군요. "태어나서, 살다가, 죽었다" 수준...
  • Mr 스노우 2017/02/20 02:45 #

    어디까지나 추측일뿐이라 뭐라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만, 저건 재위기간이 너무 짧은 경우라 그렇지 행적이 많은 왕일수록 상대적으로 길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 5thsun 2017/02/20 00:23 #

    나머지 행적과 그가한 일과 등등이 적혀있다는걸 을 고려하면 저것보다는 길었겠죠.

    신명기계에 중요하지 않아서 그냥 무시 한 부분들이었겠지...
  • Mr 스노우 2017/02/20 02:45 #

    재위기간이 짧은 왕을 가져와서 그렇지, 이 방식으로 복원해도 좀더 길게 나오는 왕들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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