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내전의 기원 (6)-국왕 찰스 1세 History-근동, 서양사




인간 찰스 스튜어트


제임스 1세의 뒤를 이은 찰스 1세는 오래도록 영국사에서 폭압적 전제정치를 상징하는 인물이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한 인간으로서 찰스 스튜어트는 폭군의 스테레오타입과는 거리가 먼, 오히려 인간적인 호감을 갖기 쉬운 사람이었다. 그는 근본적으로 온화하고 선량한 성품을 가졌으며, 근면 성실했다. 교양이 풍부하고 특히 예술에 대한 감각은 전문가 수준으로 뛰어났다. 반면에 먹고 마시는데 있어서는 대단히 검소하고 절제하였다. 사생활 면에서는 동시대 군주들 중 보기 드물게 깨끗하였다. 그는 가족을 사랑하는 자상한 아버지이자 남편의 전형으로, 애인이나 정부를 두지 않은 거의 유일한 17세기 유럽 군주였다.


그러나 왕으로서 그의 평가는 휘그파 역사가들 뿐만 아니라 다수의 수정주의 학자들에게도 영 좋지가 않았다. 전통적인 해석은 물론 찰스 1세를 자유와 헌정의 투사인 의회와 대비되는 폭군으로 몰아갔지만, 수정주의 학자들에게서도 찰스 1세는 아무 문제 없었던 잉글랜드의 정치구도를 혼자 말아먹은 무능한 군주 대우를 받았다. 특히 제임스 1세가 재평가되어 이미지가 좋아질수록, 찰스 1세는 아버지가 잘 해오던 일을 다 망쳐버렸다는 평가를 받게 되었다.


그러나 찰스 1세를 옹호하는 연구자들도 없지는 않았다. 최근 학자들 중에서 Barry Coward 선생과 Peter Gaunt 선생이 찰스 1세에 대해 비교적 비판적인 학자들이라면, C. Sharpe 선생과 M. Kishlansky 선생은 비교적 옹호적인 학자들이다. 다만 지난 몇년간 Coward 선생과 Kishlansky 선생이 모두 작고함으로서 더 이상의 논쟁을 보지 못하게 된 점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어찌되었건 이러한 최근 논의들이 이루어지면서, 수정주의 담론도 상당부분 옛말이 되버린 지금에 와서는 찰스 1세의 치세에 대해서도 보다 객관적인 시각(여전히 논쟁의 여지는 매우 많지만)이 가능하게 되었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점은, 제임스 1세 부분에서 언급했듯이, 한 인간은 100퍼센트 폭군이나 100퍼센트 명군 등과 같은 단순한 이분법이 통하기에는 너무나도 복잡하다는 사실이다. 정치적 인물, 특히 국왕에 대한 평가는 시대적 요구, 정치적 스탠스 등등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또한 장점과 결점에 대한 분석도 마찬가지다. 이중 장점에만 집중하면 누구나 명군 만들수 있고, 결점에만 집작하면 누구나 폭군 만들 수 있다. 찰스 1세는 결국 패배하고 목을 잃었으니 실패한 군주다. 그런데 이 '실패한 군주'라는 시각을 깔고 그의 치세를 분석하면 아무리 객관적으로 보려고 해도 은연중에 그의 결점에만 더욱 집중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그 못지 않은 결함을 가지고도 성공적인 치세를 마친 군주는 많다. 따라서 객관적으로 그 시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benefit of hindsight'도, 이분법적인 시각도 잠시 내려놓고, 그가 취한 각각의 행동들의 맥락과 이유, 영향을 분석하고 그의 결점이 유독 이 시대에 문제를 일으켰다면 무엇이 그렇게 만들었나에 집중하는 것이 더 낫다.





정치가 찰스 스튜어트


그렇다면, 이러한 전제를 깔고서 정치가로서 찰스 1세의 자질과 결점을 분석해보도록 하자. 우선 맨 앞에 언급한 찰스 1세의 인간적인 장점들은 사실 정치가로서의 찰스 1세와 완전히 별개의 것만은 아니다. 개인군주정 시대에 이는 얼마든지 정치적 자산이 될 수 있었다. 한 예로 찰스 1세의 예술애호가로서의 능력은 국왕의 권위를 확고히 하는 프로파간다 구축에 적극적으로 활용되었다.


우선, 왕위에 오른 그는 의욕도 있었고 왕국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도 있었다. 업무 능력도 충분히 있었고, Kishlansky 선생이 잘 지적했듯이, 잉글랜드를 유럽의 강국으로 만들겠다는 포부도 있었다.


치세를 시작하면서 세운 원칙도 훌륭했다. 특유의 온화한 성품이 발현된 것인지, 그는 정치적인 이유로 사람을 죽이지 않겠다고 결심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1642년의 파국 이전까지 찰스 1세의 치세에서 정치적 처형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이는 온갖 음모와 피의 숙청으로 점철된 튜더-스튜어트 시대에 대단히 특이한 경우였다. 이런 사람이 후대에 폭군의 대명사로 이름을 남겼으니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라 하겠다.


그러나 장점들 못지 않게 상당히 심각한 약점들도 있었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그는 부왕 제임스 1세로부터 수줍음 타는 성격을 그대로 물려받았다. 더 심각한 것은, 그래도 제임스는 지성이 겸비된 화려한 말빨로 다양한 세력들을 제압하고 설득할 수 있었던 반면, 찰스 1세는 이런 능력이 매우 부족했다는 점이다. 현대 학자들은 그에게 언어 장애가 있었던 것으로 보고 있다.


이는 타고난 것이라 본인 잘못은 아니지만, 개인적 카리스마가 중요한 근대 초의 군주에게는 대단히 심각한 결점이었다. 게다가 그는 체구도 작았다. 그러나 찰스 1세는 각고의 노력을 통해 군주의 위엄을 갖추는데 성공하였다. 부왕처럼 적극적인 토론을 할 수는 없었지만, 대신에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침착하고 장중한 모습을 통해서 군주의 위엄을 세우고자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군왕의 외피 뒤에는 힘겹게 위엄을 지켜나가는 불안하고 수줍음을 많이 타는 한 인간이 있었다. 어찌되었건, 그의 이런 노력은 제법 성공적이었고 능력도 있었으니 만일 동시대 잉글랜드가 아니라 좀더 안정된 국가의 왕이었다면 성공적인 치세를 마쳤을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문제는 당시 잉글랜드의 상황은 그가 갖지 못한 자질을 더 많이 요구했다는 점이 그의 가장 큰 불운이었다. 나라는 서로 대립하는 종교적 이데올로기들로 인해 점점 더 양극화되고 있었고, 그걸 넘어서 그가 다스려야 하는 세 개의 왕국 간의 차이는 더 심했다. 따라서 이 서로 다른 세력들을 조율하면서 충돌을 최소화해야 하는게 급선무였는데, 이는 제임스 1세의 말빨로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찰스의 성격과 언어장애는 여기에 치명적이었다.


찰스 1세에게 비판적인 학자들은 그가 비타협적이었으며, 소통을 몰랐다고 비판하였다. 물론 그의 성격에는 그런 측면도 있다. 찰스 1세는 군주로서 자신의 의무는 신민들을 위해 일하는 것이지, 신민들이 하라는 대로 따라가는 것은 아니라고 믿었다. 물론 여기에는 일견 합당한 부분도 있다. 당시에는 다양한 세력들이 다양한 주장을 내놓고 있었으니 이를 다 따를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찰스가 과연 타협을 몰랐는가라는 주장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여지가 있다. Kishlansky 선생이 지적했듯이, 찰스는 '자신이 세운 원칙을 거스르지 않는 한'에서는 얼마든지 타협하러 나왔다. 다만 제임스 1세처럼 자신의 원칙을 굽혀가면서까지(종교 탄압의 예처럼) 타협하러 들지는 않았다. 이 때문에 후대 역사가들로부터 고집불통이라는 평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면, 만약 찰스 1세가 최종적으로 승리했다면 이 자세는 원칙을 지키는 훌륭한 자세라는 평을 듣고 있을 수도 있다. 또한, 그렇다면 찰스 1세와 대립한 의회 의원들, 특히 청교도 성향의 의원들은 그러면 얼마나 타협할 준비가 되어있었는가라는 질문을 던져볼 수도 있다. 당연히, 양극화의 시대에 타협의 여지는 점점 더 줄어들고 있었고, 타협의 실패는 찰스 1세만의 책임은 아니었다.


소통능력의 부족은 정치가로서 찰스 1세의 가장 큰 약점이었다. 이 시기 잉글랜드의 정치적 특성상 왕은 자신의 견해를 여러 세력에게 잘 설득시킬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찰스는 우직하게 "내가 좋은 의도로 추진하는 정책이니 다들 알아주겠지" 하는 식으로, 자신이 옳다고 믿는 바를 밀고 나갈뿐, 설득하려는 시도를 하지 않았다. 아니, 사실은 언어 장애로 인해 그럴 능력이 심각하게 부족했다. 그는 이 장애로 인한 두려움 때문에 언제나 다른 사람과의 거리를 유지했고, 이 때문에 사람들은 종종 그를 오만하다고 오해하였다. 


정책을 추진함에 있어서도 제대로 설명을 못하다보니 사람들은 그의 의도를 제각각 다르게 해석했다. 그의 정책 대부분은 좋은 의도에서 나온 것이었으나, 대부분 그 반대로 오해되었다. 더욱이 공적 영역에서의 정치토론이 점점 더 중요해지던 시기에, 그는 자신의 정책이 공론의 장에서 논의되는 것을 심하게 두려워했다. 이는 모두 근본적으로 그의 언어장애와 언변 부족에 대한 자각에서 나온 행위였다. 물론 이는 엄연히 '장애'이니 본인의 잘못만은 아니나, 그는 시기적인 면에서 브리튼의 역대 군주들 중 가장 때를 잘못 타고난 불운한 군주 중 한 명이었다.


그리고 사실 당시 잉글랜드의 상황이 너무 좋지 않았다. 찰스 1세가 좀더 언변이 뛰어나고 소통을 적극적으로 하는 군주였다 하더라도 과연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을까는 의문이다. 그렇다면 그의 즉위 당시의 상황은 어떠했을까?





제임스 1세의 유산과 찰스 1세 초기 잉글랜드의 정치상황


찰스 1세에게 결점이 있었던 것은 감안하더라도, 그는 후대 역사가의 비판 중에서 억울해할 부분이 상당히 많다. 그 많은 부분이 본인의 작품만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특히 제임스 1세를 높이 평가하는 학자들의 대표적인 비판은 제임스 1세의 성공적인 외교정책과 종교정책을 포기했다는 부분이었다. 이 둘이 왕과 의회의 사이를 결정적으로 틀어지게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찰스에게 상당히 비판적인 Coward와 Gaunt 선생도 인정하는 바, 왕과 의회 사이는 이미 제임스 1세의 말년부터 벌어지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여전히 미해결 상태인 재정 개혁 문제가 가장 근본적이면서도 심각한 문제였음은 물론이다.


이어서 외교적인 면에서 봤을 때, 제임스 1세의 평화주의 정책은 대단히 인기가 없었다. 의회를 비롯한 대다수의 프로테스탄트 신민들, 특히 청교도들은 잉글랜드가 국제 프로테스탄티즘의 일부로서 싸워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찰스와 스페인 공주의 결혼협상 결렬 이후 이런 분위기는 더욱 높아졌다. 찰스도 적극적인 주전파로 돌아섰다.


결국 1624년 의회에서 스페인과의 전쟁이 결의되었다. 그러나 제임스는 여전히 우물쭈물했다. 그는 군대를 보내기는 보내되, 팔츠로 진입하거나 스페인군과 교전하는 것은 금하는 애매한 방식을 취했다. 결국 이 군대는 네덜란드에서 군자금만 까먹다가 질병으로 상당수를 잃었다. 이 사건으로 의회는 왕에 대해 결정적인 의구심을 갖게 되었고, 이 의구심은 이후 찰스 1세의 발목을 두고두고 잡게 된다.


두번째로 종교 정책 부분을 봐야 하는데, 이미 제임스 1세의 말년부터 국왕이 공정한 조정자로서 잉글랜드 교회의 각 세력의 균형을 유지한다는 이상은 힘들어지고 있었다. 특히 제임스는 청교도들이 자신이 애써 세운 질서와 안정에 가장 큰 위협이라는 생각을 분명히 하기 시작하였다. 따라서 말년의 제임스는 작정하고 고교회파 앵글리칸을 밀어주기 시작한다. 찰스 1세의 종교정책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되는 윌리엄 로드 같은 이들이 그들이었다. 당연히 청교도들은 이에 대해 음모론에 가까운 의심을 품게 되었다. 제임스 1세의 말년의 잉글랜드 정치는 이미 새로운 이데올로기적 양극화가 나타나고 있었다.


이것이 찰스 1세가 물려받은 정치환경이었다.



덧글

  • 파파라치 2017/08/03 11:33 #

    비교하긴 그렇지만, 우리 공주님도 좋은 의도와 국정에 대한 의지, 그리고 본인의 감각인지는 모르겠으나 나름 패션에 대한 감각도 있었으나, 언어장애가 있는것이 아닌가 의심이 들 정도로 심각한 소통부족이 있었고, 야당 및 반대세력은 시종일관 비타협적이었다는 점이 흡사하네요. -ㅅ-
  • Mr 스노우 2017/08/03 11:52 #

    딴건 몰라도 좋은 의도와 패션감각은 지극히 의심스럽습니다. 국정에 대한 의지도 그닥..
  • 파파라치 2017/08/03 13:20 #

    에이, 설마 의도가 나빴겠어요... 자기가 뭘하는지 몰랐던게 문제지. (문제는 적어도 정치에서는 그게 더 나쁘다는거...) 패션도 주변 여성들의 반응을 보면 대략 괜찮았던 것 같습니다. 자기가 고른게 아닌것 같아서 문제죠.
  • 위장효과 2017/08/03 18:44 #

    의도는 모르겠는데 패션감각은 확실히 있긴 했습니다. 게다가 덕후이기도 했고...

    그래봐야 국가원수이자 행정수반으로서의 능력은 최하였으니 그것만으로 이미...
  • 2017/08/03 12:31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7/08/03 22:54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Fedaykin 2017/08/03 16:37 #

    평화는 무능함이 죄악이 되지 않는 시대....ㅠ 평화로운 시대는 아니었군요
  • Mr 스노우 2017/08/03 22:53 #

    찰스 1세는 별로 무능하지 않았습니다. 어느 하나가 부족했다고 해서 그 사람이 전적으로 무능한 사람이 되는것은 아니지요.
  • Fedaykin 2017/08/04 15:15 #

    아, 하필 딱 저 시대에 언어능력과 소통능력이 부족한 왕이 올라갔다는게 안타깝다는 뜻이었는데, 저래 써놓으니 본문과 정 반대의 주장을 한것처럼 보이겠군요 ㅠ 실례했습니다.
  • 위장효과 2017/08/03 18:45 #

    그런데 장남은 왜 그렇게 난봉꾼으로 이름을 날린 건지 참...(이것도 루이 14세에게 배웠던 건가...)
  • Mr 스노우 2017/08/03 22:54 #

    뭐.. 대를 걸러서 나타나는 것일수도요
  • 의지있는 제비갈매기 2017/08/03 21:38 #

    이 블로그의 링크를 페이스북에 올려도 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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