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내전의 기원 (12)-대분열 History-근동, 서양사

왕당파의 형성

지난번 글에 설명했듯이, 찰스 1세에게는 최악의 시기였다. 패전으로 위신은 추락했고, 신뢰할수 있는 측근 대신들은 처형되거나 감옥에 갇혔다. 의회는, 정도는 달랐지만, 그의 정책에 대한 반대로 연합전선을 구축하고 있었다. 이 위기를 탈출하고 어느정도 정치적 힘을 회복하려면 그에게는 두 가지 수단밖에 없었다. 첫째는 무력을 동원하는 것이고, 둘째는 자기 지지세력을 규합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첫째는 사실상 불가능했다. 잉글랜드는 대규모 상비군이 없는 나라였고, 그나마 모아놓은 군대도 빈약한 재정 때문에 유지가 불가능했다. 그리고 그나마 제대로 된 군대를 동원할 능력이 있었던 스트래퍼드 백작은 제거당했다. Cust 선생이 지적했듯이, 찰스 1세가 진짜 무능하기만 한 군주였다면 이 시점에서 완전히 허수아비로 전락했을 것이고, 내전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상당히 놀랍게도, 이 시기부터 찰스 1세는 꽤 힘을 회복하기 시작한다. 여기에는 크게 두가지 원인이 있었다. 우선, 찰스 1세가 정치가로서 단점도 있었지만 또 나름대로 능력도 있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더 중요한 두번째 원인으로는, 이 시기부터 의회 내의 그의 적대자들이 급격히 분열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의회는 찰스 1세의 몇몇 정책들에 대한 반대로 결집하고 있었다. 그러나 지난번 글에 서술했듯이 그 반대의 이유는 각각 달랐다. 퓨리턴을 위시한 강성 칼뱅파에게는 종교정책이 가장 문제였고, 누군가에게는 의회가 아닌 국왕의 대권에 의거한 재정정책이 문제였다. 따라서 찰스 1세의 권력을 제한해야 한다는 공동의 목표로 묶였지만 그 외에는 공통점이 별로 없는게 이 당시 의회의 여러 파벌이었다. 그리고 '찰스 1세의 권력을 제한하자'라는 목표 때문에 이들을 국왕의 절대주의에 맞서는 헌정주의의 대표자들로 보는 시각 역시 현재는 별로 통용되지 않고 있다. 가령, Coward와 Gaunt 선생이 지적했듯이, 존 핌을 비롯한 퓨리턴이 찰스 1세의 권력을 제한하려 했던 이유는 오직 하나, 찰스 1세가 퓨리턴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만일 찰스 1세가 퓨리턴과 종교적 의견을 같이했다면, 이들은 기꺼이 국왕의 절대권 강화에 찬성했을 이들이었다.

어찌되었건, 이러한 배경을 이해한다면, 당시 의회의 공동전선이 무너지기 시작한 이유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우선 스트래퍼드의 처형과 로드 주교의 투옥 등으로 의회 구성원들 대다수가 반대하던 국왕의 정책들 상당수는 무효화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많은 이들에게 더이상 공동전선을 유지할 필요가 점점 줄어든 것이다.

그러나 퓨리턴을 비롯한 급진파 프로테스탄트 상당수는 말 그대로 이제 자기 세상이 열렸다고 받아들였다. 이들은 대놓고 나서서 반달리즘을 저지르기 시작했다. 당연히 이는 많은 중도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갈등을 봉합하려는 마지막 시도로 의회는 영국 프로테스탄트 국교회를 수호하겠다는 맹세를 모든 성인 남성에게 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이는 갈등 봉합은 커녕 더 큰 분열을 낳았다.

Braddick 선생의 설명대로 급진파와 퓨리턴들은 이 맹세를 "이제 성상 파괴를 마음대로 해도 좋다"라는 허가로 받아들였다. 이에 성찬 테이블과 스테인드 글라스, 성상을 무차별 박살내는 행위는 갈수록 심해졌다. 몇몇 급진주의자들은 성직자들의 전례복을 반대한다는 이유로 제의실의 문을 잠가버리기도 하였다.

이미 여러번 설명하였지만, 퓨리턴와 급진파는 의회에서나 영국 사회에서나 다수가 아니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퓨리턴은 국왕의 정책에 반대하는 다양한 세력들 가운데서 가장 목소리가 크고 행동력이 있는 집단이었고, 덕분에 이들에게 유용한 동맹자였다. 그러나 이제 공동전선이 허물어지면서 이들의 유용성도 떨어지고 있었다. 대다수 의원들과 영국인들은 로드 주교 식의 고교회파 정책에도 반대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전통적인 전례를 죄다 파괴하는 것 역시 찬성하지 않았다. 더욱이 퓨리턴이 저지르는 파괴 행위는 많은 이들에게 무질서와 무정부 상태로 받아들여졌다.

파괴 행위와 함께 당시 퓨리턴들이 내뱉던 극단적인 용어들도 엘리자베스 이래의 잉글랜드 국교회 전통을 중요시하고 자랑스러워하던 중도파들에게는 대단히 불쾌한 것이었다. 가령, 당시 한 퓨리턴 목사가 국교회가 사용해오던 일반 기도서에 대해 평하던 말을 들어보자.


"이 기도서는 하느님의 콧구멍에 악취를 풍기는 물건이며, 많은 영혼을 지옥으로 보내는 수단이다."

결국 중도파, 온건파를 중심으로 퓨리턴과 급진파 개신교에 대한 반감이 급격히 형성되기 시작한 것은 자연스러운 노릇이었다.

따라서 이 무렵부터 상당수의 의회 내 중도파들은 퓨리턴과의 연합에 회의를 느끼고 찰스 1세를 중심으로 결집하기 시작한다. 실제로 이후 내전기 왕당파의 지휘관들과 구성원들 중 제법 많은 수가 본래 찰스 1세와 대립하던 의회 의원들이었다. 이때 퓨리턴의 만행에 학을 떼고 떨어져나간 이들이 왕당파의 주요 구성원들이 되었던 것이다.

찰스 1세도 자파 세력 결집에 상당히 능란한 정치력을 발휘했다. 그는 과거 시행하던 아르미니우스주의 노선을 포기하고 대신, 자신이야말로 퓨리턴이 초래할 무정부 상태에 맞설 수 있는 질서와 안정의 구심점이라고 내세우기 시작했다. 사실 그는 본래부터 혼합정과 균형정치의 신봉자였으니 딱히 거짓말을 한 것도 아니다. 다만 이 시기 그는 그 어떤 때보다도 자기PR을 효과적으로 했으며, 이러한 선전은 당시 중도파 상당수를 포섭하는데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이렇게 해서 1641년 말이면 국왕은 제법 힘을 회복한다.

실제로 퓨리턴의 파괴행위에 대한 반발은 전국적으로 퍼져나갔으며, 22개 주에서 "우리는 일반 기도서의 유지를 원한다" 는 청원이 일어났다. 이 청원에 서명한 이들은 상당히 광범위하게 퍼져있었으며, 그중에는 꽤 개혁적인 프로테스탄트들도 있었다. 이는 당시 잉글랜드 국교회에 대한 지지와 애착이 상당한 수준이었으며, 퓨리턴에 대한 반감도 꽤나 컸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이들 역시 찰스 1세의 세력 기반이 되었다.







두려움 대 두려움

이제 영국 사회는 완전히 반으로 쪼개졌다. 예전 휘그파적 해석은 이 시기의 분열상을 국왕의 절대주의 대 의회의 헌정주의라고 설명하였다. 그러나 이는 사실과 거리가 있다. 정말 찰스 1세가 절대주의를 천명했고 이를 이루려 했다면, 중도파 의원들이 대거 왕쪽으로 몰려간 것을 설명할 수가 없다. 게다가 그와 대립하던 이들도, 앞서 설명했듯, 민주투사와는 거리가 멀었다. 이 시기 영국 사회를 양분한 것은 음모론에 가까운 공포심리였다.

우선 이 시기 찰스 1세에게 적대적인 세력을 형성했으며, 이후 내전기 의회파의 주축이 되는 이들은 역시 'godly'한 개혁을 이루어야 한다고 굳게 믿는 퓨리턴과 강경파 프로테스탄트 세력이었다. 이들중에는 종교적 열정 외에는 사회적, 정치적으로 그 누구보다 보수적인 이들도 많았다. 이들을 왕을 상대로 한 전쟁에 뛰어들게 만든 것은 바로 "교황주의자의 음모(Popish Plot)"에 대한 공포였다.

이들은 교황청과 예수회 등이 주축이 되어서 잉글랜드 개신교를 파괴하려는 거대한 음모가 있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이들이 보기에 찰스 1세 역시 비밀 가톨릭이 분명했다. 가톨릭 비슷한 전례를 좋아하고, 가톨릭 신자들을 잡아죽이지 않는다는게 그 근거였다. 찰스 1세가 비밀 가톨릭까지는 아니라고 생각하던 이들도 있었지만, 이들은 최소한 사악한 가톨릭 신하들에게 왕이 휘둘리고 있다고 믿었다. 따라서 이 사악한 대신들로부터 왕을 구출하는게 충성스러운 신민의 의무라는 것이었다. 이 두번째는 종교적으로는 퓨리턴과 비슷하지만 정치사회적으로 보수적이었던 이들이 의회파에 가담했던 이유를 설명해준다.

물론 그런 음모 따위는 없었다는건 분명하지만, 중요한건 사실이 아니라 잉글랜드 개신교도들 중 많은 이들이 이런 음모론에서 유래한 공포에 시달리고 있었다는 점이다. 이들은 이 음모론을 찰스 1세가 절대왕정을 꿈꾸고 있다는 믿음과 결부시켰다. 따라서 개신교회와 잉글랜드 헌정에서 의회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찰스 1세의 절대주의를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Cowar와 Gaunt 선생은 이러한 의회파의 이데올로기를 '헌정적 의회주의(Constitutional Parliamentarism)'이라고 명명한 바 있다.

이에 대비되는 왕당파 세력은 잉글랜드의 헌정이 '교황주의자의 음모'가 아니라 '퓨리턴의 음모(Puritan Plot)'에 의해 위협받고 있다는 두려움에 떨었다. 이들도 대부분 한때는 왕과 대립했던 의원들이었지만, 퓨리턴들의 파괴행각을 보고 난 뒤 이들은 영국의 전통적인 헌정(ancient constitution)과 균형정치에 가장 큰 위협은 이제는 왕이 아니라 퓨리턴 포퓰리즘이라고 굳게 믿게 되었다. 이들이 보기에 절대주의를 추구하고 있는 것은 왕이 아니라 퓨리턴이 주도하는 의회였다.

이들이 보기에 영국 국교회는 이미 충분히 개혁된 프로테스탄트 교회였으며, 동시에 좋은 전통을 잘 간직한 교회였다. 이미 로드 주교의 고교회파 개혁안을 저지한 이상, 더이상 퓨리턴과 연합할 이유도 없거니와 오히려 퓨리턴의 무차별적 파괴는 반드시 막아야 할 위험이었다. 일반 기도서와 주교제의 유지가 이들의 대표적인 목표였다. Coward와 Gaunt 선생은 이러한 왕당파의 이데올로기를 '헌정적 왕정주의(Constitutional Royalism)'이라 명명하였다.

잉글랜드 국교회의 일반 기도서

즉, 이 시기의 대립과 이후의 내전은 단순히 절대주의와 헌정주의의 대립이 아니었다. 이는 두 개의 서로 다른 헌정주의의 충돌이었으며, 두 진영은 서로가 절대주의를 추구한다고 비난하였다. 물론 둘 다 오해와 음모론이 큰 역할을 하였으나, 중요한 것은 이미 진실이 아니었다. 어찌되었건 중도파가 대거 찰스 1세 쪽으로 몰려간 이후, 영국의 여론은 둘로 분열되었고, 왕당파와 의회파의 세력, "교황주의자의 음모"와 "퓨리턴의 음모"를 확신하는 세력은 대략 비등비등하게 나뉘었다.








소결론

1640년 말의 영국인들은 모두 군주제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귀족들과 의회 구성원들 대다수는 왕의 정책들 중 하나 이상에 불만을 갖고 있었다. 서두에 설명했듯, 그것은 로드 주교의 개혁이거나 왕의 재정 정책이거나, 가톨릭 음모론이거나, 특정 대신들에 대한 불만이었다. 의회는 이러한 불만들을 가지고 왕과 맞섰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난 1641년 무렵, 영국인들은 여전히 모두 군주제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있었다. 그러나 여론은 크게 분열되었다. 1년전에 그들이 불만을 가졌던 사항들은 사실상 모두 과거의 것이 되었다. 그러나 이제 새로운 두려움이 생겨나고 있었다. 특히 이전에 없던 '퓨리턴 포퓰리즘'에 대한 두려움이 광범위하게 나타나 본래부터 퍼져있던 가톨릭 공포증과 대립하기 시작했다. 

Braddick 선생의 지적대로, 이는 단순히 중앙 귀족이나 부유한 자들, 보수주의자들이 가진 두려움이 아니었다. 광범위한 지역에서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참가한 공동 기도서에 대한 청원은 이를 잘 보여준다. 이들이 원하는 것은 1630년대로의 회귀가 아니라 잉글랜드의 전통적인 균형 헌정으로의 복귀였다. 그리고 퓨리턴에게 불만이나 두려움을 품은 이들에게 찰스 1세는 이제 이 '균형'의 상징으로 다가왔다. 이것이 이후 내전 발발시 찰스가 꽤 오랫동안 상당한 지지자를 확보한 배경이 되었다.


어찌되었건, 이제 잉글랜드의 여론이 두쪽이 난 상황에서 어떻게 나라가 내전으로 치닫게 되는지를 다음 글부터 살펴보도록 하겠다.



덧글

  • 터프한 얼음대마왕 2017/10/17 19:14 #

    올 것이 왔지만, 찰스 1세 반대 진영도 갈라졌고. 성상파괴-반달리즘도 나오고. 종교와 왕정이 아닌, 정치 성향으로 치고 박고 싸우고. 흥미로운건 음모와 공포, 프로파간다 파워가 내전의 큰 영향을 끼쳤단 거군요. 프로파간다는 예나 지금이나 무섭습니다. 찰스 1세가 능력을 발휘하면서 광범위한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전통적인 균형으로의 복귀라... 읽을수록 크롬웰 이후의 찰스 2세가 복귀할만 하구나란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경제 문제- 계층간의 불만-증오-진영 갈등- 진영 논리- 프로파간다- 정치 세력들간의 갈등- 음모와 공포.... 근대에도 블록버스터를 뛰어넘는, 뭐 비슷한게 있었던데, DOG EI... 음.

    내전- 크롬웰- 찰스 2세의 복귀 과정과 크롬웰 세력의 몰락도, 잘 주시해야 겠습니다만요.
  • 키키 2017/10/17 22:37 #

    흥미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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