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내전의 기원 (번외편)-엘리노어 크로스 논란 History-근동, 서양사



들어가며

1641년, 잉글랜드의 여론은 절반으로 쪼개졌다. 그 분열상은 무엇보다도 정치의 중심지인 런던에서 가장 극명하게 나타났다. 예전의 교과서적 서술은 찰스 1세와 의회가 극심하게 갈등했고, 런던의 민심은 의회 쪽으로 쏠려있었기 때문에 결국 찰스가 런던을 탈출하여 내전이 시작되는 식의 내러티브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영국내전에 대한 최근 서술들이 강조하듯, 이 시기의 특징은 소위 국왕과 국민 사이의 대립이 아니라, 잉글랜드의 정치적 인민(political nation)의 분열과 양극화다.

런던과 같은 당대 대도시들은 이러한 정치적 갈등의 영향을 가장 크게 받는 곳이면서, 정치적 지형도가 가장 뚜렷하게 잘 드러나는 곳이었다. 중세 이래 서유럽의 도시들은 정치적으로 능동적인 시민들의 거주지이면서, 급진사상들의 모태였기 때문이다. 이 시기의 극심한 갈등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 바로 이른바 '엘리노어 크로스(The Eleonore Crosses)'를 둘러싸고 벌어진 논란이다.







엘리노어 크로스란?

그렇다면, 이 논란의 근원인 '엘리노어 크로스'란 무엇을 가리키는가? 이는 에드워드 1세가 영국 전역에 남긴 12개의 중세 석조 기념물을 말한다. 중세 잉글랜드의 군주들 중 유명하기로는 단연 탑급에 속하는 '롱생크' 에드워드 1세는 그의 왕비 카스티야의 엘리노어(레오노르 데 카스티야)를 깊이 사랑했다. 그런 까닭에 36년의 결혼생활 끝에 엘리노어가 사망하자, 왕은 깊은 슬픔에 빠졌다. 당시 에드워드가 남긴 글은 그의 무너진 마음을 절절하게 전해준다.

(스코틀랜드에게)차가운 잉글랜드의 왕. 그러나 내 왕비에겐 따뜻하겠지


에드워드는 죽은 왕비를 기리기 위해, 링컨에서 런던까지 그녀의 장례행렬이 머무른 곳마다 십자가 기념물을 세우게 했다. 모양은 대체로 피라미드 형태에 맨 위에 십자고상이 올려진 형상이었다. 기단부는 여러 성인과 천사, 위인들의 조각으로 화려하면서도 정교하게 장식되었다. 여러모로 절정기를 맞이한 중세 잉글랜드의 국력과 문화적 성취가 온전히 담긴 중세 예술의 걸작이었다.

따라서 문화, 예술적 가치로 보나 역사적 가치로 보나, 잉글랜드 입장에서 이는 단연 국보급 문화재들이 아닐 수 없었다. 이에 후대 왕들은 정성들여 이를 보존하고, 손질하고, 때로는 장식문들을 더 추가하면서 가꿔왔다. 이 십자가들은 그것이 세워진 도시의 아이덴티티이자 자랑거리이면서, 동시에 (주요 도로 중앙에 세워졌기 떄문에)상업과 문화의 중심으로 기능하였다.

그러나 중세가 저물고 종교개혁과 종파주의 시대가 열리면서 이 십자가들에 시련이 찾아왔다. 퓨리턴을 위시한 강경파 개신교도들에게 천사와 성인들이 조각된 이 십자가들은 문화재가 아니라 얄짤없이 옛 종교의 잔재이자 우상숭배로 보였기 때문이었다. 이미 엘리자베스 시대때부터 이 십자가를 때려부숴야 한다는 강경파들의 주장이 빗발쳤다. 그러나 왕실은 열심히 이를 보호했다.







논란과 파괴

1641-42년의 양극화 시대에 와서 이 십자가들은 다시 한번 논란의 핵심으로 부상하게 된다. 특히 여론전이 치열하게 벌어지던 런던 중심부에 위치한 '칩사이드 크로스'와 '채링 크로스'가 논란의 핵심이었다. 지금은 둘 다 런던의 지명으로 남아있지만, 사실 엘리노어 크로스가 서있던 곳이다.

1641년 6월, 퓨리턴 헨리 버튼은 하원에서 설교하면서 '이 우상숭배의 유산을 때려부숴라!"라고 요구하였다. 순식간에 이 중세 십자가는 잉글랜드인 각각의 종교적 아이덴티티를 결정하는 척도가 되버렸다. 퓨리턴과 강경파들은 이 기념물이 '교황주의자들의 위안이며, 영혼을 지옥으로 보내는 수단'이라고 부르며 강경하게 파괴를 부르짖었다.

그러나 반대 여론도 만만치 않았다. 무엇보다도 지난 수백년 동안 이 십자가는 시민 활동의 중심지였다. 많은 주민들은 "미쳤냐, 우리 랜드마크를 왜 때려부숴?"라고 반응하였다. 이에 이 십자가가 우상숭배인지, 아무런 해될게 없는 단순한 장식물인지를 두고 벌어지는 신학적 논쟁부터, 자극적인 언어를 동원한 엘리노어 크로스와 '교황주의자들'에 대한 비난, '단순한 기념물에 미친듯이 집착하는 퓨리턴들'을 풍자하는 글들이 홍수를 이루었다.

사태는 급기야 글과 말싸움을 넘어 물리적 폭력 사태로 발전하기에 이르렀다. 실제로 퓨리턴들은 밤중을 틈타 수시로 망치를 들고 이 십자가를 파괴하려 시도한 바 있었다. 1642년 2월에는 아예 집단을 이루어서 이 우상숭배의 물건을 때려부수겠다고 파괴 원정대가 출동하기에 이른다. 물론 파괴 반대측도 가만히 있지 않아서, 십자가 수호대(문자 그대로 스스로를 defenders of cross라고 불렀다)를 조직하여 맞섰고, 두 집단은 물리적으로 충돌했다.

즉, Braddick 선생이 지적하듯, 이 시기에 엘리노어 십자가는 잉글랜드 개신교회의 분열상을 가장 명확하게 보여주는 상징이 되었던 것이다.

이후 결국 내전이 터지고, 찰스 1세가 런던을 떠나서 지지자들을 결집하면서 런던은 의회가 장악하게 된다. 이에 강경파들은 다시 한번 이 기념물들의 파괴를 추진하였다. 결국 의회 내 강경파 주도로 '우상숭배와 미신 척결 위원회'가 만들어졌고, 13세기부터 제 자리를 지켜온 이 기념물들은 파괴되고 말았다.

한 왕당파 여성은 이 파괴에 대해 다음과 같은 시를 남겼다.

우리 조상들의 때부터 살아온 옛 십자가
아홉 위인 못지 않은 명성을 누렸으며
어떤 해도 끼치지 않고, 누구도 다치게 한 적 없으며
오로지 평화와 고요 속에 존재해왔건만

(중략)

그러나 그 평화로운 본성도 겸손한 마음도
무지하고 맹목적인 이들의 공격을 막아주지 못하였구나

(중략)

그리하여 이 십자가, 불쌍한 십자가를
그들은 분노 속에 무너뜨렸다.
오직 시대가 죄 있을 뿐이로다







후일담

엘리노어 크로스는 노스햄턴과 헤리퍼드셔, 허트포드셔의 세 개만 살아남고 모두 파괴되었다. 내전 중에 런던에서 파괴된 칩사이드 크로스와 채링 크로스는 파편들만 박물관에 보관되어 전성기 때의 화려함을 짐작하게 할 뿐이다. 이후 왕정이 복고된 후 찰스 2세는 채링 크로스가 서있던 자리에 부왕 찰스 1세의 기마상을 세웠고, 그 기마상은 아직도 그 자리(현재 트라팔가르 광장 앞쪽)에 서 있다.

빅토리아 시대에 와서 옥스퍼드 운동이 일어나고 중세 애호 유행이 일어나면서, 비로소 영국인들은 "우리 조상들은 대체 무슨 짓을..ㅠㅠ"이라고 후회하면서 이때 부서진 스테인드 글라스들과 성상들을 복구하는 작업에 몰두하기 시작하였다. 이때 채링 크로스가 복원되어 현재 채링 크로스 역 앞에 서 있다. 현존하는 세 개의 십자가와 박물관의 파편들, 그림자료들을 참고하여 열심히 복원하긴 했지만, 레플리카는 어디까지나 레플리카일뿐, 중세의 실제 유물들은 이미 영원히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채링 크로스, 빅토리아 시대의 복원


덧글

  • 2017/10/26 12:22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7/10/26 22:16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아빠늑대 2017/10/26 12:57 #

    분노 파괴 후회 복원, 분노 파괴 후회 복원, 분노 파괴 후회 복원
  • Mr 스노우 2017/10/26 22:17 #

    .........ㅠㅠ
  • 함부르거 2017/10/26 14:02 #

    인간의 광기는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군요. 콘스탄티노플, 네덜란드, 바미얀석굴, 문화혁명 등등등 참 많이도 떠오릅니다.
  • Mr 스노우 2017/10/26 22:17 #

    이 시기의 광기가 제대로 주목을 받은것도 최근에 와서죠. 꽤 오랫동안 저런 행위가 위대한 진보라고 평가받았던 것을 보면 참...
  • 무지개빛 미카 2017/10/26 18:19 #

    어쩔수 없었죠. 그 당시에는 반드시 파괴시켜야 할 상징이 훗날 돌아보면 문화적 가치를 가진게 많았습니다.

    사실 알고보면 조선총독부 건물 폭파시켜 버릴때 김영삼 정권이 한가지 큰 실수를 저질렀죠.

    한국전 당시 인천상륙작전 이후 서울수복의 상징이 된 조선총독부 앞 국기 개양대도 함께 때려 부수어 버렸다는... 그 국기 개양대가 용산전쟁기념 박물관이나 육사,또는 국방부에 보존되었더라면 10월 1일 국군의 날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하는 심볼이 될 수도 있었을 껍니다.
  • Mr 스노우 2017/10/26 22:15 #

    '반드시 파괴시켜야 할 상징'이라는건 누가 주체냐에 따라 크게 달라집니다. 청교도의 시각이 절대진리라고 볼 수 없다면, 그 파괴행위를 어쩔 수 없는 일이라 할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 터프한 얼음대마왕 2017/10/27 02:11 #

    성룡 영화, 차이니즈 조디악 초반부 강연 장면

    " 인간은 창조를 할려면 오랜 세월이 걸립니다. 파괴를 하는건 하루도 걸리지 않습니다 "

    문화대혁명, 바미얀 석굴.... 정말 이것들은... 후우, 하물며 대영박물관에 있는 것들은 얼마나 부셔버리면서 얻어낸 것들이겠어요? 뭐, 대영박물관으로서 죽어도 돌려주지 않을거지만요.
  • 슈타인호프 2017/10/27 06:29 #

    탈레반은 역시 좋지 않습니다...
  • Mr 스노우 2017/10/27 08:59 #

    그러게 말입니다-_-
  • 키키 2017/10/27 21:32 #

    역시 뭐가 되었든지, 부셔놓으면 안됩니다.
  • Mr 스노우 2017/10/29 03:19 #

    그러게 말입니다...
  • 연성재거사 2017/10/28 14:46 #

    그러고보니 저 시기에 비슷한 사유로 훼손된 기록은 없나 모르겠습니다.
  • Mr 스노우 2017/10/29 03:18 #

    기록유산은 이때보다는 헨리 8세의 수도원 폐쇄령때 더 많이 훼손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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