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내전의 기원 (15)-에필로그 및 참고문헌 History-근동, 서양사


후일담

찰스 1세가 떠난 뒤, 런던은 의회 강경파가 장악했다. 이들은 붕괴된 기존의 의회정치를 대신해서 나라의 절반 가량을 이끌어야 했다. 그리고 떠난 왕을 대신하여 국정을 담당하게 된 이들은 비로소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아... 재정상태 맛 간거 진짜였구나(......)"그동안 왕이 뻥치는줄 알았지


결국 의회파는 내전에서 이기기 위해, 그들이 그동안 줄기차게 반대했던 찰스 1세의 행정과 재정정책을 거의 그대로 다 시행해야만 했다(...-_-;)

1642년에 런던을 떠난 찰스 1세는 1649년까지 다시 수도에 돌아오지 못했다. 그러나 런던을 통제하지 못했고, 덕분에 돈줄에서 많이 딸렸음에도 국왕의 세력은 상당해서 전쟁 초기는 국왕군에게 상당히 유리하게 전개되었다. 의회는 이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떻게든 스코틀랜드의 도움을 받으려 들었다. 스코틀랜드는 변함없이 '잉글랜드 교회를 스코틀랜드처럼'이라는 조건을 내걸었다. 왕당파가 떠난 상태에서도 이러한 스코틀랜드의 요구는 의회파 내에 상당한 분열을 초래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스코틀랜드의 가세가 전세 역전에 큰 영향을 미쳤다.


찰스 1세가 1649년에 런던에 돌아왔을때, 그는 재판을 받는 죄수의 몸이었다. 그러나 그의 처형은 아무것도 제대로 해결하지 못했으며, 잉글랜드의 정부와 정치, 종교의 아이덴티티를 규정하기 위한 싸움은 그뒤로도 오래도록 계속되었다.









결론-연재를 마치며 

이렇게 해서 영국 내전의 기원에 대한 학자들의 논쟁의 역사부터 시작해서, 당시의 시대적 배경과 마침내 내전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살펴보았다. 이를 통해서 대략적인 결론을 내려볼 수 있다.

지난 몇십년간 학자들은 영국 내전이 헌정적일 갈등 탓인지, 사회경제적 갈등 탓인지, 종교적 갈등인지를 놓고 논쟁을 벌여왔다. 그러나 현재의 중론은 이 모든 요소들이 다 존재한다는 것이며 어떤 요소가 가장 크게 작용했는지는 내전에 참여한 각 당사자마다 달랐다는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그 모든 사람들에게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것이 '종교'였음은 부정할 수가 없다. 그러나 동시에 당시의 종교는 동시에 헌정 체제 및 사회적 질서와 직결되는 것이었음을 또한 기억할 필요가 있다.

헌정적인 면에서 봤을 때 영국 내전은 결코 절대주의와 헌정주의(혹은 의회민주주의)의 충돌이 아니다. 지금까지 살펴보았듯이, 찰스 1세가 특별히 루이 14세식의 절대왕정을 꿈꾸었다는 증거는 없으며, 내전기의 그 주변에 포진했던 왕당파들도 대부분 근본적으로 헌정주의자들이었다. 마찬가지로 배타적인 반가톨릭주의 외에는 공통점이 거의 없었던 강경 의회파도 흔히 생각하는 민주투사와는 백만 광년쯤 떨어져있었다.

즉, 영국 내전은 낡은 엘리자베스 체제가 더이상 버티지 못하고 붕괴하게 된 시점에서, 영국의 새로운 체제와 프로테스탄트 국교회의 형태를 둘러싸고 상반된 비전들이 충돌한 싸움이었다. 양측은 모두 자신들이 영국의 법 전통에 내재되어 전해내려온 '고래의 헌정(ancient constitutuion)'과 고전적 공화주의가 말하는 균형정치의 이상을 대표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이들은 서로를 '가톨릭에 휘둘리는 이들과 비밀 가톨릭', 혹은 '뭐든 다 때려부수려는 퓨리턴 포퓰리즘'의 대표자들로 바라보며 두려워했고, 이 두려움이 전쟁의 근간에 깔려있었다.

내전의 책임에 있어서, 전통적인 역사서술은 찰스 1세에게 상당히 많은 책임을 지워왔다. 가장 대표적인 비판은 찰스 1세가 타협의 기술이 부족했으며, 자신이 생각하는 왕권의 원칙과 어긋나는 것이면 그 어떤 것도 들으려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물론 실제로 그러한 측면도 있었다. 이후 찰스 1세가 지지자를 규합하는 과정을 보면, 그가 진작 더 전폭적인 타협을 통해서 더 일찍 중도파를 포섭했다면 초장에 내전을 방지할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그러나 다른 면에서 보면 후대인의 속 편한 소리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찰스 1세는 그렇다치더라도, 의회 내 강경파의 비타협성 역시 찰스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못하지 않았다는 점은 분명히 지적하고 넘어가야 한다. 이 시기의 갈등상황을 결국 내전으로까지 키운 것은 왕 혼자서 한 일이 아니었다. 특히, 아무리 극단적인 종파주의 시대였음을 감안하더라도 심하다는 말을 나로 정도로, 같은 개신교도들까지도 '잠재적 가톨릭'으로 배척하던 일이 빈번했던 퓨리턴의 편협한 배타주의는 그동안 많이 간과되었으나 대단히 중요한 변수였다. 물론 당시 영국 사회에 널리 퍼져있었던 편집증적인 반가톨릭주의 히스테리 역시 당시의 갈등이 결국 전면전으로 발달하게 된 가장 중요한 요소들 중 하나였다.



그러나 동시에 영국 내전이 결과적으로 영국 헌정주의의 발전에 미친 영향 또한 부정할 수 없다. 찰스 1세와 맞섰던 의회파는 결코 민주주의자도, 반왕정주의자들도 아니었지만, 이들의 행위는 결과적으로 왕정이라는 개념 자체의 변화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물론 어디까지나 '결과적'으로다. 또한 영국 내전이 이후 서구의 시민혁명에 있어서 중요한 선례와 반면교사의 역할을 동시에 제공했다는 점 또한 간과해서는 안된다.

동시에, 이 시기에 영국인들이 경험한 전례없는 참화와 혼란은 영국인들의 집단기억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이는 이후 영국 정치사에 두고두고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 이후로도 영국은 정치적 혼란기가 여러 차례 다가왔지만, 그때마다 절대다수가 공유하는 단 하나의 가치는 "또다시 그런 내전을 겪는 것만은 안된다"였다. 따라서 영국 내전기를 제대로 이해하지 않고서는, 영국 정치와 영국인들의 정치적 마인드를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이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 이후 민주주의의 역사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 이 거대한 사건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가장 좋은 방법은, 그 의의는 의의대로 인정하되 그 시대 당시에 살았던 사람들의 다양한 가치관과 그들이 내려야 했던 쉽지 않은 선택 역시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이 아닐까 싶다. 결과적인 의의와는 별개로, 이 시기는 단순히 민주 대 반민주, 진보 대 보수 등의 이분법으로 판별하기에는 너무나도 복잡한 시대였다. 내전의 의의를 긍정하기 위해서 굳이 의회파에 반대했던 이들을 폭군, 혹은 반동 세력으로 낙인 찍을 필요도 없고, 그것은 오히려 비역사적인 관점이다.

다만 이 혼란스러운 시대의 전환기에 있어서, 영국의 미래를 놓고 다양한 헌정적 비전이 존재했으며, 그 실현을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피를 뿌렸다는 점은 꼭 기억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현대의 민주주의와 시민사회가 성숙하기까지는 긴 역사에 걸쳐 숱한 정치적 실험들과 시행착오가 있었으며, 영국 내전기도 그러한 실험의 시대였다.









참고문헌

Barry Coward and Peter Gaunt, The Stuart Age England 1603-1714 (London, 2017).
Peter Gaunt , The English Civil War: a Military History (London, 2014).
Ronald Hutton, A Brief History of Britain 1485-1660 (London, 2010).
Ronald Hutton, Debates in Stuart History (Basingstoke, 2004).
Mark A. Kishlansky, Charles I: An Abbreviated Life (London, 2014).
Mark A. Kishlansky, A Monarchy Transformed (London, 1996).
Michael Braddick, God's Fury, England's Fire: A New History of the English Civil Wars (London, 2009).
Blair Worden, The English Civil Wars, 1640-1660 (London, 2009).
Robert Tittler and Norman Jones (eds.) A Companion to Tudor Britain (Chichester, 2009).
John Adamson (ed.) The English Civil War: Conflict and Context 1640-49 (Basingstoke, 2009).
Jason McElligott and David L. Smith (eds.) Royalists and Royalism During the English Civil Wars (Cambridge, 2007).
Roger B. Manning, An Apprenticeship in Arms: The Origins of the British Army1585-1702 (Oxford, 2007).
Richard Cust, Charles I: A Political Life (Harlow, 2005).
Jeremy Black, Kings, Nobles &Commoners: States & Societies in Early Modern Europe: A Revisionist History (London, 2004).
Anne Hughes, The Causes of the English Civil War (Basingstoke, 1998).
Mark Stoyle, Loyalty and locality : popular allegiance in Devon during the English Civil War (Exeter, 1994).
Conrad Russell, Fall of the British Monarchies (Oxford, 1991).

덧글

  • 진냥 2018/01/08 00:07 #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영국 내전의 기원이 엘리자베스 1세 체제에서 유래했다는 점이 저로서는 가장 놀랍고 신기했습니다.
  • Mr 스노우 2018/01/09 07:04 #

    엘리자베스가 후대 왕들 입장에서는 거의 범죄 수준으로 민폐를 끼쳤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니까 말이죠. 감사합니다
  • 파파라치 2018/01/08 09:21 #

    세상에는 피를 보지 않으면 학습되지 않는 일들이 있는 법이니까요.

    잘 읽었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 Mr 스노우 2018/01/09 07:04 #

    감사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2018/01/08 09:49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8/01/09 07:04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슈타인호프 2018/01/08 17:12 #

    긴 연재가 드디어 끝났네요. 정말 감사히 읽었습니다.
  • Mr 스노우 2018/01/09 07:04 #

    감사합니다~
  • 터프한 얼음대마왕 2018/01/09 23:05 #

    엘리자베스 1세 신회가 와장창 부서지고, 찰스 1세의 본격 행복할수 없는 이야기. 아일랜드, 프로파간다, 음모론과 종교적 증오를 처음 접한 저로선 책 세 권의 가치를 가져다 줬습니다. 쇼킹 잉글랜드죠.

    그리고 옥스퍼드 영국사 최신판을 구매했습니다. 내 지갑을 비어주고, 정신을 풍요롭게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ㅠㅠ 다른 참고문헌(한국어판)이 있다면 구할 겁니다. 박지향 교수의 영국사 저서는 구할만 하나요?

  • Mr 스노우 2018/01/10 08:03 #

    박지향 선생님은 아무래도 근현대사 전공이시라... 이 시대를 보는 시각은 조금 전통적인 쪽에 가까우신듯 합니다.
※ 로그인 사용자만 덧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유사역사아웃

원시림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