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의 어떤 외교전 History-근동, 서양사

들어가며

성 토머스 베켓은 주군인 헨리 2세와의 애증이 얽힌 관계와 그로 인한 드라마틱한 최후로 인해 매우 유명한 인물이다. 그러나 그의 생애에서 그가 캔터베리 대주교의 자리에 오르기 이전까지 헨리 2세의 대신으로서 활약했던 부분은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때 그는 외교관이자 행정관, 법관으로서 그야말로 다방면에서 헨리 2세의 손발이 되어 활약했다.

그중 1158년 그가 헨리 2세의 명을 받고 프랑스에서 수행한 외교업무는 매우 흥미로우면서도 중세 당시의 외교와 정치의 일면을 잘 보여준다.





1158년의 돈쓰기 외교

1150년대 내내 헨리 2세는 잉글랜드와 유럽 대륙에 걸친 방대한 앙주 제국을 유지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면서 동시에 프랑스의 루이 7세와 불편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었다. 이 행보에 맞춰서 베켓도 분주하게 도버 해협을 오가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에 베켓에게 헨리 2세의 명령이 하달되었는데, 내용인즉 루이 7세의 막 태어난 딸 마르그리트와 헨리 2세의 장남인 헨리(훗날의 청년왕 헨리)와의 약혼을 성사시키라는 것이었다.

모든 세부 내용은 베켓에게 일임하면서, 헨리 2세는 딱 한가지 지령만 내렸다.

헨리 2세: 돈 팍팍 써라

즉, 비용을 아끼지 말고 그의 앙주 제국이 얼마나 자원이 풍부한지를 프랑스의 왕과 귀족과 백성들에게 아낌없이 과시하라는 것이었다. 이게 뭔 돈X랄인가 싶을수도 있겠지만. 양국의 미묘한 신경전을 생각하면 기선제압의 좋은 방법이었다.

아무튼 주군으로부터 아낌없이 돈을 뿌리며 가라는 지령을 받은 베켓은 이를 매우 충실하게 이행한다. 우선 그는 길가에서 마주치는 구경꾼들을 압도할 수 있을만큼 위풍당당한 사신 행렬을 꾸리는 것부터 시작했다. 그를 필두로 한 잉글랜드 사신단은 말탄 사람만 200명이 넘었는데, 이들은 기사들과 서기관들, 시종들, 스콰이어들 등등이었다. 이들은 모두 각각의 지위에 어울리되, 무지하게 비싼 옷들로 차려입었다. 그는 사냥개들과 매와 기타 멋지게 생긴 새들까지도 이 행렬에 참여시켰다. 한마디로 길에서 구경하는 프랑스인들에게 현대 테마파크의 퍼레이드 비슷한 호화 엔터테인먼트를 선보인 셈이다.

그의 아이디어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그는 이 임무를 위해서 특별히 돋보이는 옷들을 수십벌 준비했다. 그리고 파리까지 가는동안 이를 차례차례 바꿔입었다. 그 횟수는 무려 24번에 달했다. 한번 갈아입은 옷들은 죄다 길가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선물로 뿌렸다. 당연히 그 가난한 사람들이 평생 만져보기도 힘든 비싼 옷들이었다. 이 행렬은 일반 옷뿐만이 아니라 겨울용 털옷이라든지, 고급 비단이라든지, 심지어 태피스트리와 침대 커튼 같은것까지 마구 적선하면서 지나갔다. 말 그대로 베켓이 대표하는 잉글랜드 왕이 얼마나 관대하고 자비심이 넘치는 왕인지를 온몸으로 보여주기 위한 행사였다.

이런 대규모 사신단을 유지하려면 당연히 짐수레도 엄청나게 뒤따라야 했다. 이 수레들에도 온갖 화려한 집기와 생활용품들이 실려서 구경꾼들의 얼을 빼놓았다. 그 중 몇 대의 수레에는 최고급 맥주가 잔뜩 실려있었는데, 행렬이 파리까지 가면서 통과하는 마을마다 몰려나온 구경꾼들에게 이 맥주를 공짜로 아낌없이 배포했다.


잉글랜드 사신단이 이렇게 스케일 크게 돈을 뿌리며 오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루이 7세는 긴장했다. 회담이 시작되기도 전에 분위기가 완전히 잉글랜드 쪽으로 넘어갈까 염려한 그는 즉시 백성들에게 다음과 같은 포고령을 내렸다.

루이 7세: 지금부터 왕명으로 잉글랜드 사신들에게 그 어떠한 식료품도 파는 행위를 금지한다.
상인들: 네??? 어째서...???
루이 7세: 내가 다 사줄거거든. 나는 손님이 자기 돈 쓰는 꼴 못보는 관대한 왕이라


그러나 여기서 물러설 베켓이 아니었다.

토머스 베켓: 훗... 루이, 제법이군. 그러나 그 정도 수는 이미 예상했다

그리고 부하들을 불러서 이렇게 지시했다.

베켓: 너희들은 지금부터 순도 100퍼센트 네이티브 프랑스인으로 위장을 한 다음에 파리 인근의 시장이란 시장은 다 돌면서 필요한 물품들을 사오너라

파리 입성 이후 베켓의 돈뿌리기 전략은 절정에 달했는데, 프랑스 궁정의 최고위 귀족에서부터 가장 비천한 하인들에 이르기까지 뭔가 받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그 와중에 베켓은 자기가 다녔던 학교까지 찾아가서 학생들과 교수들에게 또 돈을 뿌리고 왔다.


일단 잉글랜드의 외교전략은 소기의 효과를 달성했다. 협상은 성공적으로 끝났고, 심리적 효과는 그 이상이었다. 베켓의 위풍당당한 행렬을 구경하고, 선물도 받고 술도 얻어먹은 주민들은 그 행렬에 다가가서 이렇게 물었다.


"도대체 어떤 높으신 양반이기에 행차가 이리 대단한거요?"


질문을 받은 수행원은 "잉글랜드 왕의 대신으로, 당신네 왕을 만나서 회담하러 가는 길이오" 라고 대답해주었다. 그러자 주민들은 서로 이렇게 이야기했다고 한다.


"일개 대신의 행차가 이 정도라면, 그 주군이라는 왕은 정말 얼마나 대단한 양반이란 말인가?"


물론 이 반응이 정확히 헨리 2세의 노림수였다.




나오며

물론 현대인이 보기엔 이런 행동이 단순히 유치한 돈자랑으로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당시 외교와 정치의 매커니즘은 결코 지금과 같지 않다는 점을 이해해야만 한다. 이 외교전에서는 기선제압을 위한 헨리 2세의 노림수도 있었지만, 사실은 중세의 모든 왕과 귀족들이 국내외를 돌아다닐때 원래 하던 일을 대폭 업그레이드된 스케일로 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중세의 정치구조에서 왕과 영주들은 끊임없이 자기 왕국과 영지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일을 처리해야 했는데, 그때 이런식으로 돈을 쓰는 것은 그들에게 당연하게 기대되던 의무였다. 이동중 왕이 밤을 보내기 위해, 마을이나 성이나 수도원 등지에 들어가면 반드시 해당 지역의 가난한 이들에게 자선을 베풀었다. 이는 한편으로는 자신이 관대한 왕임을 과시하는 장치임과 동시에 당시 나름대로 부가 재분배되던 매커니즘이기도 했다.










그리고 굳이 중요하진 않은후일담

얼마 뒤에 헨리 2세가 직접 파리를 방문해서 루이 7세와 회담했다. 이 방문의 주 목적은 지난번에 베켓이 논의해서 성사시킨 혼담을 최종적으로 비준하기 위함이었다. 루이 7세는 지난번에 베켓에게 당한 것을 제대로 되갚아주겠다고 단단히 벼르고 있었다.

루이 7세: 지난번엔 어설퍼서 실패했다만, 이번에야말로 나의 관대함을 제대로 보여주지

그리고는 그동안 공들여 준비해온 호화찬란한 각종 이벤트를 헨리 2세에게 선보이려 하였다. 그러나 헨리 2세의 반응은..

헨리 2세: 허허 뭐 이런걸 다.. 제가 원래 좀 취향이 검소하고 절제하는 생활을 하는 사람이라 이런 사치는 좀 부담스럽군요

루이 7세: 아니 이 새X가?





참고
John Guy, Thomas Becket, Warrior, Priest, Rebel, Victim: A 900-Year-Old Story Retold (London, 2012).


덧글

  • 터프한 얼음대마왕 2018/01/11 10:22 #

    중세 외교와 소비, 국왕의 행차에 따른 소비가 경제 활동으로 이어진 글 잘 봤습니다.

    고단수 헨리 2세와 토마스 베켓, 루이 7세의 회장님 뒷목 잡기 시전~ 넘어가고. 사신 파견은 기나긴 여정과 막대한 돈이 많이 들고는 했죠. 한국도 마찬가지, 중국도 마찬가지, 유럽도 마찬가지. 세계 전반적인 현상입니다만... 읽다가 생각이 드는게 유럽은 국가와 통치자 간의 관계가 어떤지 찾아봐야 겠습니다. 동등한건지, 미묘한 차이가 있는지... 유럽 국가간의 외교 활동과 연회 현장, 실무, 명칭, 호칭 등. 알아야 할 게 많네요.

    그리고 지금 서양에선 동아시아 조공외교가 매우 특이하다면서 연구를 많이 한다 들었거든요.
  • 까마귀옹 2018/01/11 08:30 #

    의외로 저런'돈지랄'이 외교 역사를 보면 제법 자주 나타나더군요.하긴 해외 여행이란 개념 자체가 생소하던 전근대 시기에 자국의 국력을 과시하는 좋은 방법 중 하나가 이런 사신단과 환영단의 '돈지랄 대결'이니. 사실 근현대에도 정식 의전의 형태로 체계화되면서 이 '돈지랄'의 흔적이 남아 있기는 하죠.
  • 파파라치 2018/01/11 08:50 #

    반면에 진시황 이래 중국에서 황제의 행차는 백성들에게 민폐 그 자체였죠. 강희제처럼 순행에 따르는 백성의 수고를 최소화하려고 애쓴 "성군"도 있었지만, 말그대로 최대한 폐를 안끼친거지 돈을 뿌리고 다닌건 절대 아니니.
  • 진냥 2018/01/11 08:53 #

    아니 이☆☆들이??!!
    ...뿜었습니다....
  • 함부르거 2018/01/11 09:46 #

    오늘날에도 저런 문화가 남아 있는 곳이 있죠. 파푸아 뉴기니의 빅맨 문화라던가.
  • 위장효과 2018/01/11 09:53 #

    그리고 헨리 2세와 루이 7세는 역사에 길이 남을 NTR의 가해자와 피해자로...(퍽!!!!)
  • 2018/01/11 11:32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존다리안 2018/01/11 18:42 #

    히틀러가 동맹국 이탈리아를 방문했을 때 무솔리니가 잠수함 여러척을 한꺼번에 잠수시키는 등의
    행사로 히틀러에게 과시를 했죠. 히틀러도 이전에 비슷한 과시를 한 바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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