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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내전의 기원 (15)-에필로그 및 참고문헌

영국 내전의 기원 (14)-내전 시작되다

영국 내전의 기원 (13)-막이 열리다

영국 내전의 기원 (번외편)-엘리노어 크로스 논란

들어가며1641년, 잉글랜드의 여론은 절반으로 쪼개졌다. 그 분열상은 무엇보다도 정치의 중심지인 런던에서 가장 극명하게 나타났다. 예전의 교과서적 서술은 찰스 1세와 의회가 극심하게 갈등했고, 런던의 민심은 의회 쪽으로 쏠려있었기 때문에 결국 찰스가 런던을 탈출하여 내전이 시작되는 식의 내러티브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영국내전에 대한 최근 서술들이 ...

영국 내전의 기원 (12)-대분열

왕당파의 형성지난번 글에 설명했듯이, 찰스 1세에게는 최악의 시기였다. 패전으로 위신은 추락했고, 신뢰할수 있는 측근 대신들은 처형되거나 감옥에 갇혔다. 의회는, 정도는 달랐지만, 그의 정책에 대한 반대로 연합전선을 구축하고 있었다. 이 위기를 탈출하고 어느정도 정치적 힘을 회복하려...

영국 내전의 기원 (11)-파국의 시작

제2차 주교전쟁과 왕권의 붕괴물론 찰스 1세도 이대로 물러날 생각은 없었다. 이 무렵 국왕의 최고 측근은 로드 주교에서 토머스 웬트워스로 옮겨가있었다. 본래 찰스 1세에게 대항하던 의원이었던 그는 왕이 권리청원을 받아들인 뒤 국왕의 편이 되었다. 그 뒤로 그는 찰스를 대신하여 아일랜드를 통치하다 1639년에 잉글랜드로 돌아와 핵심 측근이 되었다. 찰스 ...

영국 내전의 기원 (10)-개인통치의 붕괴

주교 전쟁무력으로 문제를 해결하기로 한 이상, 찰스 1세는 이제 군대를 모아야만 했다. 게다가 의회의 협조 없이, 국왕의 대권(royal prerogative)에만 의지하여 모아야만 했다. 교과서적인 서술로는 찰스 1세와 로드 주교의 국교회 정책 때문에 잉글랜드의 여론이 대스코틀랜드 전쟁에 대단히 적대적이었다고 나오지만, 반드시 그렇지...

영국 내전의 기원 (8)-찰스 1세의 개인통치

개인통치기를 어떻게 볼 것인가?1630년대 내내 이어진 찰스 1세의 정부는 '개인 통치(The Personal Rule)'라고 불린다. 의회 없이 11년간 이어진 이 통치에 대한 해석도 크게 엇갈려왔다. 전통적인 휘그 사관은 이 시기를 '11년의 폭정(The Eleven Years' Tyrrany)라고 해석해왔다. 비교적 근래까지도 학자들은 이 시기의 ...

영국 내전의 기원 (7)-엘리자베스 체제의 붕괴

갈등의 시작: 카디스 원정막 왕위에 오른 찰스 1세는 젊은 국왕의 패기를 담아 1624년에 어영부영 끝난 스페인과의 전쟁을 다시 추진했다. 그동안 강경파 퓨리턴을 비롯한 수많은 개신교 신민들이 주구장창 대륙의 종교전쟁에 참여하라고 제임스 1세에게 압박을 가하는 것을 지켜봤으니만큼, 찰스 1세는 자신의 대스페인 개전이 의회와 신민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

영국 내전의 기원 (6)-국왕 찰스 1세

인간 찰스 스튜어트제임스 1세의 뒤를 이은 찰스 1세는 오래도록 영국사에서 폭압적 전제정치를 상징하는 인물이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한 인간으로서 찰스 스튜어트는 폭군의 스테레오타입과는 거리가 먼, 오히려 인간적인 호감을 갖기 쉬운 사람이었다. 그는 근본적으로 온화하고 선량한 성품을 가졌으며, 근면 성실했다. 교양이 풍부하고 특히 예술에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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