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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내전의 기원 (8)-찰스 1세의 개인통치

개인통치기를 어떻게 볼 것인가?1630년대 내내 이어진 찰스 1세의 정부는 '개인 통치(The Personal Rule)'라고 불린다. 의회 없이 11년간 이어진 이 통치에 대한 해석도 크게 엇갈려왔다. 전통적인 휘그 사관은 이 시기를 '11년의 폭정(The Eleven Years' Tyrrany)라고 해석해왔다. 비교적 근래까지도 학자들은 이 시기의 ...

영국 내전의 기원 (7)-엘리자베스 체제의 붕괴

갈등의 시작: 카디스 원정막 왕위에 오른 찰스 1세는 젊은 국왕의 패기를 담아 1624년에 어영부영 끝난 스페인과의 전쟁을 다시 추진했다. 그동안 강경파 퓨리턴을 비롯한 수많은 개신교 신민들이 주구장창 대륙의 종교전쟁에 참여하라고 제임스 1세에게 압박을 가하는 것을 지켜봤으니만큼, 찰스 1세는 자신의 대스페인 개전이 의회와 신민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

영국 내전의 기원 (6)-국왕 찰스 1세

인간 찰스 스튜어트제임스 1세의 뒤를 이은 찰스 1세는 오래도록 영국사에서 폭압적 전제정치를 상징하는 인물이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한 인간으로서 찰스 스튜어트는 폭군의 스테레오타입과는 거리가 먼, 오히려 인간적인 호감을 갖기 쉬운 사람이었다. 그는 근본적으로 온화하고 선량한 성품을 가졌으며, 근면 성실했다. 교양이 풍부하고 특히 예술에 대...

스코틀랜드-잉글랜드 투쟁사 (31)-내전의 끝, 새로운 싸움

찰스 1세의 최후찰스 1세가 스코틀랜드군에 투항한 것은 싸움을 그만둔 것이 아니었다. 왕에게는 다른 속셈이 있었다. 애초에 잉글랜드 의회와 스코틀랜드가 맺은 엄숙동맹은 오래갈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언젠가는 틈이 벌어지게 마련일테고, 국왕이 노리던 것은 바로 그 시점이었다.일단 국왕의 신병을 확보한 스코틀랜드측은 이 카드를 바탕으로 해서 자신들이 확고한...

스코틀랜드-잉글랜드 투쟁사 (30)-내전의 시대

찰스 1세와 스코틀랜드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의 새 왕 찰스 1세는 사실 나면서부터 왕이 될 운명은 아니었다. 그에게 왕위 계승권이 돌아갔던 것은 그의 형 헨리의 사망 때문이었다. 그는 죽은 형과는 여러 면에서 달랐다. 헨리가 활달하고 운동과 무예에 관심이 많았다면, 찰스는 다소 수줍음을 타는 성격이었으며 세련되었고, 학문과 예술을 좋아하였다.찰스 1세그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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